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르슈 생일이랑 줮도 상관 없어져버린 소설 연성입니다 ㅠ
고뎅님이랑 모럴리스 길티챌린지 하기로 했었는데 저의 미진함에 패배를 인정합니다.
고뎅님의 갓연성은 이쪽에서 봐주세요! https://posty.pe/fhb2xa
저는 쇼타루의 방뇨플을 보고싶었습니다. 그럼 20000!
“스자쿠는 섹스 해봤어?”
“예?”
“섹스, 해봤냐고.”
마치 그것은 고양이한테 또 물렸냐는 식으로 말하는 투라, 스자쿠는 처음엔 못 알아들었다. 그리고 다시 재차 물어보았을 때, 두 번째로 전하의 입에서 ‘섹스’라는 말이 나오고 나서야 스자쿠는 얼굴이 벌개지고 말았다.
“대,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전하!”
스자쿠가 다그치듯이 전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 전하는 더 기분이 상한 듯이 그를 노려보았다.
“해봤구나?”
전하, 그러니까 아리에스의 황자이자 브리타니아 제국의 계승서열 17위의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는 이제 막 10살이 지난 소년답지 않게 똑부러지고 영특한 편이었지만, 가끔은 이런 막무가내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체로 스자쿠 앞에서 그랬다.
오늘의 괴롭힘은 이것인가. 스자쿠는 벌개진 얼굴을 가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전하께 그걸 대답할 의무는 없어요.”
“왜? 내가 물어보잖아. 궁금해.”
“궁금해하시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네요.”
“그냥 알고 싶어.”
“오늘은 이걸로 괴롭히시는 건가요?”
스자쿠가 말하는 ‘괴롭힌다’는 말에 를르슈는 미간을 찌푸렸다. 난 스자쿠를 괴롭힌 적 없어. 곧바로 이어지는 말에 스자쿠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저를 괴롭게 하시잖아요.”
“섹스의 경험을 묻는게 괴로운 거야? 안 해봤으면 안 해봤다, 해봤으면 해봤다고 말하는게 뭐가 힘들어?”
“상황에 따라서는 그건 성희롱이거든요.”
이번에는 를르슈가 당한듯이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이 똑똑한 황자전하께서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다. 스자쿠는 뺨에 오른 열을 식힐 겸 손부채질을 하면서 전하에게 말했다.
“저를 성희롱할 생각이시라면 성공했습니다.”
“그, 그럴 리가 없잖아. 그냥 궁금했을 뿐인데.”
“아무튼 전 대답 안 합니다.”
“C, C.C.가, 스자쿠는 이미 섹스를 해봤다고 그랬어!”
결국 전하를 부추긴 그 인물의 이름이 나오고 나서야 스자쿠는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나이를 알 수 없는 그 묘한 느낌의 여자, C.C.는 아리에스에 살면서 를르슈를 통해 스자쿠를 괴롭히는 데에 도가 튼 사람이었다. 그녀를 떠올리면 저도 모르게 질린 눈을 해버리고 만다. 스자쿠는 그 눈이 전하의 교육에 좋지 않을 것 같아 얼굴을 가리는 것이 습관이 되고 말았다.
“C.C.가 그게 진짜인지 궁금하면 스자쿠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그게 대체 왜 궁금하신 건데요?”
“그게, 그건, 그러니까…….”
대답하지 못하는 전하에게서 스자쿠는 매정하게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저를 놀리려고 하시는 거면 이제 적당히 하세요. 저도 나름대로 바쁜 몸인데.”
스자쿠는 괜히 망토 끝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스자쿠의 정색에 를르슈는 눈을 굴리면서 입술만 달싹거리고 있었다. 스자쿠는 그런 전하의 모습이 귀여워서 괜히 뺨을 찔러보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는 높으신 황족. 마음대로 꼬집고 찔러보았다가는 꼬챙이가 되는 것은 스자쿠일 것이다.
“놀리려고 한 거 아니야.”
전하는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스자쿠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알겠다고 말했다. 정말로? 스자쿠에게 재차 물어보는 를르슈는 스자쿠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아이의 손이 허공을 살짝 해매면서 스자쿠에게 내밀어지고 있었다. 그가 잡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겠는가. 스자쿠는 그의 손을 잡고서 말했다.
“알겠다니까요. 근데 이제 그런 질문은 두 번 다시 하지 마세요.”
“응, 안 할게.”
스자쿠가 단단하게 잡아주는 손에 안심했는지 를르슈는 해사하게 웃었다. 솔직하지 못한 그의 답지 않은 본심이었다. 어린 황자가 그 나이 또래 다운 얼굴로 웃고 있으면 스자쿠는 마음이 편해졌다. C.C.같은 여자가 가끔 흔들어 놓는 것이 걱정스럽긴 했지만, 전하는 똑똑했기 때문에 상대를 잘 살필 줄 알았다.
스자쿠는 이제 한시름 덜은 마음으로 를르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근데 섹스가 뭐야?”
이제껏 신나게 스자쿠를 뒤흔들어놓았으면서, 결국엔 막타를 날리는 것은 를르슈였다. 스자쿠는 이를 악물었다.
* * *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는 스스로 비극적인 사랑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었다. 그가 사랑하는 상대는 무려 열 살 연상의 나이트 오브 세븐이었다. 나이 차이와 신분 차이를 생각하면 자신의 사랑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비극을 받아들이기엔 를르슈는 아직 어렸으며,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똑똑했다. 자신의 사랑이 비극적이지만 파국이진 않다고 믿는 어린 아이 특유의 자신감과 또 그러한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지를 발휘할 능력이 있었다. 즉, 를르슈는 영악했다.
를르슈가 나이트 오브 세븐, 쿠루루기 스자쿠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그는 를르슈의 취향,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저를 볼 때면 부드럽게 미소 짓는 얼굴이며, 다른 때에는 나이트 오브 세븐으로서의 박력을 보여줄 때도 있는 그 차이까지 좋았다. 명예 브리타니아인 출신이지만 자신의 출신에 기죽지 않고서 나이트 오브 세븐의 자리에 오른 것도 멋있어 보였다.
스자쿠가 를르슈를 비롯한 아리에스의 황족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아리에스의 황비 마리안느에 의해서였다. 황비가 되기 전 마리안느는 나이트 오브 라운즈 출신으로서, 황비가 된 지금까지도 그녀는 군사력 면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그녀는 새로운 나이트 오브 세븐이 꽤나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접하게 된 것이다.
나이트 오브 세븐의 능력을 시험할 겸, 아리에스의 경비 체제에도 변화를 주고 싶었던 마리안느는 그대로 스자쿠를 아리에스로 끌고 와 당분간의 호위를 맡기게 되었다.
스자쿠는 제일 처음의 임무가 그 유명한 마리안느 비 브리타니아의 아리에스를 지킨다는 것에 나름의 긴장을 했었으나, 실상을 알고 보면 마리안느가 해외로 외교 출장을 떠날 때의 아이들 보기라는 것을 알고서 꽤나 힘이 빠졌었다. 물론 마리안느의 두 아이들은 스자쿠를 골치 아프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들은 다정하고 상냥했으며, 영특하기도 했다. 다만 스자쿠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다.
“C.C., 네가 말한 건 소용없었어. 오히려 성희롱하지 말라는 이야기나 들었다고.”
“내가 무슨 말을 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C.C.였다. 그녀는 유일하게 를르슈의 짝사랑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자, 그것으로 를르슈를 놀려먹는 삶의 낙을 가진 사람이었다. 지난번에도 자신만만하게 ‘사랑의 비책이다!’라고 말하면서 섹스에 대한 대화를 하면 스자쿠가 금방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는 말을 늘어놓더니, 지금은 정작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뚱하니 대답하고 있었다.
“아, 설마 쿠루루기 스자쿠한테 섹스 이야기를 한 거야?”
“그래.”
“정말 발랑 까진 꼬마녀석이군.”
“뭐?!”
C.C.는 상황을 알겠다는 눈으로 소파에 길게 늘어져 를르슈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를르슈는 크게 타격을 받지 않은 것을 보아하니, 그 쿠루루기 스자쿠가 어떻게 넘겼을 지도 감이 잡혔다. 를르슈는 뭐든지 안다는 식으로 말하는 C.C.에 대해서 늘 의심하고는 있지만, 대체로 그녀가 하는 말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억울할 지경이었다. 오늘의 섹스 이야기도 사실 스자쿠와 길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으니까.
“근데 너 섹스는 뭔지 알고 말하는 거야?”
“알아.”
“호오, 말해주지도 않았는데 알고 있다니 똑똑한 황자전하셔.”
“놀리지 마! 스자쿠가 제대로 알려줬으니까!”
“꽤나 깊은 이야기를 나눴나보군.”
“그래.”
“그래서, 뭔데?”
를르슈는 홍차를 휘휘 저으면서 C.C.를 노려보았다. 또 아이 취급하며 놀리는 게 틀림없었다. 이제 더 이상 대꾸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하며, 를르슈는 딱 잘라 말했다.
“왜? 너는 뭐든지 안다며.”
“이렇게 나온다 이거군. 그럼 나도 방법이 있지. 나도 쿠루루기 스자쿠한테 가서 물어볼 거야.”
“뭐?!”
오늘 그 대화 속에서 를르슈는 솔직히 혼나는 것과 섹스의 의미 말고는 남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C.C.를 보면 스자쿠는 늘 얼굴이 빨개지거나 어쩔 줄 몰라해하는 것 같아서 더 불안했다. 안 그래도 를르슈는 남자고 C.C.는 저 모양이지만 여자였다. 스자쿠가 보통의 남자라면 C.C.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를르슈는 초조해졌다. C.C.가 그런 질문을 스자쿠에게 할 기회조차 주면 안된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알려주면 되잖아!”
“그래, 진작에 그러면 좀 좋아?”
“섹스는 사랑하는 사람이랑만 하는 거랬어.”
“그래서?”
“그러니까 그런 사람과의 경험을 함부로 말하고 다니는 건 예의에도 어긋나고, 남에게 말할 것도 못된다고.”
“흐음.”
