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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자쿠 생일 2021 (未完)

DOZI 2021.07.10 20:14 read.329 /

아무도 없는 자기 방에서, 를르슈는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로열 프라이빗 라인을 켜두고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깜깜한 화면 너머에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표정을 굳히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를르슈를 이렇게까지 심란하게 만들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다. 를르슈는 그 남자의 이름을 되뇌이며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스자쿠… 화가 많이 난 건가.’

 

화가 났다고 하면 이쪽도 만만찮게 화가 났는데. 왜 지는 쪽은 늘 나란 말이냐. 를르슈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면서 다시 한 번 까만 화면을 노려보았다. 바라본다고 오지 않는 연락이 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괜한 심술을 부리고 싶었다. 시간을 보면 벌써 새벽이었다. 한숨도 자지 못한 채로 그의 연락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리 자숙 중이라고 하더라도 황자로서의 일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었기에 컨디션 조절은 중요했다. 하지만 스자쿠와 관련된 일이면 왜인지 냉정을 잃고 감정적으로 대하게 되었다. 오늘처럼 날을 새버린 경우는 드물었지만 말이다. 이대로라면 나나리가 잔소리를 하겠어…. 를르슈는 조금이라도 자야겠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겨내지 못한 잠기운에 무거워진 몸이 침대로 가라앉았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는 밖을 보면서 를르슈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에도 내가 잘못한건가? 그렇게 고민을 하다보면 끝도 없었다. 아냐, 이번만큼은 스자쿠가 나쁜 거야. 를르슈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 * * 

 

출전만 하면 백전백승의 기록을 세우는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의 전장에서, 그 기록이 깨질 뻔한 일이 있었다. 를르슈가 타고 있던 지휘관기가 추락하면서, 하마터면 적의 수중에서 죽을 수도 있었던 그 상황을 도운 것은 스자쿠였다.

스자쿠는 처음부터 그 작전을 좋아하지 않았다. 를르슈가 거의 목숨을 내놓고 도발하는 식의 작전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런 역할이라면 KMF에 더 익숙한 제가 맡는 게 낫습니다. 아예 못을 박듯이 말하는 말에 를르슈는 코웃음을 쳤다. 너야말로 그런 일을 하면 제 역할을 못할 게 뻔해. 내가 한다. 이때만큼은 를르슈가 상관이었기 때문에 스자쿠는 이를 악물며 그 명령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스자쿠가 말하는 대로 되었다. 를르슈는 적을 도발했지만 도망치지 못했고, 격추당하는 를르슈를 스자쿠가 겨우 구해냈다. 자신의 조종석 아래로 를르슈를 구겨넣은 스자쿠는 큰 소리 하나 내지 않고서 를르슈를 노려보기만 했다.

전투는 승리했지만, 를르슈와 스자쿠의 관계는 거의 파탄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를르슈를 데리고 기지에 도착하자마자 스자쿠는 그를 의무실로 데려갔다. 를르슈의 뺨을 붙잡고서 그의 얼굴을 살피고, 끌어안고서 팔다리를 주무르듯 만져본 스자쿠는 그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자마자 냅다 를르슈에게 주먹을 갈겼다. 갑자기 포옹을 받다가 얻어터진 뺨을 쓸어보며 를르슈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큭, 이게 뭐하는 짓이야!”

“한 대 맞을 각오는 한 거 아니였어?”

“그렇다고 사람을 쳐?!”

“내가 그 작전은 안된다고 했지. 그리고 하더라도 내가 하는 게 맞았어. 너는… 너는 가끔 너 자신을 너무 믿는단 말이야. 전쟁터는 네 체스판이 아닌데도.”

“하, 잘나신 나이트 오브 라운즈께서 그게 불만이셨다?”

 

비꼬듯 말해주면 스자쿠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이윽고 낮아지는 그의 목소리에 를르슈는 몸을 움츠렸다.

