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 다녀온 로로와 나나리는 각자 몫의 아이스크림과 푸딩 뿐만이 아니라 를르슈의 푸딩까지 사들고 왔다. 말하지 않아도 저를 챙겨주는 동생들의 따뜻함에 감동을 받은 를르슈는 기꺼이 그 푸딩을 맛있게 먹기로 했다. 어느새 화해한 두 사람은 서로 소파에 앉아서 아이스크림과 푸딩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를르슈도 남은 소파의 자리에 앉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유명한 브리타니아의 휴양지를 소개하고 있었다. 높은 산과 이어지는 바다가 장관을 이루는 모습에 로로와 나나리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번 여름방학에 저기 갔으면 좋겠다. 그쵸? 저도 그 생각 했어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를르슈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여름방학 때 말이야, 브리타니아 말고 다른 데 가보고 싶지 않아?”
“브리타니아 말고 다른 데? 어디?”
“음… 일본 안에서? 정확한 건 안 정해졌고.”
나나리는 흥미가 생긴다는 눈을 하고 있었지만, 반대로 로로는 시큰둥했다.
“난 브리타니아가 좋아. 가던 데 갈래.”
“브리타니아는 매년 가니까 다른 곳에도 가보고 싶어요.”
아니나 다를까 달라지는 두 사람의 의견에 를르슈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나리는 이번 여행에 따라올 것 같았지만 로로는 설득이 필요해보였다.
“이번 방학에 스자쿠랑 같이 여행 갈 생각이거든. 너네만 괜찮다면 같이 가면 더 좋고.”
“그럼 형은 브리타니아에 안 가는 거야?”
“그렇게 되겠지.”
“근데 저희도 같이 가도 돼요?”
“물론이지. 스자쿠가 먼저 같이 가자고 그랬어.”
안도하는 나나리와 다르게 로로는 아직도 꺼림칙한 모양이었다. 아무도 안 가는 브리타니아에 혼자서 가는 것도 낯가림이 심한 로로에게는 버거운 일이었고, 그렇다고 (로로의 기준에서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스자쿠와의 여행을 같이 가는 것도 싫은 일이었다.
“두 사람 다 내년엔 수험생이니까 어디 나가기도 힘들잖아. 나는 같이 갔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를르슈가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꺼내자마자 로로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옆에 있던 나나리도 신이 나서 박수를 쳤다. 두 사람이 저렇게 원하고 있다면 로로에게 거절의 선택지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로로가 가겠다는 의지를 보이자마자 나나리도 안심한듯이 떠들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요? 산? 바다? 를르슈가 아직 자세한 건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하자, 로로가 저는 산이 좋다고 말했다. 그럼 산으로 갈까? 그렇지만 저는 바다도 좋은데요! 나나리가 지지 않고 말했다. 바다는 끈적거리고 싫어. 로로가 중얼거렸다. 산도 올라가면 덥잖아요. 두 사람의 아웅다웅 다투는 소리에 를르슈는 안도하며 드디어 푸딩을 뜯을 수 있었다.
“아무튼. 여행 가야하니까 둘 다 시험 잘 봐야돼. 보충수업 안 들으려면 말이야.”
“아.”
“아.”
맨날 벼락치기를 밥 먹듯이 하는 쌍둥이를 알고서 하는 말이었다. 정곡을 찔린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저를 쳐다보는 두 시선에 를르슈는 새삼 두 사람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밤 자기 전에, 를르슈는 오랜만에 제 어머니 마리안느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쌍둥이를 거의 키우다시피 한 것은 자신이지만, 그래도 진짜 보호자는 마리안느였다. 사업상의 일로 전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는 마리안느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 감이 잡히질 않았고, 그런만큼 전화가 쉽게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런 예상을 깨고서 마리안느는 단 세 콜 만에 받았다.
‘를르슈? 무슨 일이니?’
“어? 바로 받으시네요.”
‘그럼 받지 말 걸 그랬나?’
“아뇨, 그게 아니라.”
‘요새는 잘 지내고 있니? 로로랑 나나리는?’
“잘 지내고 있어요. 로로랑 나나리도요. 곧 있으면 시험인데 아직까지도 공부를 안 하는 게 좀 걱정이랄까.”
‘뭐, 어련히 잘 하겠지. 를르슈가 옆에 있으니까 크게 걱정은 안 되는데.’
“일이 닥치면 알아서 하는 애들이라 괜찮겠죠.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여행을 갈 건데요.”
겨우 본론으로 들어왔다. 를르슈가 이렇게까지 대화를 하는 중에 휘둘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마리안느가 제 어머니가 아니라 적이었다면 꽤나 골치아픈 상대였을 것이다. 고작 이야기 하나 전달하는 거에도 진이 빠졌다.
‘누가?’
“저희 셋이랑 스자쿠랑.”
‘헤에, 스자쿠 군은 단둘이 가고 싶었는데 를르슈가 괜히 어색해서 로로랑 나나리 데려가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스자쿠가 먼저 넷이서 가자고…!”
‘솔직해져도 돼. 엄마한테 뭘 숨기니.’
“아니라니까요!”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서 를르슈는 시간을 떠올리곤 입을 다물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이 느껴졌다. 단둘이 가고 싶었던 것은 오히려 자신이었다. 스자쿠가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단둘이 가는 줄 알고 설렜던 것도 있었다. 로로와 나나리가 같이 간다는 사실을 알고서 살짝 실망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결론적으로 넷이서 가서 좋은 것은 당연했다. 넷이서 가는 게 더 좋다! 를르슈는 속으로 내린 결론을 믿고서 다시 냉정을 되찾으려고 애를 썼다.
‘동생들 앞에서 야한 짓 하면 못 쓴다, 를르슈.’
“안 해요!”
‘그럼 스자쿠 군이 실망할 텐데.’
으윽. 더 이상 대꾸하는 것이 그 도발에 반응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를르슈는 숨을 고르고서 대답하기를 멈추었다.
“아, 아무튼 여행을 가게 되었으니까 이번 방학에는 브리타니아에 못가게 되었다고요.”
‘이런, 코넬리아랑 유페미아가 아쉬워하겠는걸.’
“어쩔 수 없죠.”
‘슈나이젤도.’
“그건 제 알 바가 아닙니다.”
후후후, 냉정하구나, 를르슈. 어머니의 놀리는 듯한 말투에 를르슈는 한숨을 쉬고서 휴대폰을 고쳐쥐었다.
“이제 다 말했으니까 끊을게요.”
‘어렸을 때 전화를 끊으려고 하면 매달렸는데, 를르슈도 다 컸구나.’
“대체 언제적 이야기를….”
‘그래, 여행 가기 전에 한 번 얼굴은 봐야지. 조만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게. 잘 자렴, 를르슈.’
조만간 일본이라면 지금은 어디라는 건지. 를르슈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생겼지만 더 이야기가 길어진다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마리안느와의 전화를 끊고 나면 하루가 드디어 끝이 났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깜깜한 창문 밖의 하늘을 보고 있자니, 피곤한 와중에도 웃음이 새어나왔다. 피식 웃고 있는 제 모습이 실없어 보였다. 를르슈는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전화하는 동안 스자쿠에게서 온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이제 밤이네. 좋은 꿈 꿔, 를르슈. 그 밑으로는 검은 고양이가 앞발로 하트를 그리고 있었다. 귀여운 놈. 를르슈도 갈색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자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오늘은 좋은 꿈을 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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