C.C.에게 알려주는 것은 속이 쓰리지만, 그래도 스자쿠와 직접적으로 만나게 하는 것보단 나았다. 를르슈는 자신이 배운 것을 알려주었음에도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C.C.를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제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한들 열 살이라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C.C.는 나이는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많다고 들었고, 연령적으로 보았을 때도 를르슈보다 스자쿠에게 더 가까운 편이었다.
“쿠루루기 스자쿠가 정말 그렇게 말했다고?”
그 말투는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이 떠보는 것이었다. 를르슈는 기분이 상한 채로 홍차를 들이켰다. C.C.는 대답하지 않는 를르슈를 보고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네가 어린애라 상대도 안 하는 것 같아, 를르슈.”
“아니야.”
“그럼 쿠루루기 스자쿠가 섹스를 해봤을 거 같아?”
“그러니까 그런 건 말하지 않는 게 예의라고…!”
“그런 말을 믿는군. 역시 어린애야.”
C.C.는 제 앞에 놓인 케이크의 딸기를 쿡 찍어 먹으면서 포크를 흔들어댔다.
“섹스는 말이야, 사랑하지 않아도 할 수 있어.”
“…?”
를르슈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스자쿠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스자쿠가 저에게 거짓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스자쿠의 말을 의심한다는 선택지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너무나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C.C.의 모습에 를르슈는 당황함까지 느끼고 말았다.
“그리고 너는 섹스가 뭔지 모르잖아. 그건 어떤 건지 알아? 어떤 물건을 쓰는지는 알고?”
“…모, 몰라.”
“쿠루루기 스자쿠는 너한테 거짓말을 했네.”
그 말에 를르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스자쿠가 나한테 거짓말을 하다니. 믿을 수 없어.
“그걸 물어봤어야지, 꼬마야.”
C.C.가 노골적으로 놀려댔지만 를르슈는 반응할 수가 없었다. 를르슈의 앞에 있던 케이크의 딸기가 사라져도 를르슈는 멍하니 찻잔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자쿠가 저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대체 섹스가 뭐라고 저에게 그런 거짓말을 한 것일까. 를르슈는 작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렇게 된 이상 직접 알아보는 수 밖에 없었다.
* * *
를르슈가 섹스에 대해서 이전에도 조사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지고 있는 어린이 백과사전도 뒤져보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컴퓨터로도 검색도 해보았다. 하지만 문제는 어린이 백과사전에는 자세한 내용이 실려있지 않았고, 컴퓨터에는 차일드 락이 걸려있어서 조사는 사실상 실패로 끝이 났다. 섹스가 어떠한 행위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자세히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2회차 조사에는 어떤 방법을 써야하는지, 를르슈는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차일드 락이 걸린 자신의 컴퓨터로는 한계가 있었고, 그렇다고 C.C.의 손을 빌리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어머니의 서재를 몰래 빌리는 것도 생각해보았지만, 어머니는 지금 아리에스에서 한창 다른 작업을 하고 있어서 불가능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아예 스자쿠의 도움을 받는다면?
를르슈의 비상한 머리는 곧 시뮬레이션에 들어갔다. 어머니 마리안느의 부탁으로 스자쿠는 아직도 아리에스에 머물고 있었다. 스자쿠에게 조금의 어리광을 부리고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빌려달라고 하면 스자쿠는 순순히 빌려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를르슈의 서재에 가져가서 섹스에 대해 알아보면 된다. 모든 시뮬레이션은 완벽했다. 를르슈는 의기양양하게 복도를 걸어가며 스자쿠의 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스자쿠는 방에 있지 않았다. 중앙통로를 지나가는 길목에서, 통유리로 되어있는 창 너머로 스자쿠와 C.C.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왜 아침부터 C.C.랑…?”
를르슈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이제 가을을 훌쩍 지나 겨울이 되어가고 있는 바깥 공기는 쌀쌀하다 못해 추웠다. 겉옷 하나 걸치지 않고 뛰쳐나온 것이 후회가 되었지만, 빨리 스자쿠와 함께 돌아가면 금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근처로 가까이 가고 있으면 생각보다 꽤 큰 소리가 들려왔다. 스자쿠가 이렇게까지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의 대화상대인 C.C.는 상대적으로 평온해보였다. 오히려 열을 혼자 내고 있는 것은 스자쿠 뿐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전하께 그런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그건 내 자유인데 왜? 오히려 그런 이야기에 놀아나는 건 너무 순진한 척 아닌가.”
“순진한 척이라니, 무슨….”
“네 소문은 유명하다구, 나이트 오브 세븐.”
“…전하께 이상한 소리 하기만 해봐.”
“하면 어쩔건데? 또 거짓말이라도 할 건가?”
“너는 정말!”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을 보다 못한 를르슈가 끼어들었다. 스, 스자쿠! 를르슈의 높은 목소리가 끼어들자 스자쿠는 화들짝 놀라며 를르슈 쪽을 바라보았다.
“전하, 날도 추운데 왜 그런 차림으로!”
“그렇게 안 추운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추운데. 얼굴도 추워서 빨개졌다구요. C.C., 이제 이야기는 됐어, 두 번 다시 그런 이야기를 했다간 마리안느 님께도 말씀 드릴 거야!”
“마리안느는 오히려 재미있어 할 걸. 뭐, 그건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C.C.는 유유자적 다른 방향으로 혼자서 걸어가버렸다. 스자쿠는 를르슈를 한팔에 안은 채로 실내로 내달렸다. 흔들리는 그의 품에서 스자쿠를 꼭 끌어안긴 채로 있는 것은 어딘가 아이 취급 받는 것 같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아침 식사가 준비되는 중인 식당으로 들어가면, 를르슈와 스자쿠 두 사람 밖에 없었다. 나나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나리를 깨우러 가겠다는 메이드의 말에 를르슈는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도 안 계시고 나나리도 없는 지금에서야 그 시뮬레이션을 실행할 때였다.
“저기, 스자쿠.”
“네, 전하.”
“혹시 노트북이나 태블릿 빌릴 수 있을까? 내 거 고장나서.”
“아, 태블릿은 없고 노트북 밖에 없는데 괜찮으시다면요.”
“정말?”
“네, 그나저나 불편하시겠어요.”
“뭐, 며칠 있으면 고쳐질 거니까.”
“마리안느 님께는 말씀 드리셨나요?”
“아, 오늘 말 할거야.”
사실 고장도 안 났으니 말할 생각도 없지만. 를르슈는 식사를 기다리며 스자쿠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궁금한 것은 오늘 아침 C.C.와 나눈 대화였다.
“아침에 C.C.랑 무슨 이야기 했어?”
그 말에 스자쿠는 약간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성실한 그 답게 대답하는 것을 피하지는 않았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대체로 C.C.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뿐이고요.”
“C.C.가 잘못한 일?”
“전하께… 이상한 이야기 좀 하지 말라고 충고했어요.”
“이상한 이야기? 섹스?”
“읏, 전하! 그러니까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고…!”
스자쿠는 얼굴을 가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를르슈가 무어라 더 물어보려고 했지만 어느덧 졸린 눈을 부빈 나나리가 내려왔고, 마리안느 또한 느즈막이 식당에 들어섰기 때문에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뤄졌다. C.C.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들어오지 않다가, 모두가 하나 둘 자리를 뜰 무렵에 아주 늦게 나타났다. 한 손에는 피자 박스가 들려있었다.
마리안느가 한 조각만 달라고 달라붙었지만 C.C.는 솜씨 좋게 그녀의 손을 피해가며 혼자서 피자를 먹어치웠다. 어머니와 C.C.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를르슈는 스자쿠의 방으로 향했다.
모든 것이 시뮬레이션대로였다. 스자쿠의 문 앞까지 다다른 를르슈는 노크를 했다. 금세 문을 연 스자쿠는 를르슈를 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노트북 빌려드린다고 했었죠, 잠시만요. 들어오실래요?”
“그래도 돼?’
“물론이죠.”
를르슈는 바로 돌아가야한다는 제 작전과 다르게 스자쿠의 방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스자쿠의 방에 들어가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설레는 기분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스자쿠가 머물고 있는 방은 원래라면 를르슈의 전임 기사가 머무는 방이었지만, 아직까지 어린 황자에게 기사는 없었으므로 스자쿠가 쓰고 있는 것이었다. 를르슈는 그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마치 스자쿠가 를르슈의 기사라도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기사의 방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었다. 침실과 거실이 따로 있고, 책상이 있는 서재도 작게나마 딸려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그것들이 모두 스자쿠가 쓴다고 생각하면 또 특별해보였다. 를르슈는 스자쿠가 내민 소파 자리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자쿠는 제 방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어린 황자전하가 귀여워서 어쩔 줄 몰랐다. 그가 이렇게 어린 아이처럼 굴 때면 괜히 볼을 꼬집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제 방, 별 거 없죠?”
“아니야, 재미있어. 아, 스자쿠도 책 읽는구나.”
“나름 기사로서의 소양은 필요하다고 해서요.”
“무슨 책 읽어? 나도 빌려줘.”
“그렇게 재미있진 않아요. 군사전략이나 병법 같은 책 밖에 없어서. 싸우는 방법에 대해서 듣는 건 별로잖아요?”
“그래도 궁금해. 스자쿠가 뭐 공부하는지.”
“저에 대해서 궁금하신 게 많네요, 전하는.”
를르슈는 그 말에 꼭 자기가 스자쿠를 좋아하는 것을 들킨 기분이었다. 괜히 더워지는 것 같은 기분에 를르슈는 스자쿠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피하는 를르슈가 솔직하지 못한 것에 스자쿠는 가볍게 웃으면서 노트북을 건네주었다.
“숙제하실 때 쓰시는 거죠?”
“아아, 응.”
“공부 열심히 하세요.”
를르슈는 스자쿠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양심에 찔렸지만 노트북을 받았다. 를르슈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떨어지는 손에 를르슈는 괜히 아쉬워졌다. 스자쿠의 방에 더 있고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시뮬레이션대로 조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를르슈는 받은 노트북을 소중히 들고 자기 서재로 달려갔다. 작은 발소리가 성급하게 뛰는 것에 지나가던 메이드들이 의아한 듯이 쳐다보았지만, 를르슈는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를르슈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버린 것이었다.