 

“네가 죽을 뻔 했어. 네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면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결론적으로는 내가 이겼어.”

“내가 아니었으면 죽었겠지.”

“그럼… 그럼 죽게 내버려두던가!”

 

잘 먹힐 거라고 생각했던 작전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자신이었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은 그런 식으로 폭발했다. 를르슈는 내질러 놓고 나서 뒤늦게 스자쿠의 눈치를 보았다. 크게 벌어진 스자쿠의 눈은 분노로 들끓고 있었다. 그런 말은 좋지 않았는데, 라는 후회가 따라왔지만 를르슈는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제가 뭘 잘못했냐는 식으로 시선을 맞부딪치면, 스자쿠가 그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를르슈는 그대로 끌려갔다.

끌려간 곳은 이제 막 정비가 끝난 랜슬롯이 있는 격납고였다. 스자쿠는 바로 나갈 수 있냐고 부하들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나이트 오브 세븐? 그 말에 스자쿠는 대꾸 없이 조종석 위로 올라갈 뿐이었다. 

 

“어, 어디로 가는 거야….”

“너는 반성할 필요가 있어. 말 그런 식으로 하는 버릇도 고쳐야 돼. 사람이 걱정을 하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그게…!”

“무슨 상관?”

 

그 말에 스자쿠는 를르슈를 랜슬롯의 조종석 아래로 다시 한 번 밀어넣었다. 장성한 남자 둘이 타기엔 비좁은 그 곳에, 스자쿠는 를르슈를 무릎에 태우고서 짧게 혀를 찼다.

 

“그래, 나는 상관 없는 사람일 수도 있지. 하지만….”

 

‘상관이 없다’라고 말해놓고 나서 스자쿠는 상처 받은 눈을 했다. 그 모습에 를르슈도 제가 말을 잘못 골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둘은 연인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황제폐하나 마리안느 님이라면 너도 반성하지 않을까 싶어.”

“…뭐?”

“이대로 계속 응전하신다면 전하는 방해가 될 뿐입니다. 본국으로 돌아가세요.”

“스자쿠!”

“조용히.”

 

더 발악하려는 를르슈의 입을 한 마디로 다물게 한 스자쿠는 곧 조종에 집중했다. 를르슈의 쪽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은 채로, 기지 본부까지 단숨에 날아간 스자쿠는 를르슈를 처음 보는 황자전하 대하듯이 굴었다. 를르슈가 이대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 스자쿠는 굴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이트 오브 라운즈의 권한으로 돌려보내는 수 밖에 없습니다. 폐하께는 제가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를르슈 전하께서 전장에서 멋대로 굴었다고.”

“나 없이 잘 될 거 같아?!”

“있어도 짐만 될 뿐입니다. 돌아가세요.”

“웃기지 마!”

“전하.”

 

열이 오를대로 오른 를르슈와 다르게 스자쿠는 침착했다. 스자쿠의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를르슈는 더는 말하지 않고 뒤로 돌아버렸다. 저, 전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안절부절 못하며 를르슈를 따라왔다. 웃기지 마, 웃기지 마, 웃기지 마! 스자쿠와 멀어지면서 를르슈는 속으로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그깟 위협은 몇 번이고 이겨냈는데, 이번에 딱 한 번 자기가 구해준 거 가지고 이렇게까지 유세를 떨어?! 나를 내쫓아…? 누가 누구한테 감히!

를르슈의 화를 달래줄 인물은 그가 떠날 때까지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다. 를르슈를 태운 비행기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나서야 랜슬롯이 전장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보고를 들은 를르슈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자신의 후임으로 슈나이젤이 나설 거라는 이야기에 를르슈는 들고 있던 유리잔을 내던졌다. 

