스자쿠는 기본적으로 말을 잘 듣는다. 어렸을 적에는 좀 더 제멋대로인 경향은 있었지만 그래도 부탁하면 대부분 다 들어주는 편이었다. 조금 툴툴거리는 것도 커가면서 거의 없어졌고, 지금의 스자쿠는 완전히 충견에 가까울 정도였다. 심부름을 맡기면 맡은 바 임무를 성실하게 해내고 활짝 웃으면서 돌아온다. 를르슈, 다녀왔어!—하고 외치는 목소리도 명랑하다. 게다가 그는 따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혼자서 눈치껏 자기 할 일을 찾는 편이기도 했다.
그것은 를르슈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했다. 자기 말고도 타인에게도 친절한 남자친구를 보고 있으면 왜인지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스자쿠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은 아닌 걸 알기 때문에, 를르슈는 어느 정도 그의 친절함에 대해서 이해는 하고 있었다. 그는 언제든지 친절하다. 언제든지.
그것은 섹스할 때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를르슈는 뱃속을 가득 채우는 스자쿠의 것에 얕은 호흡을 반복하면서 뒤를 풀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고, 의식하면 할수록 더 힘이 들어갔다. 를르슈가 조일수록 스자쿠는 가만히 멈춘 채로 있었다. 더 움직이고 싶을 테지만, 그가 멈춘 이유는 하나다.
를르슈가 멈추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스자쿠의 체온이 버거웠다. 벌어진 다리와 붙잡힌 허벅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신음하고 있는 스자쿠를 바라보며 를르슈는 미간을 찌푸렸다. 섹스가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의 삽입은 늘 버거웠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찡그린 이마 사이에 입을 맞추었다.
“를르슈, 더 기다릴까?”
“이제, 됐어…. 움직여.”
“…응.”
스자쿠의 것이 안을 밀어젖히는 것을 느끼면서, 를르슈는 베개를 쥔 채로 신음했다. 를르슈의 작은 목소리 하나까지도 다 듣고 싶은 스자쿠가 얼굴을 숙이면서 입을 맞춰오는 것에, 를르슈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을 ‘싫어’라는 뜻으로 이해한 스자쿠는 아쉬워하며 다시 멀어졌다. 스자쿠의 힘이 들어간 손이 귀 옆에서 이불과 함께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앓는 듯한 를르슈의 신음은 스스로가 들어도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도 스자쿠는 흥분하며 아래를 더 급하게 들이밀었다.
이런 거에 흥분하고 있는 건, 그만큼 나를 좋아하는 건가.
를르슈는 혼자서 그런 생각에 빠지면서도, 눈앞의 스자쿠를 바라보았다. 순진한 녹색 눈동자가 평소와 다른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대상은 자기 하나 밖에 없다. 아무리 친절하다고 하더라도, 그런 눈으로 보는 것은 오로지 를르슈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를르슈도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쥐고 있던 베개를 내던지고 스자쿠의 목에 매달렸다. 를르슈가 ‘좋아’라고 귓가에 속삭이면 스자쿠가 웃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좋아, 하고 돌아오는 목소리에 만족했다.
스자쿠와의 섹스는 기본적으로 상냥하고 배려가 넘치는 편이지만, 를르슈의 기준에서는 섹스 또한 운동이었기 때문에 다음날 나른한 감은 어쩔 수 없었다. 평소보다 멍한 얼굴로 앉아있는 를르슈와 다르게 스자쿠는 오늘도 바빴다. 학급위원이 스자쿠를 불러서 무언가를 부탁하고 있었다. 그는 아마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친절한 스자쿠를 보는 것은 익숙하지만, 사실 가끔은 짜증이 치밀었다. 그러나 그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스자쿠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를르슈는 늘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런 상황들을 지켜보았다.
오늘도 그러했다. 쿠루루기 군, 방과후에 안 바쁘면—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학교가 끝나고 를르슈 혼자 돌아가게 될 것이다. 평소라면 어제 섹스의 여파로 피곤할 를르슈의 시중을 드느라 스자쿠는 바빴겠지만, 오늘은 학급위원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돌렸던 를르슈에게 갑자기 스자쿠가 다가왔다.