* * *
약 세 시간 반 만에 를르슈는 완전히 어른이 되어버린 제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노트북을 닫기 전, 마지막으로 검색 기록과 인터넷 기록을 모조리 다 삭제한 를르슈는 허탈하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섹스란 그런 것이었다. 스자쿠가 말하기를 극구 거부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남자와 여자가 뒤엉켜 뒹구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고 나서야 를르슈는 아침을 전부 다 게워낼 뻔했다. 하지만 그것을 겨우 억누르며 영상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보았다. 그것은 를르슈에게 있어서 파렴치한 일이었고 불결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것이 섹스라는 행위이며, 더 나아가서는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태어난다는 것을 알고 나면 를르슈는 자신의 출생부터 믿고 싶지가 않았다.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만나 아이를 만드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과정이 이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를르슈는 넋이 나간 얼굴로 스자쿠의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너무 오랜 시간 붙들고 있으면 스자쿠에게도 민폐를 끼칠 것 같앗다.
밖으로 나가면 햇살이 어느덧 쨍쨍해졌고, 추운 겨울의 공기도 살짝 따뜻해져 있었다. 밖에서는 나나리가 겨울 꽃의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었다. 여동생이 놀고 있는 모습에 를르슈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겨우 밀어냈다.
나나리의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으로 무장하고, 스자쿠의 방으로 향했다. 빨리 돌려주고 나서 자신의 일상을 되찾고 싶어졌다.
스자쿠의 말을 듣는 것이 맞았다. C.C.의 부추김에 넘어가서는 안 되었다. 를르슈는 한숨을 내쉬면서 최대한 빨리 스자쿠의 방문 앞으로 도달했다. 문을 두어번 똑똑 두드려도 안쪽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스자쿠가 잠시 방을 비운 것 같았다. 이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까웠기 때문에, 를르슈는 스자쿠의 방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딛었다. 안쪽에서는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두고 나오면 될 것이다. 를르슈는 발소리를 죽여가며 테이블 근처로 다가갔다. 노트북을 조심스럽게 두고 나면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왜인지 모르게 나쁜 짓을 잔뜩 저지른 기분이었다.
어제 스자쿠에게 섹스에 대해서 함부로 물어본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런 것의 경험이라면 스자쿠도 말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 일들에 대해서 누가 알려주고 싶어할까. 를르슈는 마른 세수를 하면서 스자쿠의 방 밖으로 나가려고 고개를 돌렸다.
타이밍이 좋지 않게 바깥 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스자쿠였다.
“어라, 전하. 여기 계셨나요?”
“스, 스자쿠.”
를르슈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스자쿠는 그런 를르슈의 모습에도 제 일을 살피러 들어온 모양인지 옷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곧 파란 망토를 꺼내들고 있었다.
“스자쿠, 어디 가는 거야?”
“네, 나이트 오브 라운즈 집합 명령이 떨어져서요.”
“갑자기?”
“그러게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금방 불안해졌다. 스자쿠가 아리에스에 있는 일이 있어도 그는 나이트 오브 세븐이었고, 라운즈로서 나가는 전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 를르슈의 불안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스자쿠는 그를 돌아보며 별 거 아닐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정말 급한 일이면 소집하기도 전에 바로 전장으로 불려나갈 겁니다. 괜찮아요.”
“정말로?”
“네, 걱정 마세요.”
망토를 걸친 스자쿠는 를르슈가 가져다 둔 노트북을 보았다. 공부는 잘 하셨나요, 라는 말에 를르슈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서는 황급히 끄덕거렸다. 어설펐던 거짓말이 들통나는 건가 싶었지만 스자쿠는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안 그런 척 하는 것 같았지만 그 또한 갑작스러운 나이트 오브 라운즈 소집 명령에 긴장한 것 같았다.
지금은 어린 를르슈가 더 끼어들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를르슈는 먼저 방을 나서기로 했다.
“빌려줘서 고마웠어. 잘 다녀와.”
“네, 그러겠습니다. 전하도 오늘 하루 잘 보내세요.”
“…응.”
스자쿠가 문을 닫고 나서, 둘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현관 쪽으로 향하는 길에서 를르슈는 나가려는 스자쿠를 불렀다. 그의 부름에 스자쿠는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스자쿠는 어딘가 날이 선 듯한 눈으로 를르슈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의 부름에는 다시 상냥한 눈동자로 녹아들었다. 그의 이런 배려가 좋았다. 를르슈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서 무릎을 굽히는 것까지도, 스자쿠의 모든 것이 좋아졌다. 그런 마음이 넘쳐나서 이대로 스자쿠를 보내기가 아쉬웠다.
“조심히 다녀와야 돼.”
“예, 전하.”
스자쿠는 를르슈를 보고서 웃어주었다. 금방 돌아올거예요. 그의 어깨는 딱딱하게 굳어있었지만, 를르슈에게 하는 말들은 전부 부드럽고 달콤했다. 스자쿠가 떠나기 전에 나나리와 마리안느도 모여서 다 같이 배웅인사를 나누었다. 나나리는 스자쿠가 어딘가 위험한 곳에 간다고 생각했는지 눈물을 글썽거리며 보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마리안느의 ‘별 거 아닐 거야’라는 말에 안심하며 그를 보내주었다. 그녀의 말에 위로를 받은 것은 를르슈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두의 배웅을 받은 스자쿠가 차를 타고 떠나가고 나서, 를르슈는 나나리의 종이접기 놀이에 같이 어울리기로 했다. 학 한 마리 한 마리를 접는 것에 신중한 나나리와 다르게 를르슈는 어느 곳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였다.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던 를르슈는 어느새 나나리가 나간 것도 알지 못한 채였다. 를르슈의 책상 주변에는 나나리가 접어둔 열 마리의 학과 를르슈가 접다 말아버린 꽃 한 송이가 놓인 채였다.
멍하니 있던 를르슈의 의식은 갑작스럽게 현실로 이끌려나와야만 했다. 서재 문이 부서져라 쾅, 하고 열어버린 사람 때문이었다. C.C.는 아침과 비슷한 자세로 피자 박스를 들고 문 앞에 서있었다. 그녀는 를르슈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는지 꽤나 놀란 눈으로 를르슈를 바라보았다.
“나나리가 밖에 있길래 너도 밖에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
“…너는 누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잘도 그런 식으로.”
“그러니까 없을 줄 알았다는 거잖아. 놀랐으면 미안해.”
순순히 사과하는 C.C.의 모습은 놀라운 일이었지만 지금의 를르슈에게는 그 놀라움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를르슈의 머릿속을 지금 헤집고 있는 생각은 단 하나 밖에 없었다. 섹스. 대체 그것이 왜 자꾸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지가 를르슈에게는 의문이었다. 생각 정리에 능숙한 를르슈는 자신이 왜 그런 더럽고 파렴치한 것에 계속 신경이 쓰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C.C.는 딴 생각에 정신이 팔린 를르슈를 알아차렸는지, 피자 박스를 풀면서 그것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접다 만 장미꽃을 구깃거리면서 접는 둥 마는 둥 하는 손가락질이 를르슈의 속내를 내비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쿠루루기 스자쿠가….”
를르슈가 그러는 이유는 단 하나 밖에 없었다. C.C.가 스자쿠의 이름을 꺼내면 를르슈는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시선이 마주함과 동시에 바로 입을 다무는 C.C.의 모습에 를르슈는 놀림 당하는 기분 반, 초조해지는 마음 반으로 그녀를 닦달했다.
“스자쿠가, 뭐?”
“아니, 별 건 아니고. 나이트 오브 라운즈 회의에 갔다면서?”
“…뭐야, 그 이야기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여.”
“뭐, 안 어울릴 거 같으면서도 그렇게 갖춰 입은 걸 보면, 쿠루루기 스자쿠도 나이트 오브 세븐이 맞구나 싶어서.”
“무슨 말이야, 그게.”
를르슈는 C.C.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건성으로 접었던 장미꽃을 내팽개쳤다. 를르슈의 아이다운 짜증이 드러날 때면 C.C.는 늘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뭐가 또 불만이실까, 황자전하.”
“불만 같은 거 없어.”
“쿠루루기 스자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봐?”
“그런 게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완전히 초조해져서.”
“아니라고! 나는 지금 섹스 때문에…!”
를르슈는 제 입 밖으로 뛰쳐나온 그 단어에 눈을 동그랗게 떠버렸다. C.C.는 어제 자랑스럽게 ‘섹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고 떠들어대던 를르슈가 오늘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에 눈을 가늘게 뜨며 다시 되물었다.
“섹스? 섹스가 왜?”
“시, 신경 쓸 거 없어. 그냥 말이 잘 못 나온 거야.”
“말이 잘 못 나올 정도로 섹스에 대한 생각만 가득하고 있는 건가? 황자전하도 참, 꽤나 응큼하셔라.”
응큼하다는 말에 를르슈는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C.C.는 어제와 완전히 달라진 를르슈의 반응에 그가 그 짧은 반나절 사이에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그것을 캐내는 것이 C.C.의 즐거움이었다.
피자를 한 조각 먹으면서 다시 조용해진 를르슈를 바라보고 있으면, 를르슈는 혼자서 심란한 표정으로 손 안의 접다 만 장미꽃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더 기다리고 있으면 먼저 미끼를 무는 것은 를르슈 쪽이 될 것이다. C.C.는 느긋하게 피자의 맛을 음미하며 기다렸다.
“C.C.….”
를르슈의 약간 힘없는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졌다. C.C.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천연덕스러움에 를르슈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를르슈의 자초지종을 들은 C.C.는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배를 잡고 뒹군 것은 아니지만, 한참 진지하게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것에 초를 치는 것이라면 그 역할을 단단히 해낸 웃음이었다.
“웃지 말란 말이야!”
“를르슈, 웃지 않을 수가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지 말라고 하면 너무 잔인하잖아.”
“나는, 나는 심각해.”
“뭐가?”
“스자쿠가 만약에 섹스를 해봤다고 하면 어떡해?”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그러게.”