이제까지 쌓아온 자신의 공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 * *

 

아리에스로 돌아온 를르슈에게 떨어진 명령은 근신이었다. 비 가문의 가주이자 어머니인 마리안느의 명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아리에스 밖을 나갈 수 없다는 이야기에, 를르슈는 들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를르슈의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내던진 가방에서 흩어진 노트북이니 서류니 하는 것들이 흩날리는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더 가라앉았다. 를르슈는 발에 치이는 것들을 내버려두고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아직도 화가 나서 욱씬거리는 두통이 가라앉질 않았다. 주머니 속의 휴대폰에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된다는 나나리의 연락 밖에 없었다. 저에게 사과해야하는 그 자식은 슈나이젤과 함께 자신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나한테 사과해, 당장. 용서를 빌란 말이야.

보고 있던 휴대폰을 노려보는 것도 그만두었다. 를르슈는 베개 사이로 얼굴을 파묻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항상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는 자신의 방에 근 보름 만에 돌아왔음에도 모든 것이 반갑지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결과였다.

제 자리에서 쫓겨난 것도 모자라서, 스자쿠의 입김으로 가세된 근신 명령까지. 기분은 최악이었다.

이제 누가 먼저 나쁘고 잘못한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를르슈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운 스자쿠는 무슨 일이 있어도 를르슈에게 사과를 해야만 했다. 를르슈의 반성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를르슈는 오늘 중으로 오는 스자쿠의 연락을 모조리 다 무시하겠다는 일념으로 눈을 감았다.

흥, 애가 한 번 타보라지.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 * * 

 

나나리는 세상 맛없는 얼굴로 식사를 하고 있는 제 오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딘가 멍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는 입 안에 있는 음식을 먹는둥 마는둥 하더니 곧 물린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이대로 방으로 돌려보내면 하루 종일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나나리는 아랫배에 힘을 주고서 조금 큰 소리로 를르슈를 불렀다. 

 

“오라버니! 근신 중이어도 정원 산책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나나리.”

“혼자서 산책하려니까 심심해서요.”

 

애써 웃으며 말하는 나나리의 모습에 를르슈는 마지 못해 웃어보였다. 그럼 같이 나가는거죠? 나나리의 쾌활한 물음에 를르슈는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정원에는 여름꽃이 서서히 만발하고 있었다. 그 사이를 걷고 있는 남매는 한폭의 그림과도 같았지만, 정작 두 사람의 사이는 어정쩡한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나나리가 모처럼 마음을 써주면서 저를 달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를르슈는 그녀의 수다에 하나도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몇 걸음 못가서 나나리가 멈추었다. 그녀는 속상한 얼굴로 앞서가려는 를르슈를 붙잡았다.

 

“오라버니, 속상한 마음은 알지만… 그래도 전 오라버니가 무사히 돌아오셔서 기뻐요.”

“…….”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할 지는 모르겠네요. 이렇게 기운 없는 오라버니를 보고 있는 건 마음이 아파요.”

“그렇게, 신경 쓸 건 아니야. 그냥….”

“신경 안 쓸 수가 없는데요, 뭘. 그런 말씀 하시는 게 더 슬퍼요.”

“……나나리.”

 

할 수 있는 말 대신에 이름을 부르면, 나나리는 이번엔 자신이 를르슈를 앞질러서 걷기 시작했다.

 

“스자쿠 씨도 오라버니 걱정을 많이 하고 계세요.”

“응?”

 

이번엔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를르슈는 나나리를 바라본 채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자쿠 씨도 오라버니 걱정을…. 그 말에 를르슈는 귀가 화끈거렸다.

첫 번째는 스자쿠가 제 걱정을 해주고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었고, 두 번째는 제가 아닌 나나리에게만 연락을 했다는 그 비겁함이 열이 받았다. 를르슈에게는 연락할 수 없으니 차선책으로 나나리에게 에둘러서 말을 전한 것이 틀림 없었다. 그 겁쟁이다운 방식이었다.

 

“스자쿠 씨도 오라버니를 위해서 그렇게 한 거니까, 너무 그렇게 마음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스자쿠 씨도 그렇게 말했고요.”

“…스자쿠가?”