“를르슈, 오늘 혼자 갈 수 있겠어?”
“왜?”
“방과후에 잠깐 정리할 게 있어서 도와달라는데, 를르슈 혼자 갈 수 있는지….”
“내가 애도 아니고. 갈 수 있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무리라면 학교도 나오지 않아.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이야기 하지 않아도 돼.”
“…알았어.”
허락을 받으러 왔다가 떠나는 스자쿠는 어딘가 의기소침해보였다. 그러나 다시 학급위원 옆으로 가는 스자쿠는 쾌활한 쿠루루기 군으로 돌아가 있었다. 도와줄 수 있어, 라고 말하는 스자쿠는 재미가 없다. 괜찮다고 말한 것은 자신이지만 그래도 스자쿠 없이 돌아가는 건 별로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것을 번복하는 것은 어린애나 할 짓이었다. 를르슈는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머리를 비우려고 했다. 눈앞에서 왔다갔다 거렸던 스자쿠와 학급위원도 제자리로 돌아갔다. 말끔해진 시야 덕분에 잡생각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학교가 끝나서야 를르슈는 스자쿠와 따로 가기로 했다는 것을 다시 상기했다. 이제 가자, 라고 하려다가 자기보다 스자쿠를 더 먼저 찾는 학급위원을 봤기 때문이었다. 괜한 짓을 할 뻔 했다는 생각과 함께 를르슈는 가방을 들고서 먼저 교실을 떠났다. 를르슈, 하고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를르슈는 무시했다. 분명 스자쿠가 부른 것이겠지만, 지금은 그에게 다정하게 대답해 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남에게도 친절한 남자친구 같은 건, 솔직히 별로이다. 누구에게나 말 잘 듣는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하고서 웃어주는 스자쿠 같은 건 보기도 싫다. 그런 얼굴은 내 앞에서만 해도 충분하지 않아? 왜 다른 사람 앞에서도 그렇게 구는 거야. 를르슈는 학교 밖을 빠져나갈 때까지 그런 생각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런 걸 스자쿠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내 말만 들어, 라는 말을 한다는 것도 를르슈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속 좁은 연인 같은 것은 스자쿠도 사양하고 싶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미움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를르슈도 스자쿠의 친절을 눈감아 주고 있는 것이다. 진실을 토로했을 때 스자쿠의 반응은 예측불가였다. 어쩌면 비웃을 지도 모르겠군. 를르슈는 속으로 자조했다.
스자쿠가 를르슈를 찾아온 것은 저녁이었다. 저녁을 다 먹고 나서 정리가 한창일 때 찾아온 스자쿠를 맞이했다. 부탁 받았던 정리가 생각보다 늦어진 모양이었다. 밥은 먹었어?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자쿠는 잠깐 단둘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로로와 나나리에게 뒷정리를 맡기고 스자쿠와 를르슈는 를르슈의 방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스자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를르슈에게 말했다.
“오늘 고백 받았어, 를르슈.”
를르슈에게 그것을 보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라도 있는지, 스자쿠는 잔뜩 긴장한 듯 했다. 스자쿠의 긴장 끝에 나오는 말에 를르슈는 뭐라고 반응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속이 넓은 척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줘야하는 건지, 여기서는 솔직하게 질투를 해줘야하는지. 답을 알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스자쿠는 다음 말을 이었다.
“나, 를르슈랑 사귀고 있는 건 비밀이니까, 다른 말은 안 했는데.”
동성 간의 연애는 아무래도 좋은 가십거리니까, 두 사람은 숨기고 있었다. 스자쿠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다.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를르슈의 머리는 그 이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말을 할 것도 없이 너는 내 것이라고 말했어야지, 라고 튀어나오는 말들을 겨우 억눌렀다.
“그래서?”
“그래서, 음…. 그랬어. 를르슈한테는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런 사소한 이야기까지 일일이 하지 않아도 돼.”
“사소한 거라니, 를르슈는 내가 이런 걸 말 안하고 넘어갔으면 좋겠어? 나는 를르슈가 그러면 기분 나빠.”