를르슈는 더 이상 대꾸하지 못했다. 엉망으로 구겨진 장미꽃을 쓰레기통으로 집어던진 를르슈의 모습에 C.C.는 다시 피자 한 조각을 들었다. 놀리는 건 이쯤에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래보여도 사랑에 고뇌하는 어린 소년이다. 놀려먹는 재미도 있지만, 나름의 진심을 부딪히고 있는 것이 기특하기도 했다.
“상관이 없을 리가 없지. 너는 쿠루루기 스자쿠를 좋아하잖아. 쿠루루기 스자쿠가 다른 사람이랑 섹스를 해봤다면, 걔 논리대로라면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 아니겠어?”
“…그, 렇게 되는 거겠지.”
“어쩔래, 를르슈? 라이벌 등장인데.”
“스자쿠가 섹스를 해봤다는 건 확실한 게 아니잖아. 그냥, 그렇다는 가정인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잖아.”
“최악… 이긴 하지만.”
C.C.는 떨어지려는 페페로니 조각을 겨우 입에 물면서 우물우물 삼켰다. 를르슈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사랑하면 그런… 짓을 꼭 해야만 하는 거야?”
“뭐,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지. 통속적으로는 그래.”
“자연스럽다고?”
“그렇지 않으면 세상 인구 수가 이렇게까지 늘어날 일이 있겠어?”
“그건, 그러네.”
혼자서 고민하던 를르슈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C.C.를 바라보았다.
“그럼 나도 스자쿠랑 섹스할 거야.”
소년의 목소리는 떨림 없이 C.C.의 귀에 와닿았다. 한참 하얗게 질렸다, 발갛게 달아올랐다를 반복한 얼굴에는 결연한 의지가 비쳤다. C.C.는 지금 이 순간에 쿠루루기 스자쿠가 없는 것이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순서가 반대로 되잖아, 그럼.”
“…그렇게 해서 스자쿠가 나를 좋아하면 상관 없잖아. 어차피 좋아하면 섹, 스 하게 되니까.”
“뭐,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섹스는 의외로 쉽지 않아?”
를르슈는 C.C.의 말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상냥하게 들렸지만 어딘가 꺼림칙한 구석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상대는 없었으므로, 그녀를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C.C.는 피자 한 조각을 다시 우물거리면서 먹었다. 그것을 참을성 있게 기다린 를르슈는 다음 말을 기대했다.
“남자는 좋아하는 사람 말고는 반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구. 그러니까, 일방적으로 밀어부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란 말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응.”
“넌 너무 어리잖아. 열 살이 섹스를? 그게 가능하다면 발랑 까진 게 아니라 그 상대를 강간범으로 불러도 시원찮을 거다.”
“스자쿠가 강간범이 된다는 이야기야?”
“통속적으로는 그렇다는 거지. 그러니까 네가 섹스를 한다는 이야기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이란 이야기라는 거야, 이 앙큼한 꼬마야.”
“그럼, 어떻게 해?”
“어떻게 하긴, 네가 기다리거나 쿠루루기 스자쿠가 기다려야지.”
를르슈는 ‘기다려야 한다’라는 결론에 도달한 이야기를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같이 대화를 하던 C.C.가 피자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자리를 박차고 나서는 모습에 그녀를 더 붙잡진 못했다. 항상 제멋대로인 그녀를 붙잡아두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에도 를르슈를 놀려먹으려고 그런 긴 이야기를 꺼낸 것인지, 아니면 또 스자쿠를 괴롭힐 방법으로 그런 것인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그것은 스자쿠와 섹스를 하는 것이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를르슈는 자기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마음은 기다림의 세월 동안 쉽게 사그라드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언젠가 스자쿠와 섹스하는 것은 필수적인 단계가 될 것이다.
* * *
별 거 아니라고 말했던 스자쿠가 아리에스로 돌아오는 날까지 꼬박 일주일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를르슈가 돌아온 스자쿠를 만난 곳은 다른 곳도 아닌 승전식의 연회장이었다.
사교계의 데뷔가 아직은 를르슈가 연회장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마리안느의 도움이 컸었다. 너도 언젠가는 나가봐야 할 세계이니 미리 겪어도 상관 없겠지, 라는 말로 마리안느는 를르슈를 대동하고 연회에 참석했다. 그녀가 등장하자마자, 황제가 총애하는 다섯 번째 황비의 등장에 사람들은 일순 크게 술렁거렸다.
“역시 서민 출신이라 그런가, 이런 자리에 아이를 데려오다니….”
“…나이트 오브 라운즈와 친분이 있다고 해도 그렇지.”
“예의 범절에 대한 공부가 아직까지도….”
그 술렁거림이 꽤나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를르슈는 제 어머니에 대한 뒷담화를 들으면서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오늘 이 연회에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대거 참여한다는 소식을 접한 마리안느를 조른 것은 를르슈였다. 어머니에게 이런 소리를 듣게 하는 것이 미안하긴 했지만, 혹시나 스자쿠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앞섰다.
를르슈가 오랫동안 헤매지 않아도 스자쿠의 존재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인사를 하고 있는 무리에서 파란 망토가 있었다. 를르슈는 그쪽으로 발을 조심스럽게 옮기면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어갔다. 작은 를르슈의 끼어듦에도 사람들은 다른 곳에 시선이 박혀있었다.
중심으로 가면 갈수록 스자쿠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섞인 말소리도 들려왔다.
“정말, 나이트 오브 세븐도 참. 그렇다면 이번 주말에 저희 살롱에 와주시는 건가요?”
“레이디께서 원하신다면요.”
“그럼 주말 말고 오늘밤은 어떠실까요? 연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데….”
“하하, 오늘밤은 너무 이르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나이트 오브 세븐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드물잖아요.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은 걸요.”
스자쿠의 품에 거의 달라붙어 있는 여자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러나 더 싫은 것은 그런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이 능숙해보이는 스자쿠였다. 를르슈는 뒤쪽에서 스자쿠의 망토를 끌어당겼다. 처음에는 미미한 힘이었지만, 나중엔 돌아보지 않는 스자쿠가 괜히 미워져서 힘주어 두어 번 잡아당겼다.
나중에 스자쿠가 뒤돌아보았을 때, 를르슈는 거의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르, 를르슈 전하?!”
스자쿠는 를르슈를 보자마자 한눈에 알아보았다. 주변에서 스자쿠의 반응을 보고 를르슈에 대해서 관심을 갖자, 스자쿠는 를르슈를 한 팔에 안고서 그를 발코니 쪽으로 끌고 나갔다. 스자쿠의 품에 매달린 를르슈는 화려한 연회장을 등지고 나가는 것이 불안했지만, 스자쿠와 함께라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스자쿠도 분명 반가워서, 그래서 따로 인사를 하려고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자쿠는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를르슈에게 화를 냈다.
“전하, 이런 자리에 오시기에는 너무 이르시지 않나요? 대체 이런 곳에서 뭘하고 계신 겁니까?”
“나는, 스자쿠가 여기에 올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스자쿠야말로 왜 아리에스에 먼저 안 오고 여기에 있는 거야?”
를르슈의 지지 않는 대답에 스자쿠는 그를 바닥에 내려 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저는 일 때문에 그렇습니다. 전하는 여기에 어떻게 계시는거죠? 마리안느 님은 알고 계시나요?”
“어머니랑 같이 왔어.”
“마리안느 님께서 허락하셨다고요?”
“어, 어차피 이런 자리에는 나도 크면 자주 올거니까….”
“하아…. 그런 식으로 오시면 곤란합니다. 정말로.”
스자쿠는 를르슈와 시선을 맞추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그와 눈맞춤이 없는 것이 불편하고 불안해서 를르슈는 스자쿠의 망토 끝자락을 쥔 채로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스자쿠는 내가 와서 싫어?”
긴 침묵 끝에 를르슈가 겨우 물어보았다. 졸린 눈을 부비면서 스자쿠가 오는 밤을 새웠던 날들이 생각났고, 오늘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일들을 떠올리면 스자쿠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외로운 싸움이었다.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이 만남을 달가워하지 않으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전하가 온 게 싫다는 게 아니라…. 전하?!”
“나는, 스자쿠, 만나려고…흐윽.”
를르슈가 결국 눈물을 떨구기 시작하면 울음은 저절로 흘러 나왔다. 스자쿠는 그의 울음에 당황한 듯 를르슈를 바로 끌어안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전하, 제 말은…. 스자쿠의 더듬거리는 목소리가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 수 있었지만, 를르슈는 울음이 쉽게 멎지 않아서 더 눈물이 났다.
“울지 마세요, 전하. 제가 잘못했어요.”
“그치만, 스자쿠, 화냈잖아.”
“그건…. 그건 여기가 전하께 너무 이른 자리여서.”
“나한테 화냈어….”
“고의로 그런 건 아니였어요.”
를르슈는 스자쿠의 품에 꼭 매달렸다. 울음이 멎고 나면 찬바람에 기침이 나왔다. 콜록거리는 를르슈를 보고서 스자쿠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날씨는 쌀쌀해진지 오래였지만, 망토 차림의 스자쿠는 그럭저럭 견딜만 했던 것에 비해 를르슈의 옷차림은 한없이 가벼웠다. 그가 감기에 걸리기 전에 금방 돌아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린 스자쿠는 연회장 쪽으로 몸을 다시 돌렸다. 를르슈는 스자쿠가 다시 그 회장으로 돌아간다는 걸 깨닫고서 발에 힘을 주고 버티었다.
“나, 지금 들어가기 싫어.”
“그렇지만 계속 여기에 계시면 감기 걸려요. 마리안느 님을 찾아서 얼른 아리에스로 돌아가셔요.”
“스자쿠랑 같이 갈래.”
“저는 아직 일이 덜 끝나서….”
“싫어, 같이 갈 거야.”