“네!”

 

정말, 비겁하다. 나나리의 말이라면 피할 수 없는 를르슈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수를 취한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를르슈는 입가를 가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허탈하다. 이쪽은 쓸 수 있는 최고의 패인 ‘무시’를 대놓고 했음에도, 스자쿠는 보란듯이 그 패를 뒤집어 엎었다.

그렇지만 웃고 있는 나나리에게는 죄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걱정하고 염려할 뿐인 상냥한 여동생이었다. 비겁한 건 오히려 그 남자일 뿐이었다. 를르슈는 힘없이 웃으면서 만발한 여름 장미에 손을 뻗었다. 가시에 찔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꽃 한 송이를 꺾어서 나나리에게 쥐어주면, 나나리는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치유되는 웃음에도 를르슈는 스자쿠의 치졸함에 넌덜머리가 났다. 그에게서 놀아나는 자기 자신이 진부하기 짝이 없었다.

 

* * * 

 

나나리와의 정원 산책 이후에, 를르슈는 일을 몰아서 하기 시작했다. 아예 시간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다. 황자가 아리에스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아리에스를 오가는 사람들만 많아졌을 뿐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스자쿠는 없었다. 당연했다. 아직까지 를르슈가 있었던 전장에서 빠져나오기는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그 슈나이젤도 고전하고 있다는 소식에 를르슈는 펜을 둥글게 돌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서재 안에 틀어박혀서 그동안 밀렸던 정무를 보고 있으면, 문 밖에서 나나리가 힐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야, 나나리? 그렇게 부르면 나나리는 쭈뼛거리면서 를르슈의 앞으로 나타나 차 한 잔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티 타임도 좋지만, 지금은 일을 쉴 수가 없어서 말이야. 를르슈가 곤란하다는 듯이 웃으면 나나리는 곧 괜찮다며 돌아갔다.

나나리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마음이 아팠지만, 스자쿠가 나나리를 비겁한 수로 내세웠던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미간이 찌푸려졌다. 표정 관리가 쉽게 되지 않았다.

 

—나나리에게는 연락을 하고, 나에게는 안 한다?

—나나리를 수단으로 나의 동태를 확인하고… 그러면서 나를 떠봐?

—잘났어, 그래. 아주 잘났어.

 

를르슈는 펜을 휘갈기면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서류를 읽고 서명하는 일을 한정없이 하고 있다보면 사람이 들어왔다. 조금 무거운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아, 익숙한 소리다. 이건 나이트 오브 라운즈의 기미였다.

서류에 쳐박고 있던 고개를 들고서 앞을 바라보면 아니나 다를까 나이트 오브 라운즈, 그 중에서도 어릴 적부터 낯이 익은 지노였다. 익숙한 그 금발 머리의 사내가 환하게 웃으면서 를르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웃는 낯에 를르슈는 기가 질렸다.

 

“뭡니까, 전하. 사람 얼굴을 보고서 그런 얼굴을 하시면.”

“너야말로 가만히 있는 사람 앞에서 왜 웃으면서 나타나?”

“이런, 모처럼 좋은 소식을 들고 왔는데 말이죠.”

“무슨 일인데?”

“스자쿠 말이죠, 곧 생일이잖아요?”

 

그 말에 를르슈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스자쿠의 생일, 7월 10일, 여름이 한창인 그날,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보름 뒤. 그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아무리 냉전 중이고 기싸움 중이라고 할지라도 그날은 중요한 날이었다.

 

“아, 설마 잊고 계셨나요?”

“……바빠서.”

“그럴 수도 있죠. 전하께서는 나나리 전하가 제일 중요하시니까요. 뭐, 스자쿠도 이해할 겁니다.”

 

지노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오히려 익살스럽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를르슈는 그의 가벼움에 휩쓸려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재상 각하께서도 바쁘시지만, 아마 2주 정도면 정리되어서 돌아오실 거라고 하고…. 그럼 이래저래 승전식이랑 스자쿠 생일파티랑 겹쳐서 같이 진행할까, 이렇게 나이트 오브 라운즈끼리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형님께서 2주씩이나 걸린다고?”