솔직하게 부딪혀오는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기분이 상했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를르슈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말해주는 건 고맙지만, 기분 나쁜 것은 어쩔 수 없다. 왜 그걸 몰라주는 걸까. 그런 이야길 듣고도 태연하길 바라는건가? 를르슈는 스자쿠의 마주보는 시선을 피했다.
“어차피 거절했고, 너도 그럴 마음 없으니까 새삼 이야기 할 필요 없다는 이야기였어.”
를르슈의 정론에 스자쿠도 더는 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어색해지는 분위기 사이에서 를르슈는 아무 말이나 떠들어댔다.
“그리고 네가 그럴 여지를 줬으니까 그런 고백을 받는 거겠지.”
“그럴 여지라니, 그건 꼭 내가 잘못한 거 같잖아.”
“아아, 널 탓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하군.”
“아니지, 를르슈. 그렇게 말한 거잖아.”
“그럴 생각이 없었다는 말은 안 들었어? 미안하다고 사과했잖아.”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아니라고 말하잖아!”
를르슈의 커지는 목소리에 스자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매사에 이성적인 그가 큰소리를 내는 것은 드물었다. 를르슈도 욱하는 자기 성질에 얼굴을 붉히면서 몸을 돌렸다. 이래가지고는 평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아니라고 했으니까… 더 할 이야기가 없으면 나가줘, 스자쿠.”
“를르슈.”
스자쿠는 를르슈의 손을 붙잡고 제 쪽으로 끌었다. 얼결에 끌어당겨진 를르슈는 스자쿠와 시선을 마주했다. 어딘가 울 것 같은 얼굴의 스자쿠는 평소의 웃는 얼굴과는 달랐다. 잔뜩 상처받은 표정이었다. 그래서 어떡하라고, 나도 싫은 걸 참아주고 있는데. 를르슈는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스자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은 무리였다. 잠시 동안의 힘겨루기 끝에 를르슈는 한숨을 내쉬며 항복을 선언했다.
“나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확실하게 해.”
“해서 어떡하라고? 그래봤자 소용 없어.”
“왜 그렇게 생각해? 를르슈가 하는 말이라면 다 들어주잖아.”
“너는, 내가 하는 말만 들어주는 게 아니면서!”
갑자기 튀어나간 진심에 를르슈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순식간에 붉어진 를르슈의 얼굴에 스자쿠는 무슨 말이냐고 되묻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듯, 마주 보는 얼굴이 같이 붉어졌다. 젠장…. 를르슈가 작게 욕을 읊조리는 사이에 스자쿠는 그를 품에 안았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완벽하게 밀착되었을 때, 를르슈는 스자쿠에게 엉거주춤하게 안긴 모양새가 되었다. 그를 밀어내지도 못하고, 잡아당기기에도 부끄러웠다.
“내가 다른 사람 말도 들어서 싫었어?”
“나는 그런 식으로 말한 적 없어.”
“를르슈, 계속 질투했구나.”
“안 했어.”
“귀여워. 진작에 말해줬으면 안 그랬을 거야.”
“아니라고!”
를르슈의 허리를 감싸는 스자쿠의 손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를르슈가 작은 소리로 신음하자 스자쿠는 바로 그를 떼어냈다. 왜 갑자기, 라는 눈으로 쳐다보면 스자쿠는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오늘은 밑에 로로랑 나나리가 있잖아.”
그 말은 두 사람이 없었더라면 금방이라도 일을 치렀다는 이야기였다. 를르슈는 귀까지 붉어지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자쿠는 아쉬운 눈으로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잠깐 닿았다 떨어지던 입술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더 키스하고 싶지만, 그럼 못 참을 거 같으니까. 스자쿠의 그 말에 를르슈는 그제야 스자쿠를 제대로 끌어안았다.
를르슈의 질투가 들켰던 날 이후로, 스자쿠는 정말 진작에 말해줬으면 안 그랬을 사람처럼 친절함을 베푸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모두에게서 등을 돌리고 를르슈에게만 꼬리를 흔들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를르슈를 우선순위에 두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평소라면 받아주었을 농구부의 용병 부탁도 그는 가볍게 거절하고 있었다. 농구부 주장은 거절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는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스자쿠를 바라보고 있었다. 를르슈는 스쳐지나가는 척 하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엿들었다.