칭얼거리는 를르슈의 목소리에 변명을 늘어놓던 스자쿠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같이 가겠다는 확답을 받아내고 나서야 를르슈는 스자쿠의 팔에 이끌려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마리안느는 를르슈를 찾고 있었다. 안 그래도 늦은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를르슈와 함꼐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를르슈가 사라졌으니 회장 안은 알게 모르게 소란스러워졌으나, 스자쿠가 를르슈를 데리고 나타남으로써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마리안느는 를르슈에게 이제 더 이상 어디론가 가지 말라는 말과 함께 그를 어느 대기실에 잠시 머물게 했다. 아리에스로 향하는 차를 부르려면 시간이 제법 걸린다는 말을 덧붙이며. 스자쿠도 함께 있어주길 바랐지만, 그는 나이트 오브 세븐으로서 인사를 다하고 와야한다는 어머니의 말에 보내주는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빈 대기실의 구석을 지키고 있을 때, 잠깐 졸린 눈을 붙이고 있었을 때였다. 드레스 차림의 여자들이 구석에 있는 를르슈를 눈치 채지 못한 채로, 시끄럽게 떠들며 대기실에 들어왔다.
“아, 아쉬워라. 나이트 오브 세븐에게 써먹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뭐? 정말 쓰려고 했어, 그 약? 여기서?”
“사랑의 묘약이래잖아. 나이트 오브 세븐 정도면 난 괜찮은걸.”
“어머, 큰일 날 소리를…. 아무리 라운즈라고 해도 명예 브리타니아인이잖아. 비위도 좋아, 정말.”
“그렇지만 잘생겼잖아? 매너도 좋고. 밤에도 잘한다고 그랬어.”
“마담의 말을 믿니, 너는?”
“믿어서 손해볼 건 없지!”
그녀들의 목소리는 쟁쟁하게 울려서 를르슈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귀아픈 소음을 참아내며 그녀들이 나갈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 갑자기 구석에서 툭 튀어나와 그녀들을 놀래키는 것은 더 일이 복잡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구둣소리와 함께 그녀들이 나가고 나면, 를르슈는 제 상태를 살피러 거울 앞에 섰다.
누구나 쓸 수 있는 화장대 위에는, 연분홍색 액체가 들어있는 유리병이 있었다. 나나리가 좋아할 법한 색감의 그것을 를르슈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게 뭘까. 함부로 열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독이라도 들어있다면 사건은 커지고 말아지니까.
를르슈는 제 검지 손가락 마디만한 작은 유리병을 굴리면서 그것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약’
‘사랑의 묘약’
방금 전에 떠들고 간 여자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았다. 그런 것이 정말 있나. 를르슈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주머니 안으로 몰래 집어 넣었다.
를르슈가 주머니 안에 그것을 넣자마자, 스자쿠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전하, 이제 돌아가셔야합니다. 차도 도착했어요.”
“아, 으응. 갈게.”
스자쿠가 내미는 손을 잡고서 를르슈는 열이 오르는 제 뺨을 찬바람이 식히는 것을 느끼며 차에 올라탔다. 차문을 닫아주는 스자쿠의 옷깃을 무심코 잡아버렸다.
“스자쿠는 같이 안 가?”
같이 가기로 했잖아, 라는 투정을 담아서 물어보면 스자쿠는 곤란한 것처럼 눈썹을 낮추며 말했다.
“저는 다음 차로 바로 가겠습니다. 마리안느 님, 조금 있다가 뵙겠습니다. 전하도요.”
스자쿠는 를르슈의 작은 손등 위에 입을 맞추며 손을 떼어냈다. 생각해보면 스자쿠와 를르슈 사이에는 엄연한 신분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같은 차에 탈 수 없는 일도 만들어내기도 했었다.
뒤로 스자쿠가 탄 차가 따라오는지, 를르슈는 창문 밖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어느새 지쳐서 잠이 들고 말아버렸다.
* * *
그날 이후로 를르슈는 감기로 앓아눕게 되었다. 아무래도 찬바람을 맞으며 울어버린 것의 영향이 큰 듯 했다. 마리안느와 친한 황비로부터의 취소할 수 없는 선약이 있었고, 어린 나나리는 감기가 옮을 수도 있으니 를르슈의 감기가 나을 때까지는 근처에 가지도 못하게 되었다. 홀로 남은 를르슈를 간병하는 것은 스자쿠였다. 스자쿠는 하루를 반납한 채로 를르슈의 간병을 돕겠다고 나섰다.
“뭐, 나이트 오브 세븐이 있다면 를르슈도 안심하겠지.”
“전하께서 감기에 걸리신 건 저 때문이니까요.”
“그럴 것까지야. 를르슈가 괜한 고집을 부렸겠지.”
마리안느는 누워있는 를르슈의 볼을 꼬집었다. 얼른 나으렴, 를르슈. 를르슈는 눈을 깜빡이며 어머니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했다. 열기로 화끈거리는 뺨에 모두의 손이 차갑게 느껴졌다.
겨울 감기는 독했다. 를르슈는 두 차례나 기절하듯이 잠을 자야만 했다. 처음엔 어머니를 배웅하고 나서, 두 번째는 스자쿠가 겨우 일으켰을 때였다. 스자쿠는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를르슈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에 서둘러 약을 먹였다. 를르슈는 열감으로 부옇게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보이는 스자쿠의 얼굴이 필사적이어서,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정도 감기는 금방 나을 수 있는데. 스자쿠의 반응이 유난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약을 먹고 나면 한결 나아진 상태가 되었다. 사이드 테이블 위에 놓인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나면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가 있었다. 샤워는 아직 하기엔 이를 게 분명했고, 젖은 옷이라도 갈아입을 심산으로 를르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감기에 걸린 몸이라고 어딘가 휘청거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스자쿠를 부를까 했지만, 밖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를 들어보면 스자쿠는 나나리의 투정을 받아주느라 정신이 없는 듯 했다. 오라버니는 언제 나나리랑 놀아요? 글쎄요, 전하께서는 아직 많이 아프셔서…. 언제 나아요? 나나리의 귀여운 목소리가 안타까움으로 남아서, 를르슈는 빨리 나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옷장 근처로 가던 를르슈는, 제가 어젯밤에 숨겨 놓은 분홍색의 유리 병을 찾아냈다.
사랑의 묘약.
이것의 정체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를르슈의 안에서는 그 유리병은 이미 사랑의 묘약이 되었다. 를르슈는 부드럽게 일렁거리는 액체를 흔들어보다가, 조심스럽게 그 뚜껑을 열어보았다.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지만, 열기로 인해 반쯤 놓아버린 이성이 호기심에게 져버리는 순간이었다.
뭐랄까, 달콤한 냄새다. 과자 같은 것보다는, 꽃향기 같은 달큰한 향. 를르슈는 흐릿해진 머리로 그 분홍색 액체의 냄새를 맡았다. 계속 그 향을 맡고 있으면 머리가 더 어지러워지는 것 같았다. 술이라고 하기에는 향이 너무나도 달았다. 맛보면 달콤한 맛이 날 것 같았다.
사랑의 묘약을 먹으면 어떻게 될까. 를르슈는 제가 지금껏 나나리와 함께 읽어왔던 동화책을 떠올렸다. 사랑의 묘약을 먹은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약에 취해 있을 뿐,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면 묘약의 저주에서 풀려나곤 했었다.
그것은 묘약이 아니라, 일종의 맹목을 만드는 저주였다. 그 저주의 약을 가지고 돌아온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스자쿠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런 정체불명의 것을 스자쿠에게 먹일 수는 없었다. 를르슈는 달콤한 향을 내뿜는 유리병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삼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 * *
거의 울기 직전까지 간 나나리의 칭얼거림은 그녀의 낮잠시간을 알리는 메이드의 도움으로 겨우 끝낼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를르슈의 상태를 보러 온 스자쿠는 발소리를 죽이며 그의 침실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는 약 기운에 취해있었지만 열은 떨어지고 있었으니 이번에 마지막으로 약을 먹으면 감기는 금방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애들은 아프면서 크기 마련이야. 마리안느의 말을 떠올리며 그 말이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를르슈는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댄 채로 쌕쌕거리고 있었다. 방금 전보다 더 차분해져야 할 숨소리가 더욱 힘겨워진 것 같아보였다.
“전하, 괜찮으세요?”
열이 갑자기 오르는 모양인지 를르슈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혼자서 옷을 갈아입은 모양인지 를르슈의 잠옷도 바뀌어 있었다. 무리하시면 안되는데…. 스자쿠는 작게 중얼거리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를르슈를 흔들어 깨웠다. 혹시라도 정신을 잃을 정도라면 의사를 불러야만 했다. 다행히도 를르슈는 눈을 뜨며 스자쿠와 엉성하게 시선을 맞추었다.
“스, 자쿠….”
“네, 전하. 정신이 좀 드세요?”
“물, 마실래. 목 말라.”
그 말에 바로 물을 잔에 담아 건네주면 를르슈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으려고 했다. 이러다가는 엎지르겠어. 스자쿠는 다시 그의 손에서 잔을 빼내고서 제가 직접 턱에 손을 받쳐 먹여주었다. 를르슈가 천천히 삼킬 수 있게 잔을 기울여주면, 를르슈가 꿀꺽꿀꺽 삼키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열이 더 오르는 거 같아요, 전하. 의사를 부를까 하는데.”
“의사 싫어. 괜찮아질 거야, 금방.”
“그럴 것 같지가 않아서요. 마리안느 님께도 연락을 드리고….”
“괜찮다고, 하잖아…!”
를르슈의 잠긴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자 스자쿠는 놀란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큰 소리를 내자마자 숨이 가빠오는 듯 헐떡거리는 를르슈의 호흡에 스자쿠는 를르슈의 이마를 짚었다. 미지근한 열이 돌기는 했지만 의사를 부를 만큼의 고열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그의 몸은 뜨거웠지만 감기로 인한 열감은 아니었다. 이는 다른 것에서 오는 부작용이었다.
스자쿠는 를르슈가 오늘 먹었던 것들을 떠올렸다. 하루 종일 거의 물이나 과일 같은 것으로 끼니를 떼우고, 그것을 제외하고는 감기 약을 먹은 것이 고작이었다. 를르슈의 이마를 쓸어주던 스자쿠는 그에게 물었다.
“전하, 혹시 오늘 먹은 약에 알러지나, 그런 게 있으신가요?”
“그런 건 없는데….”
를르슈는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면서 스자쿠의 시선을 피했다. 그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 때면 꼭 스자쿠의 시선을 피하곤 했었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붉어진 목덜미를 보고서 한숨을 쉬었다. 상태가 더 안 좋아지기 전에 그의 주치의를 부를 생각이었다.