“이래저래 규모가 커진 전투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내일 모레 출정을 갑니다.”

“…….”

 

그 규모를 키운 것은 다름 아닌 를르슈였다. 이길 수만 있다면 수를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를르슈는 태연한 척,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근데 문제가— 저는 내일 모레 출정이고, 아냐도 같이 떠나거든요. 그럼 누가 스자쿠의 생일파티를 준비해주느냐, 이게 문제인데요.”

“…….”

“그럼 여기서 퀴즈! 제가 왜 전하를 찾아왔을까요?”

“…나는 바쁘니까 그럴 여유 같은 건—”

“그렇지만 전하께서 사랑하는 스자쿠의 생일인데요?”

“…….”

 

를르슈는 언젠가 어느 파티 무도회의 중간에 빠져 나와 스자쿠와 밀회를 즐기고 있을 때를, 지노에게 들킨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 후회를 다시 곱씹게 되었다. 이쪽은 냉전 중이라고. 싸우고 있단 말이다. 근데 무슨 생일파티를…. 

를르슈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다시 서류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차갑게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럴 여유 없어. 생일은 매년 돌아오는 거고, 크게 특별할 거도 없잖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제껏 잊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이 들었다. 챙겨주고는 싶다. 사과를 받으면 말이다. 사과를 받고 나서, 기꺼이 서로 반성의 시간을 가진 것에 대해서 유감을 표하고, 그러고 끌어안고 다시 사랑을 재확인하면 생일 정도야 조금 늦게라도 축하해도 상관 없다.

 

“스자쿠가 전하의 생일을 그렇게 넘어가면 속상해하실 거면서.”

“상관 없어. 황자의 생일은 브리타니아에 차고도 넘쳐.”

“기사의 생일도 차고도 넘치니… 라는 뜻인거죠?”

“그래, 그리고 스자쿠는 내 기사도 아니잖아.”

“스자쿠가 들으면 섭섭할 소리네요.”

“섭섭할 소리는 무슨.”

 

지노는 한숨을 내쉬면서 서류를 내밀었다. 일을 들고 왔으면 바로바로 달란 말이야. 를르슈가 투덜거리며 말하면 지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전하께서 파티를 준비해주시면 스자쿠는 엄청 기뻐할 걸요.”

“원래 파티를 즐기는 녀석은 아니야.”

“하지만 전하가 준비한 자리면 기꺼이 즐길 겁니다.”

“무슨 근거로?”

“글쎄요, 나름 같이 놀았던 전우로써의 감이랄까.”

“…어차피 폐하의 기사이니 폐하께서 따로 치하해주실 거 아니야? 일개 황자가 따로 나이트 오브 라운즈를 위한 파티를 준비한다는 것도 우스워.”

“완고하시네요, 전하.”

 

지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저는 설득할 만큼 설득했습니다. 를르슈는 지노가 내밀었던 서류에 서명을 했다. 나이트 오브 라운즈의 예산 관련으로 올라온 서류였다. 스자쿠의 이름이 군데군데 보였다. 그럴 때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모른 척하면서 서명을 마치고 지노에게 돌려주었다.

 

“스자쿠가 전하를 많이 걱정하고 있어요.”

“……뭐?”

 

기시감. 나나리에게서 들었던 말에서 싹트는 그 느낌과 똑같은 것에 를르슈는 입꼬리를 비틀며 지노를 바라보았다.

 

“아리에스로 돌아오고 나서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걱정하더라고요.”

“……너한텐 연락했다, 이거지?”

“네? 아, 저한테 연락이 온 게 아니라.”

“길게 말 끌지 말고 예 혹은 아니오로 대답해.”

“뭐,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예’… 일까요?”