“이번주 주말 시합에만 잠깐만 나와주면 되는데.”
“주말에는 선약이 있어서, 정말 미안.”
스자쿠는 제법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농구부 주장은 더 매달릴 수도 없이 뒤를 돌아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지나가는 를르슈를 보던 스자쿠는 그의 옆에 바로 다가왔다. 헤헤, 하고 웃는 얼굴이 꼭 칭찬을 해달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를르슈는 보는 제가 더 부끄러워졌다.
“를르슈, 주말에 우리집 올래?”
“선약 있다면서.”
를르슈는 일부러 알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퉁명스러운 대답에도 스자쿠는 하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오히려 웃음소리를 내면서 를르슈의 옆에서 걸었다. 쿡쿡거리는 소리에 를르슈는 발을 빨리 움직였다. 복도를 지나 교실에 들어서서, 자리에 앉을 때까지 스자쿠는 싱글벙글 웃는 낯이었다.
주말이 되면 로로와 나나리는 친구들과 함께 놀러 나갈 약속에 들떠있었다. 를르슈는 두 사람을 배웅하고, 저도 옆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벨을 울리면 스자쿠가 반겨주었다. 오늘은 숙제도 없고, 딱히 게임을 할 것도 없다. 사실 두 사람이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었다. 를르슈는 스자쿠가 먼저 오르는 계단을 따라 오르면서 섹스 직전의 분위기에 긴장했다.
를르슈가 먼저 방에 들어서고, 스자쿠가 문을 잠그고 바로 그의 옆에 섰다. 오늘 아무도 없겠지만 혹시나 싶은 를르슈의 마음을 배려하는 것이었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침대 위에 앉으면서 그의 입술을 받아냈다. 달뜬 숨과 타액을 주고 받으면서 스자쿠와 혀를 섞었다. 그러다 보면 옷은 모두 다 벗은 채로 침대 밑으로 내던졌고, 제 위에 올라탄 스자쿠를 보고서 를르슈는 가빠지는 숨을 느꼈다.
“스자쿠, 쉬었다가 할래…. 너무 빨라.”
“응, 안 쉴거야.”
“뭐?”
“안 쉴거라고. 오늘은 내 맘대로 할래.”
스자쿠는 를르슈의 가슴 끝을 빨아들이며 말했다. 유륜까지 핥는 그의 혀끝에 를르슈는 스자쿠의 머리를 밀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다른 가슴 한쪽까지 만지작거리는 손에 를르슈는 스자쿠를 밀어내기는 커녕 결국 그의 머리를 끌어안은 채로 신음하는 수밖에 없었다. 헐떡거리는 숨 사이로 스자쿠에게 멈추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스자쿠는 물고 있던 가슴을 놓아주며 말했다.
“를르슈가 질투한 기념으로, 오늘은 내 맘대로 할 거야.”
“뭐야, 그런 기념 같은 거 필요 없어.”
“좋다는 걸로 알게.”
“싫어!”
싫어, 라는 말에도 스자쿠는 멈추지 않았다. 로션을 잔뜩 뿌린 아래에 손을 넣고서 뒤를 푸는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를르슈의 안쪽을 훑는 손가락 덕분에 를르슈의 페니스도 완벽하게 섰다. 싫다고 말하기에는 몸은 너무나도 솔직하게 쾌락을 좇고 있었다.
다리를 더 활짝 벌리면 자신의 페니스와 동시에 스자쿠의 것을 기다리며 움찔거리는 구멍이 훤히 보인다. 이 수치스러운 자세에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그 찰나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를르슈는 제 아래를 유심히 살펴보는 스자쿠의 모습에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적당히 보고, 얼른 해…!”
“싫어, 계속 보고 싶어.”
“너… 아까부터 계속.”
“오늘은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거니까. 계속 이렇게 하고 싶었거든.”
를르슈의 뒤를 푸는 손가락이 크게 질척거리는 소리를 냈다. 로션으로 범벅이 된 구멍은 정말 성기처럼 벌름거리면서 스자쿠의 손가락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호기심과 성욕으로 반짝이는 스자쿠의 시선에 를르슈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스자쿠는 그 눈가에 입을 맞추었다.