“전하,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전하의 반응은 감기 증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응?”
“독에 당했을 때의 반응이에요. 열이 떨어져야 할 시간인데 미열이 계속 돌고 있어요. 의사를 부르겠습니다.”
“아니, 그러지 않아도 돼.”
“아뇨, 의사에게 보여야합니다. 해독은 빨리 하는게 좋아요. 아니면 대체 뭘 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스자쿠의 단호한 말투에 를르슈는 여전히 시선을 맞추지 못한 채로, 이불 밖에 내민 두 손을 꼬옥 주먹 쥔 채로 떨고 있었다. 확실히 그런 를르슈의 태도를 보면 그가 무언가를 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으나, 그가 입을 열기 전까지 스자쿠는 알 길이 없었다. 다그치듯이 그의 주먹 쥔 손을 잡아오면, 를르슈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안 모양인지 입술을 달싹거렸다.
작게 떨리는 말문은 곧 또렷한 문장으로 이어졌고, 스자쿠는 그가 하는 말을 놓치지 않고 듣다가, 믿을 수가 없어서 재차 물었다. 뭐를 드셨다구요? 스자쿠의 재차 묻는 말에 를르슈는 훌쩍거리면서 말했다.
“사랑의, 묘약을, 먹었다구…!”
사랑의 묘약.
그것은 식민지 에리어, 특히나 향락으로 유명한 곳에서 제일 먼저 유통된 미약이 이름이었다. 브리타니아 귀족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갔다. 마약보다는 가볍지만, 단순한 미약 이상의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주는 약이었다. 스자쿠가 보기에는 그것은 ‘사랑의 묘약’이라는 미명으로 불려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나라 차원에서 아예 유통을 금지시키는 것이 제일 최선이었지만, 이미 귀족과 황족 사이에서는 소문난 것이기에 막는 것도 어려웠다.
여느 높으신 분의 집이라면 그 사랑의 묘약을 바닥에 나뒹굴어도 할 말이 없지만, 여기는 아리에스였고, 를르슈는 어린 아이였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입으로 ‘먹었다’라고 말했다.
단번에 정리하기 힘든 사실들의 나열에 스자쿠는 잠시 손을 멈추고 를르슈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그의 붉어진 얼굴이나 촉촉하게 젖어드는 피부 같은 것들이 눈에 보였다. 독이 아니라 사랑의 묘약 -어차피 그 또한 독이긴 했지만-의 흔적이었다.
“그 약을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
“어제, 연회장에서….”
“전하! 그게 뭔지 알고서 드신 거예요?!”
아픈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도 모르게 답답한 마음에 윽박을 지르게 되었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불안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 그 전에 그 약이 확실한 건가요? 전하, 지금 얼마나 위험한 짓을 저질렀는지 아십니까!”
“아, 알고는 있는데…!”
스자쿠는 를르슈가 내미는 작은 유리병을 살펴보았다. 제가 알고 있는 그 약과 똑같은 생김새였다. 운이 좋게 안의 내용물까지 맞다면 효과는 5시간 안으로 사라질 것이다.
다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성인의 기준이었다. 어린 를르슈의 몸에는 어떤 반응이 올지 알 수가 없었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몸을 살피기 위해서 그가 덮고 있는 이불을 걷어내려고 했다. 그러자 를르슈가 이불을 있는 힘껏 당기면서 그의 손을 내치려고 했다.
“시, 싫어, 하지 마!”
“전하, 지금 그러실 때가 아니에요. 몸이 괜찮으신지 확인을 해야….”
“읏, 괜찮아, 괜찮으니까!”
“전하!”
를르슈의 힘은 스자쿠를 이길 수 없었다. 억지로 걷혀진 이불 아래에서는 를르슈의 벌어진 다리 사이가 보였다. 를르슈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제 다리 사이를 가렸지만 이미 스자쿠의 시선은 한참 전에 그것을 보고 말았다.
어린 아이에게도 그 미약은 효과가 있는 듯 했었다.
반쯤 내려온 바지 사이로는 를르슈의 작은 페니스가 드러난 채로 있었다. 를르슈가 금방 손으로 가리긴 했지만 무슨 상황인지 스자쿠는 단박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약에 의해서 흥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흐윽, 아까 전부터, 계속 이래서, 그러니까….”
울음이 섞인 를르슈의 말에는 수치심에 어쩔 줄 모르는 것이 느껴졌다. 본인 스스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알고는 있는 모양이었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도 스자쿠는 그의 아래를 살피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를르슈는 그의 시선에 그만 보라며 이불을 빼앗으려고 했다.
“이, 이제 그만 봐, 이제 됐잖아!”
“전하, 혹시 약 부작용으로 발진이라도 있으면….”
“없다구! 괜찮다니까…!”
스자쿠는 그 말에 더 이상 참지 않고서 를르슈의 바지를 완전히 벗겨버렸다. 속옷까지 단숨에 내려간 를르슈의 다리 아래는 훤하게 드러났다. 를르슈는 갑작스럽게 닿는 바깥 공기에 다리를 움츠렸다. 스자쿠는 아랫쪽에는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를르슈를 바라보았다.
“위에도 제가 벗겨드릴까요?”
“시, 싫은데 대체 왜 그러는 거야?”
“확인해야하니까요. 전하는 지금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시나 본데, 그 약은.”
“아, 알아!”
“…안다구요?”
를르슈는 스자쿠의 손에 들린 이불을 빼앗았다. 아래를 겨우 가리고 나서야 를르슈는 스자쿠와 눈을 맞출 수 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스자쿠를 원망하듯 노려보았지만, 를르슈는 스스로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다고 재차 말했다.
를르슈는 이불 아래로 다리를 끌어모으며 중얼거렸다.
“세, 섹스할 때, 쓰는 약이잖아.”
그 말에, 스자쿠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눈물에 젖은 를르슈의 시선은 다시 한 번 를르슈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 * *
를르슈가 그 묘약이 섹스에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된 경위는 단순했다.
처음에는 내려갔던 열이 서서히 다시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감기의 열과는 달랐다. 야릇한 느낌이 온몸을 뒤덮어가는 것에 를르슈는 내뱉는 숨마다 뜨거워지는 것을 깨달았다. 알 수 없는 열감으로 머리가 다시 한 번 멍해지고 있었다.
제일 먼저 답답해지는 것은 다리 사이였다. 를르슈는 속옷 아래가 답답하게 죄여오는 것을 느끼면서 불편함을 느꼈다. 느릿한 사고 회로를 굴려가며 왜 그런지 답을 유추해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저절로 손이 가는 아랫도리를 만져보면 그곳은 열기로 팽팽하게 부풀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그것에 의문을 품지 않고서, 를르슈는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축축한 열로 가득한 페니스를 위아래로 훑으면서, 어느 순간에는 바지와 속옷을 내리면서 좀 더 편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를르슈의 더운 숨이 흩뿌려지고, 그는 허리까지 흔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앳된 신음이 혼자 있는 방을 울리고 있는 것을 겨우 깨달았다.
이상해, 이건 이상해…. 하지만 기분 좋아.
를르슈는 기분이 좋다는 것을 깨닫고서는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기분이 좋아, 라는 말을 바보들처럼 내뱉었던 그 영상들이 떠올랐다. 섹스. 섹스를 하는 사람들은 기분이 좋다고 그랬다. 를르슈는 자신이 하반신을 내놓고서 바보처럼 페니스를 만지작거리며 기분 좋음에 취해있는 것이 그들의 몸짓과 닮아있음을 알았다.
섹스는, 정말로 기분이 좋은걸까?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댄 를르슈는 이불 아래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따끈한 체온으로 데워진 그곳에는 를르슈의 다리 사이로 솟은 페니스가 다음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 만지면 더 좋은 곳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건, 안 좋은 게 아닐까. 그렇지만 손은 쾌락을 좇아 정직하게 다시 페니스를 향했다. 얕은 숨과 신음이 번갈아 입술 밖으로 흐르면서, 를르슈는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자신의 절정을 향해서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쾌락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이상해질 것 같아…!
를르슈가 절정의 기미를 느낀 것은 순간이었다. 아앗, 하고 짧은 신음과 함께 를르슈는 허리 아래로 무언가가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짧지만 를르슈의 정신을 단숨에 앗아가는 것이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제 몸을 내리훑는 것에 페니스를 감싸고 있던 손마저 덜덜 떨리고 말아버렸다.
그리고 스자쿠의 손길에 의해서 다시 정신을 차릴 때까지 잠들고 말아버렸다.
* * *
섹스는 몇 주 전에 를르슈가 스자쿠를 괴롭힌 질문에 섞여 나온 것이었다. 그에게는 에둘러서 설명하느라 진이 빠져버렸고, 순진한 를르슈는 그것을 믿고서 더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다시 둘 사이에 튀어나온 섹스라는 단어에 혼란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를르슈가 스스로 자위를 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가 얼굴을 붉히면서 ‘섹스’라는 단어를 썼다는 사실이 더 스자쿠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스자쿠가 원정을 떠났던 그 짧은 시간 안에 를르슈가 섹스에 대해서 더 알아낸 것이 분명했다. 그를 부추기는 인물도 바로 옆에 있고 (예를 들면 C.C.라던가) 그의 엉뚱한 행동력을 떠올리면 그것은 금방이라도 가능했다. 오히려 스자쿠의 둘러대는 말에 넘어가준 것이 이상할 정도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런데도 그 약을 드셨다고요?”
스자쿠의 목소리가 낮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은 를르슈가 저를 꼭 속인 것만 같아서 기분이 나쁜 거 같기도 했으며, 한편으로는 그를 이렇게까지 부추긴 인물에 대한 분노가 섞여들어가기도 했었다. 알 수 없는 기분 나쁨이 스자쿠를 짓누르는 걸, 를르슈는 알지 못한 채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체 왜 자꾸 그런 짓을 하시는 거예요? 전하는 아직 어리니까.”
“스자쿠가 좋으니까.”
를르슈는 스자쿠를 바라보며 말했다.
“스자쿠가 좋으니까, 이렇게 하면, 섹스해줄 지도 몰라서….”