 

를르슈는 주먹을 쾅, 하고 내리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냉정과 평정을 가장하며 지노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걱정이 되면 직접 연락하라고 전해.”

“…네?”

“비겁하게 다른 사람들 통해서 날 떠볼 생각하지 말라고 전하라고.”

“…으음, 네?”

“서류는 이제 됐지? 나가라.”

“……저, 전하.”

“나가라고!”

 

를르슈의 고함에 지노는 얼떨떨한 표정을 한 채로 서재 밖으로 쫓겨났다. 지노를 그렇게 내쫓아낸 를르슈는 주먹을 꽉 움켜쥔 채로, 엉망이 된 서류더미 사이에서 머리를 식히고 있었다.

스자쿠는 생각 이상으로 겁쟁이에, 비겁하고… 이기적이었다. 를르슈에게 연락 하나 할 용기도 없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들쑤시는 일로 그를 열받게 하는 것에는 천재적이었다. 박수라도 쳐주고 싶을 정도였다. 를르슈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스자쿠를 저주하는 동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 * * 

 

하지만 왜 밤이 되면 사람은 감정적이게 되는 걸까.

술 한 잔과 함께 로열 프라이빗 라인 앞에 앉은 를르슈는 이마를 짚은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스자쿠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저를 간보는 스자쿠의 비열함에 열이 받기도 했다. 그렇게 남을 들쑤실 시간에 나한테 직접 사과하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를르슈 또한 자존심 때문에 스자쿠에게 직접 연락하기가 어려웠다. 어느 쪽이 더 바보냐고 하면…. 를르슈는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상황은 더 뚜렷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자만과 오만에 빠져 무리한 작전을 세운 것이 잘못일 수도 있다. 스자쿠의 말을 듣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를르슈를 전장에서 빼버린 스자쿠의 선택은 어쩌면 옳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다 하고 나면 를르슈는 괜히 스자쿠를 부르고 싶어졌다. 사과를 하고 싶어지고, 이름을 부르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스자쿠의 뜻대로 되는 거라서, 자존심이 상했다.

 

—매번 내가 사과했어. 물론 그건 내가 잘못했을 때니까. 하지만 이번엔…. 

 

이번엔 내 의사를 무시하고, 멋대로 나를 아리에스에 돌려놓고, 자기 혼자 위험한 그곳으로 돌아가버리고.

같은 전장에서 함께 싸우고 있다는 그 든든함에 의존했던 것이 뭐가 나쁜 것인지, 를르슈는 술로 목을 축이며 생각했다. 를르슈가 스자쿠를 믿은 만큼, 스자쿠도 를르슈를 믿어주길 바랐다. 결과가 나쁘더라도 같이, 함께, 고민해서… 둘이서 아리에스로 돌아갈 수 있다는 그 기쁨을 계속 누리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를르슈가 기세 좋게 술 한 잔을 다 털어넣고 나서였다. 더운 숨과 함께 술 냄새가 느껴졌다. 명쾌한 해답을 찾는 머리는 어느 순간 느릿하게 굴러갔고, 감정의 나사는 풀린지 오래였다.

 

이젠 내가 만나고 싶어. 반성이든 뭐든, 상관 없이.

 

계속 누르는 것을 망설였던 버튼을 눌렀다. 나이트 오브 세븐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핫라인이었다. 콜이 더 길어지기 전에 스자쿠가 받을 것을 기대하며, 를르슈는 술 기운으로 달아오른 몸을 가누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계속 기다려도 스자쿠는 받지 않았다. 를르슈는 점멸하는 빨간 불빛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화면 건너편에는 스자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흥, 애가 한 번 타보라지.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그 말을 그대로 돌려받게 되었다. 애가 타들어갔다. 오만가지 상상이 를르슈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슈나이젤이 고전하고 있다는 말, 2주나 걸리는 대규모 전투, 나이트 오브 라운즈의 추가 출정까지. 무심코 넘겼던 모든 말들이 퍼즐처럼 짜맞춰지기 시작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도 끝까지 받지 않는 스자쿠의 부재까지, 모든 것이 를르슈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 * * 

 

천재적이라고 불리우는 를르슈의 두뇌는 상황을 가정할 때에도 그 능력을 발휘했다. 그것은 엄청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스자쿠가 혹시나— 하는 이야기는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를르슈는 그가 지금 서있는 전장이 얼마나 처참한 상황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자쿠의 연락두절은 더욱 위험한 신호처럼 느껴졌다.