“눈 감으면 안 돼, 를르슈.”
“싫, 어. 빨리 넣어…!”
“눈 뜨면 넣어줄게.”
그 말에 겨우 눈을 뜨고 스자쿠를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눈썹을 내리고서 를르슈를 바라보았을 그 얼굴이, 오늘따라 장난기로 가득한 채로 를르슈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 떴으니까 넣을게. 스자쿠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페니스가 구멍 안쪽으로 들어왔다.
안쪽까지 단숨에 내리찍는 감각에 를르슈는 스자쿠의 어깨에 손톱을 세웠다. 그의 신음과 함께 멈추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금 바로 움직였다가는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스자쿠는 멈추지 않았다. 를르슈의 골반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더해지면서 허릿짓은 거세졌다.
“아, 윽, 으응, 스자쿠, 멈추라고, 말, 했는데…!”
“후우, 오늘은, 를르슈 말, 안 들을 거야.”
“스자쿠, 아, 아! 너무 빨라, 그만, 아, 아아! 아윽!”
스자쿠가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죄여들었던 내벽은 익숙해질 틈도 없이 그가 들쑤시는대로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온몸으로 부딪히는 스자쿠를 끌어안을 새도 없이 몰아치는 섹스에 를르슈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눈물이 마음대로 차오르고 목소리는 높게 새어나가서, 스자쿠의 방 안에서 하고 있는 게 과연 섹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했던 것이 섹스가 맞긴 했던건가. 이게 진짜 섹스인건가. 를르슈는 스자쿠의 어깨에 얹었던 손까지 떨구면서 헐떡거렸다.
평소라면 여유롭게 스자쿠의 허리에 감았을 다리는 허공에 덜렁거렸다. 높아지는 목소리, 멈추지 않는 스자쿠, 계속해서 끝으로 내몰리는 듯한 감각, 더 떨어질 곳도 없이 올라가버리는 기분. 를르슈는 스자쿠의 손을 잡으면서 소리 내어 울었다.
를르슈가 울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스자쿠는 오히려 웃으며 그의 페니스를 만졌다. 앞과 뒤를 동시에 만져지면 눈물은 마를 새 없이 계속 흘렀다. 뿌옇게 변하는 시야 사이로 스자쿠는 짓궂게 웃고 있었다. 멈춰달라고 말해도 돌아오는 건 키스 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이대로는 그냥 가는 수밖에 없어. 머리가, 이상해지면서, 가는 수밖에…!
그 생각을 하자마자 를르슈는 사정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이른 사정이었다. 사정함과 동시에 뒤를 조이자 스자쿠가 깊게 한 번 틀어박았다. 얼마 못가 그의 몸이 떨리더니 안쪽에서 정액이 흐르는 느낌에 를르슈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제서야 섹스 한 번이 끝난 거였다.
“그만, 할래….”
를르슈의 쉬어버린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지만, 스자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계속 할 거야. 오늘은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거거든.”
“…왜, 갑자기.”
“그동안 를르슈 말 잘 들어줬으니까, 나한테 칭찬해주는 겸.”
“그게 무슨…!”
“그리고 를르슈는 이렇게 하는 걸 더 좋아한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어서.”
“내가, 언제 이런 걸 좋아한다고…. 아, 아아, 움, 직이지, 마…!”
“이렇게 말 안 듣는 나도 좋아하잖아.”
스자쿠의 페니스가 다시 커지면서 정액으로 가득 찬 내부를 휘젓는 것이 느껴졌다. 를르슈의 신음이 다시 한 톤 높아지는 것에 스자쿠는 키득거리면서 그의 귓가에 중얼거렸다.
“계속 이렇게 하고 싶었어. 를르슈가 몰랐던 거야.”
스자쿠가 귓볼을 가볍게 씹어오는 것에 를르슈는 그를 겨우 끌어안았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쿠루루기 스자쿠. 그렇다면 제 아랫구멍에 막무가내로 달려들어 박아버리는 이 남자는 대체 누구인 것인가. 누구라고 물어볼 것도 없었다.
이것만큼은 를르슈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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