밭은 숨 사이로 들리는 말들의 발음은 너무나도 또렷해서, 스자쿠는 못 들었다고 말하기도 할 수가 없었다. 를르슈는 제가 고백 중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목까지 붉어진 채로 말을 이어갔다.
“섹스는 사랑하는 사람이랑만 하는 거라고, 스자쿠가 그랬으니까. 나도, 약을 먹으면 스자쿠랑 섹스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라고 말을 떼어놓고 난 다음의 를르슈는 울음을 터뜨렸다. 볼을 타고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에도 스자쿠는 를르슈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떠오르는 말들을 주워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황자전하가 유독 저를 잘 따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럴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입밖으로 세어나가는 것은 엉뚱한 질문이었다.
“그럼 그 약을 저한테 먹이셨어야죠, 왜 전하가…?”
“그치만, 무슨 약인지도 모르는데 스자쿠한테 먹일 순 없잖아.”
를르슈의 말은 묘한 감동이 있었다. 물론 열 살짜리가 해낼 법한 생각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스자쿠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를르슈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을 우선으로 하기로 했다. 그의 침대 곁에 조심스럽게 앉으면 를르슈는 자리를 내어주었다.
어린 소년의 발칙한 생각에 장래가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스자쿠는 를르슈의 젖은 뺨을 닦아주며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전하, 몸은 괜찮으세요?”
“뭔가… 불편해.”
“네?”
를르슈는 젖은 눈으로 스자쿠를 바라보았다.
“스자쿠, 몸 안에서, 뭔가가 힘들어…. 계속, 계속 자꾸 뜨거워져서.”
그 눈은 완전히 애욕에 젖은 것이었다. 스자쿠의 품으로 파고드는 를르슈는 그 뜻을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면서, 모르는 눈으로 천진난만하게 그 몸을 기대어왔다. 스자쿠의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면서 말하는 를르슈의 숨결은 달게 느껴졌다.
스자쿠는 한참을 떨리는 숨으로만 저에게 닿아오는 를르슈를 끌어안고서, 많은 생각 끝에 결론에 도달했다. 성욕에 들뜬 황자의 모습은 어리지만 매력적이었고, 그러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배덕감 그 자체였다.
“혼나는 건 나중에 합시다. 몸이 편해지는 게 우선이니까요.”
그리고 를르슈를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스자쿠가 지켜야만 하는 존재였으며, 상처를 줄 수는 없었다.
“하고 싶다고 하셨죠, 섹스.”
를르슈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스자쿠의 혀가 타고 넘어 들어왔다. 작은 입안을 깊게 채워들어가는 혀는 큰 반항 없이 받아들여졌다. 정확히는, 를르슈가 지금 자각 없이 스자쿠의 키스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이런 키스는 낯선 것이다.
스자쿠는 그에게 겁을 주고 싶었다. 키스는 이렇게 낯선 것이고, 섹스는 더욱 무서울 것이라고. 그러면 를르슈는 스자쿠를 아무리 좋아한다고 한들, 이런 무서운 경험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이 행위가 멈출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과 다르게 를르슈의 작은 혀가 스자쿠의 것에 맞닿아왔다. 할짝거리는 혀의 움직임은 스자쿠의 움직임과 닮아있었다. 영리한 황자는 이런 방면까지도 그 영특함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흐응, 응, 으응. 새어나오는 콧소리와 그게 새근거리면서 내쉬는 숨 따위가 느껴졌다. 벌어지는 작은 입술 사이에서 새는 숨이 간지러웠다.
스자쿠, 스자쿠…. 를르슈의 입술을 놓아주고 나면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열락에 녹은 시선이 스자쿠를 쳐다보며 그 이상을 원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스자쿠는 작은 입술에 다시 입을 맞추었다. 타액을 넘겨주며 그의 숨을 앗을 듯이 깊은 키스를 나누었다. 방금 전보다 높아진 신음이나 더운 숨이 스자쿠의 목덜미를 적셔왔다. 를르슈의 더운 몸이 닿아오는 것에 스자쿠는 그의 아래에 손을 뻗었다.
“거기… 만지는, 거야?”
“싫으신가요?”
“아, 아니. 스자쿠니까, 괜찮아.”
아래를 더듬는 손길에 를르슈는 벌어진 다리를 움츠렸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게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 이상 를르슈가 겁을 냈으면 좋겠지만, 그런 스자쿠의 바람과 다르게 를르슈는 더욱 과감하게 몸을 움직였다.
사부작거리며 이불을 걷어낸 를르슈는 제 바지와 속옷을 벗었다. 를르슈의 움직임에 스자쿠는 놀란 눈을 하며 그것을 쳐다보았다. 연분홍색의 발기한 귀여운 페니스가 스자쿠의 눈앞에 드러났다. 그것으로도 를르슈는 충분하지 않은지, 앉아있는 스자쿠의 허벅지 위에 올라타기까지 했다.
적극적인 움직임, 하지만 그것은 농염하기 보다는 무언가를 모방하는 것 같은 순진함이 느껴졌다.
“세, 섹스할 때는, 이렇게 하는 거잖아?”
“…전하, 대체.”
“고, 공부 했어. 스자쿠가 말하는 거랑은 좀 달랐지만.”
를르슈의 ‘공부’가 어디서 튀어나온 말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을 묻기 전에 스자쿠는 다시 제 입술을 조심스럽게 덮쳐오는 를르슈의 입술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번엔 를르슈의 혀가 스자쿠의 입안으로 섞여들어왔다. 달콤한 한숨과 함께 를르슈의 부드러운 입술이 문질러지는 것에, 스자쿠는 입을 벌리며 그 혀를 탐닉했다.
질척한 소리와 함께 스자쿠의 손은 벌어진 를르슈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멈칫거리던 를르슈의 몸뚱이는 이내 긴장을 풀려고 무던한 애를 쓰면서 스자쿠의 허리에 제 다리를 감싸왔다.
“아앙, 아, 아읏, 흐으…. 스, 스자쿠…!”
스자쿠의 허벅지 위에서 허리를 들썩거리는 를르슈는 스자쿠의 손이 페니스에 닿자마자 울먹거리면서 신음을 내뱉었다. 를르슈의 페니스는 팽팽하게 발기하면서도, 아직은 사정할 수 없는 몸에 갇힌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 스자쿠는 그 페니스 아래의 고환을 쓰다듬으면서 손끝으로 그것들을 문질렀다.
“아, 거기, 거기, 이, 이상해, 흐아, 읏, 으응, 스자쿠, 스자쿠.”
스자쿠는 울음을 결국 터뜨리고 말아버린 를르슈의 얼굴을 보면서, 이제 멈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성과 다르게 손은 멈출 수가 없었다. 를르슈의 체액으로 얼룩진 페니스를 손으로 훑으면서, 그의 작은 목덜미에 입술을 맞추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뒤로 빠지려고 하는 를르슈의 허리를 잡아채며 계속해서 그가 이 열감 속에서 허덕거리게 만들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이상하면… 그만둘까요, 전하?”
“흐응, 아니, 아니 싫어, 계속 해서, 응, 섹스, 할 거야.”
섹스를 계속 할거라고 말하는 그 대답을 어쩌면 기다렸을 지도 모른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파자마 상의를 벗기면서 그를 완전한 알몸으로 만들었다. 아직 옷차림을 갖추고 있는 스자쿠의 위에서 알몸으로 뒹굴고 있다는 것이 수치스러운지, 를르슈의 몸은 연한 붉은빛으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스자쿠는 작은 쇄골에 입을 맞추면서 중얼거렸다.
“무서우시면 그만두겠습니다.”
“싫, 싫어. 스자쿠, 좋아하는데…!”
를르슈는 스자쿠의 목을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스자쿠, 는… 내가 싫은, 거야? 좋아하지 않아? 섹스하기 싫어?”
가느다란 팔이 제 목에 둘러지며, 커다란 눈동자는 울음을 담은 채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매달고 있었다. 스자쿠는 대답 대신에 다시 입술을 맞추었다. 움직임을 멈추었던 손도 다시 그의 작은 페니스를 만졌다. 를르슈는 이어지는 쾌락 속에서 스자쿠의 목을 끌어안은 채로 허리를 흔들어댔다.
“스자, 쿠, 이상해, 흑, 이상해, 무서워, 무서워….”
“무섭다고 하셔도 이제는 안 멈춰요. 전하께서 하고 싶다고 하셨으니까요.”
“멈, 멈추면, 싫어, 계속, 흣, 근데, 무서워, 혼자서 할 때랑, 달라…!”
“혼자서 할 때는 어떠셨나요?”
“기, 억 안 나…. 지금이랑, 달라, 지금은, 무서워.”
이윽고 스자쿠는 손 안에 있는 를르슈의 패니스가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내 를르슈는 소리 없이 입만 뻐끔거리면서 스자쿠의 품에 있는 힘껏 매달렸다. 사정하지 않고서 절정에 이른 를르슈의 몸을 받아내며, 스자쿠는 그를 침대 위로 눕혔다.
잘 익은 뺨이며 목덜미, 가슴팍에 입술을 맞추었다. 혀를 굴려 가슴 부분을 핥아대면 쾌락으로 저 끝까지 굴러 떨어진 를르슈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새어나왔다. 그의 피부는 어디를 맛보아도 부드럽고 달았다. 스자쿠는 이제는 이 작은 소년의 몸을 통해 흥분하다는 것을 결국 인정했다. 를르슈의 모든 것을 갖고 싶어지는 충동 또한 이제 자신의 마음이라고.
“섹스는 어떻게 하시는 줄 알고서, 그러신 거죠?”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거렸다. 계속 높아지는 성감 때문에 를르슈의 의식은 흐릿했지만 영리한 두뇌는 아직도 작동하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의 경우에는 여자의 질, 남자와 남자의 경우에는 구멍이 단 하나 밖에 없었다. 스자쿠를 그 곳으로 받는다는 생각에 를르슈는 잠시 겁이 났지만, 이제 더는 돌이킬 수가 없음을 알았다. 스자쿠를 가질 수 있는 방법도 이것이 전부라는 것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스자쿠는, 섹스, 해봤어?”