날이 밝는대로 를르슈는 지노를 찾았다. 그가 어제 말했던 예정대로라면 아직까지 출정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텐데, 를르슈의 연락을 받은 지노는 이미 본국을 떠난지 오래였다. 새벽 쯤에 급하게 그 전장으로 불려나갔다고 말을 전하는 지노의 목소리에 를르슈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를르슈는 급한대로 말을 이었다.

 

“스자쿠랑 연락이 되질 않아.”

‘아.’

“너한테 연락이 온 게 언제였는지….”

‘전하, 죄송합니다. 나중에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뭐?”

 

그렇게 전화는 갑자기 끊겼다. 를르슈는 하얗게 질린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손가락 끝은 긴장으로 차게 식어있었다. 지노의 예정보다 더 빠른 출정, 연락이 되지 않는 스자쿠, 혼자 아리에스에 남겨진 자신. 어떤 수를 써야할지 계산해야하는 머릿속은 가벼운 패닉을 일으키고 있었다.

 

—슈나이젤 형님께 다시 출전시켜 달라고 말하면… 아니, 형님은 내가 실수한 이상 더는 봐주지 않을 게 분명해. 어머니께 말씀드려서 근신을 풀어달라고 말하는 건….

 

직통으로 연결되는 라인에 답이 없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를르슈에게 주어진 패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래저래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를르슈가 굽히는 것 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자쿠의, 스자쿠의 생사가 걸려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면, 를르슈는 초조해질 뿐이었다.

그때 열려있는 문틈 사이로 나나리가 가벼운 노크와 함께 들어왔다. 나나리의 아침인사는 를르슈의 일상이었지만, 고작 스자쿠와 연락 하나 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르게 느껴졌다.

 

“오라버니, 일어나셨어요?”

“나나리.”

“아침 식사를… 아니, 안색이 안 좋아보이시는데, 어디 아프시기라도 한가요?”

“아니, 아프진 않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스자쿠가….”

 

나나리의 다정한 물음에 를르슈는 저도 모르게 스자쿠의 이름을 내뱉었다. 나나리는 그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이 를르슈를 빤히 쳐다보았다. 더 이상의 거짓말을 할 여유 같은 것은 없었다. 를르슈는 찡그린 미간을 꾹꾹 누르면서 말했다.

 

“연락이 안 되어서… 조금 걱정이 되네.”

“싸움이라도 하셨나요?”

“싸우기야 했지만, 그래도 무시하는 경우는 없어서. 나나리랑 지노한테는 연락 했다면서?”

“아….”

 

를르슈의 어두워진 얼굴에 나나리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결심한 듯, 나나리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도 스자쿠 씨한테 연락을 받은 건 한 번 뿐이었고, 그 이후로는 연락이 없어서…. 설마 스자쿠 씨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라면.”

 

걱정스러운 나나리의 얼굴에 를르슈는 괜찮다고 말했다.

 

“슈나이젤 형님도 계시고, 지노랑 아냐도 같이 있으니까, 위험한 일은 없을 거야.”

 

그것은 를르슈의 바램이기도 했다. 제가 있었을 때보다 더 희망적인 상황에 놓여져 있으니, 연락이 한 번 되지 않은 것 가지고 이렇게까지 고민하고 있는 제 자신이 바보 같았다는 결말로 끝나기를 바랐다. 를르슈의 말에 나나리는 ‘그렇겠죠.’ 라고 말하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그 웃음도 오래가진 못했다.