다시 질문은 처음으로 돌아온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순진한 물음에 그의 힘없이 늘어지는 페니스를 매만지며 말했다.
“네, 해봤습니다.”
“사, 사랑하는 사람이랑…?”
“……섹스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할 수 있어요.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는 게 제일 좋지만요.”
“나는, 스자쿠를 사랑하니까, 섹스할 수 있어. 스자쿠는…?”
스자쿠는 를르슈가 무슨 말을 기대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저는 전하를….”
그러나 그런 말을 하기에는 이 소년은 너무나 어리다.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줬다고 해서 스자쿠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그 마음을 안다고 한들, 그 어린 아이 특유의 변덕이 어떻게 변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전하를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뜻밖의 대답에 를르슈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다리 사이, 손끝으로는 회음부를 지나가며 그 뒤의 구멍을 쓰다듬었다. 마른 구멍 안으로 손끝을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전하가 원하시는 걸 모두 이뤄드리고 싶어요.”
스자쿠의 말을 이해하기까지의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를르슈의 사고가 끊긴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것은 스자쿠가 를르슈의 벗은 몸을 구석구석 핥기 시작하면서, 마지막엔 자신의 손가락을 파묻은 구멍까지 애무하는 것에서 를르슈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 마! 거기 핥지 마! 싫어, 싫어, 스자쿠, 싫어!”
를르슈의 반항은 무력했다. 스자쿠는 그의 몸을 돌려 뉘인 채로 구멍에 혀를 밀어넣을 뿐이었다. 안쪽을 더 파고드는 스자쿠의 혀에 를르슈는 이불을 그러쥐고서 바들바들 떨었다.
“히익, 읏, 으응, 싫어, 싫, 어어…!”
충분히 적셔졌다고 생각이 들면 스자쿠는 를르슈의 뒤에 손가락을 다시 밀어넣었다. 처음보다 느슨하게 풀어진 구멍이었지만 그래도 를르슈의 몸에 긴장이 바짝 든 탓에 자신의 성기를 밀어넣는 것은 무리일 듯 싶었다.
“섹스하면 기분이 좋아요, 전하.”
울고 있는 를르슈를 달래며 스자쿠는 두 번째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안쪽을 압박하는 손가락 때문에 를르슈는 말도 못하면서 숨만 고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전하께서 열심히 해주면, 저는 전하가 좋아질 지도 모르죠.”
저에게 좋다고 말한 소년에게 하는 말치고는 너무 잔인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변덕에 놀아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기에, 스자쿠는 일부러 그에게 그런 말을 꺼냈다. 힘 빼세요, 라고 귓가에 속삭이면 를르슈가 울음을 참는 소리와 함께 뒤쪽의 긴장이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몸 자체가 유연하게 녹아들어가는 것에 스자쿠는 그의 안쪽을 더욱 집요하게 헤집기 시작했다.
스자쿠의 손가락이 뱃속을 긁어내리는 기분에 를르슈는 끙끙 앓으면서도 스자쿠에게 그만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손가락이 깊은 안쪽까지 파고 들었을 때, 를르슈는 숨을 멈추고서 몸을 내리찍는 듯한 느낌에 스자쿠의 팔을 붙잡고 말았다.
“스, 스자쿠, 그만…! 이상해, 무서워!”
“이미 늦었어요.”
“흐응, 아, 아, 누르지 마, 뭔가, 읏, 으응, 오, 오줌 쌀 것 같단 말이야…!”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가늘게 눈을 떴다. 를르슈의 말은 사실인 듯 싶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귀찮아지는 것은 스자쿠의 몫이었지만 그러나 그런 를르슈의 모습까지도 보고 싶어졌다. 이 당돌한 꼬마 황자님의 추태까지도 궁금한 충동은 스스로도 놀라웠다.
“괜찮아요, 전하가 뭘 하든 전 다 괜찮아요.”
그래서 우리는 섹스, 할 거잖아요?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고개를 저었다.
“섹스 안 해도 되니까, 이제 그만…!”
“싫어요, 전 하고 싶어요.”
스자쿠가 를르슈의 페니스와 애널을 모두 동시에 괴롭히면 를르슈는 엉엉 울면서 그만하라고 소리를 죽이며 말했다. 더 크게 외치고 싶지만 억눌리는 쾌감 때문에 목소리조차 쉽게 낼 수 없는 모양이었다.
스자쿠가 세 개의 손가락을 밀어넣고 를르슈의 느끼는 부분을 마구잡이로 찔러댈 무렵에, 를르슈의 뒤는 질척거리는 애액 소리로 가득했다. 를르슈의 발갛게 익은 몸은 발산되지 못하는 쾌락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계속 참아오는 요의 때문에 를르슈는 한계였다.
“이제 넣을게요.”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만…. 작은 목소리가 애원했지만 스자쿠는 벨트 버클을 풀 뿐이었다. 앞섬을 내리고 드러난, 흉흉하게 발기한 스자쿠의 것에 를르슈는 침대 한 구석으로 도망가려고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스자쿠의 손이 재빠르게 그의 허리춤을 붙잡았다.
“전하, 왜 도망 가세요?”
“싫, 싫으니까….”
“제가 싫어지셨나요?”
“흑, 스자쿠, 그만해.”
를르슈의 다리를 벌리면서 스자쿠는 자신의 페니스를 작은 입구 앞에 맞추었다. 진득한 체액끼리 맞붙는 소리에 를르슈는 귀까지 붉어졌다. 저게 뱃속으로 들어오면 더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더 했다가는 정말 싸버릴 지도 몰랐다.
“정말, 정말 오줌 나온단 말이야…. 그만할래, 그만할 거야…!”
를르슈의 마지막 부탁에도 스자쿠는 아랑곳 않고 삽입을 진행했다. 잔뜩 손가락으로 풀어두었지만 페니스와 손가락은 질량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압도적인 그 차이에 를르슈는 숨을 할딱거리며 배를 그러쥐었다. 히이익…! 새는 숨소리에서 공포가 묻어났다.
하지만 그런 를르슈를 배려해야한다는 마음과, 이 짓을 그만둬야한다는 생각,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가서 어디까지고 괴롭히고 싶은 파괴 충동이 스자쿠를 뒤흔들었다. 느릿하게 움직여야만 했지만 를르슈의 하얗게 질리는 얼굴 사이에 떠오르는 쾌락에 대한 공포가 모든 충동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안으로 억지로 밀어붙이면 를르슈의 새된 비명과 함께 시트가 축축하게 젖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스자쿠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를르슈의 울음을 참는 등이 떨리면서 어깨가 둥글게 말려들어갔다. 섹스의 쾌락에 이기지 못하고 실수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를르슈는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린 참이었다.
“전하, 기분 어때요?”
“…그, 만하랬는데.”
“좋으셨나봐요. 편해지셨죠? 그럼 저 계속 할게요.”
“히익, 시, 싫어, 싫어, 그만할 거야, 스자쿠랑 섹스 안 해…!”
“또 싸셔도 괜찮아요. 전하는 어리니까 귀엽기만 한걸요.”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울음소리를 내며 싫다고 몸을 비볐다. 축축해진 시트를 한 구석으로 몰아 치워버리면서 스자쿠는 귀두 끝만 걸쳐놓고서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거칠게 이어지는 피스톤질에 를르슈는 신음다운 소리 조차 내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를르슈의 다리 사이는 혈흔으로 가득하고, 몸은 스자쿠의 입술 자국으로 가득했다. 페니스를 계속해서 밀어넣으면 넣을수록 를르슈는 얼굴을 가리며 괴로워했다. 섹스는 쾌락이 따라야 즐겁기 마련이다. 스자쿠는 아직 젖어있는 를르슈의 페니스를 문질러주었다. 갑작스럽게 지펴지는 쾌락에 를르슈가 당황한 듯이 스자쿠의 손을 내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거기, 마, 만지지 마! 하앙, 아앗, 아, 그만, 그만, 배, 아프니까!”
“뱃속이, 제 걸로, 가득해서 기분 좋으시잖아요.”
“읏, 아아, 아! 아아! 아! 아윽, 스자쿠, 스자쿠!”
“저도, 이제 한계, 네요.”
를르슈는 갑자기 뱃속을 적시는 느낌에 눈을 부릅떴다. 스자쿠의 사정이었다. 섹스 중의 성인 남성이 내뿜는 정액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생경함에 저도 모르게 배를 끌어안고서 숨을 멈추었다.
피와 정액이 섞여서 분홍빛의 점액질이 를르슈의 뻐끔거리는 구멍 사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를르슈는 제 엉덩이 사이를 타고 흐르는 느낌에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스자쿠가 그 작게 떨리는 몸을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저는 전하가, 좋아질 것 같아요.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난, 스자쿠가….”
“제가 섹스해서 싫어졌죠?”
“아냐, 그냥… 무서워서, 계속 싫고.”
를르슈는 고개를 떨구면서도 스자쿠의 눈치를 보았다.
“나야말로 오줌, 싸버리고… 내가 싫어졌지, 스자쿠?”
그런 를르슈의 반응에 스자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죠. 전하야말로 저한테 질리셨죠? 이건 섹스가 아니라….”
“아냐, 섹스였어! 내가, 중간에 싫, 싫다고 한건 진심이 아니니까.”
필사적인 를르슈의 반응에 스자쿠는 입맛이 써졌다. 그런 인상을 쓴 스자쿠의 모습에 를르슈는 조심스럽게 그의 몸에 닿아왔다. 알몸이지만 를르슈는 아직 열기로 따뜻하고 부드럽게 녹아있었다. 스자쿠의 얼굴을 감싼 를르슈는 곧 입을 맞춰왔다. 밋밋하게 혀를 밀어넣는 키스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지만 스자쿠는 입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저를 붙들고 있는 작은 손을 떼어낼 용기는 스자쿠에게 없었다. 아직 미열이 남아있는 를르슈의 몸을 끌어안으면서, 스자쿠는 이 품 안의 작은 황자를 어떻게 달래야할지 조금 막막해졌다. 그 막막함을 초래한 황자—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는 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설프게나마 섹스를 했다는 것에 대해서 만족하며 수마에 빠져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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