아침을 겨우 밀어넣고 나서, 를르슈는 다시 지노에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지노는 를르슈의 호출에 응답하지 않았다. 상황이 생각 이상으로 좋지 않다는 뜻인가. 를르슈의 머리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기 시작했다. 그 최악의 시작은 를르슈의 작전이 겨우 승리했던—사실상 실패에 가까웠던 그날 때문이었다. 그날 스자쿠의 말대로 했다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자기혐오는 끝이 없었다.

다른 루트로 그 전투가 있었던 에리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려고 했지만, 제국의 재상이 출전한 만큼 기밀 정보에 대한 경계는 삼엄했다. 를르슈의 권한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더는 굴러가지 않는 상황은 시간낭비에 가까웠다.

를르슈는 화가 나기도 하고, 다스리지 못한 분노는 괜히 눈물이 나게 했다. 감정에 휩쓸릴대로 휩쓸린 사고 회로는 정상적인 작동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하는 일렀다. 를르슈는 옷을 갖춰 입으면서 깊게 심호흡을 했다.

—이제 남은 수는 하나 밖에 없다.

 

* * * 

 

일 년의 대부분을 본국 밖에서 머물고 있는 마리안느가 드물게 아리에스에 있을 때였다. 마리안느는 자신을 찾아온 장남을 보며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지, 를르슈?”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근신 중이잖아. 반성은 많이 했어?”

“…….”

“나이트 오브 세븐이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 처음 봤는데. 아마 우리 아들 솜씨겠지.”

 

를르슈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말한 마리안느는 눈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올렸다. 한가롭게 티 타임을 가지는 것은 마리안느의 성미에 맞지 않았지만, 나름의 진지한 이야기를 끌고 온 듯한 를르슈의 모습에 모양이라도 갖춰줘야 할 것 같았다.

 

“어려운 이야기니?”

 

마리안느가 그렇게 묻자 를르슈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근신을 풀어달라는 이야기지?”

 

먼저 선수를 쳐서 말을 하면, 를르슈는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뻔뻔하다면 뻔뻔한 그 모습은 마리안느와 판박이였다. 제 거울을 보는 듯한 기분에 마리안느는 지금의 상황이 흥미진진해졌다.

 

“아까도 물었지만, 반성은 많이 했고?”

“…충분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를르슈,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날카롭게 물어오는 어머니의 질문에, 를르슈는 숨을 골랐다. 결국 사실대로 말하는 정공법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를르슈가 긴장한 기색을 늦추지 않으면서 입을 여는 것에, 마리안느는 턱을 괴고서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실은 반성할 게 없죠. 잘못한 게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거짓말을 한 이유는?”

“그 거짓말이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답 아닌가요?”

“……내 아들이지만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건 너무 뻔뻔하지 않을까?”

 

마리안느는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진작에 이렇게 할 수도 있었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군다는 건… 그래, 나이트 오브 세븐에게 무슨 일이 생겼구나. 그러지 않고서야 네가 이렇게 저자세로 나올 리가 없지.”

 

를르슈는 마리안느의 말에 제 자존심이 너덜너덜해져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저 그녀의 입에서 ‘떠나도 된다’라는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나이트 오브 세븐에게 갈 생각이니?”

“네.”

“와도 된다는 말은 들었고?”

“…….”

 

네 덕분에 전투가 그렇게 지지부진해진 건데, 너를 반겨줄 사람이 있을까. 나이트 오브 세븐도 널 반겨줄 거라는 낙관적인 망상은 그만두렴. 마리안느의 냉정한 말에 를르슈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여전히 제 말을 흘려듣는 를르슈의 모습에 마리안느는 짧게 혀를 찼다.

 

“네가 무슨 꼴을 당하든 난 도와주지 않을 거야.”

 

세상 누구보다 냉정한 어머니의 말에 를르슈는 그녀와 닮은 얼굴로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