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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5

Summer / DOZI 2021.07.30 12:25 read.93 /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학기말도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후수업만 있는 날이었음에도 스자쿠와 를르슈는 오전 일찍부터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었다. 할 일을 미리 해치우는 편인 두 사람은 한참이나 책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먼저 몸을 일으킨 것은 스자쿠였다. 앞자리에 앉아있던 스자쿠가 일어나는 것에 를르슈도 따라나섰다. 복도로 나가면 길게 기지개를 켜고 있는 스자쿠가 있었다.

 

“아, 계속 공부만 하려니까 피곤해.”

“슬슬 점심 먹고 수업 들어갈까?”

“그럴까? 학생식당?”

“좋아.”

 

자리로 돌아가면 를르슈의 자리에 캔커피 한 개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앙증맞은 글씨로 쓰인 쪽지도 붙어있었다. 를르슈보다 먼저 앞서가고 있던 스자쿠가 그것을 더 빨리 발견했다. 를르슈가 그것을 들어올리기도 전에 스자쿠가 캔커피를 낚아챘다. 쪽지의 내용을 먼저 살펴본 스자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캔커피를 따서 마셔버렸다. 꿀꺽꿀꺽. 시원하게 마셔버리는 그 모습에 를르슈는 내지르고 싶은 비명을 속으로 삼켰다.

 

“너, 그게 뭔 줄 알고 그냥 먹는 거야…!”

“커피잖아. 근데 맛없네.”

“누가 준 건 줄도 모르는데.”

“를르슈를 좋아한대.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상한 걸 주겠어?”

 

스자쿠는 어딘가 툴툴거리면서 대답했다. 펼쳐놓았던 책이며 노트 같은 것들을 백팩에 턱턱 담는 모양이 짜증이 묻어났다. 를르슈도 짐을 챙기면서 괜히 스자쿠 쪽을 쳐다보았다. 미간을 좁힌 채로 가방을 둘러멘 스자쿠가 먼저 열람실을 빠져나갔다. 를르슈도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스자쿠, 같이 가.”

“…응.”

 

한 박자 늦게 대답하며 발걸음의 속도를 늦추는 스자쿠는 화가 난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항상 여유로운 편이었던 스자쿠가 를르슈와 관련된 일이면 이렇게 속좁게 구는 것은 귀여울 때도 있지만, 가끔은 성가시다고 느끼는 때도 있었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옆을 따라 걸으면서 말했다.

 

“내가 고백 받은 것도 아니잖아.”

“그래도 싫어.”

 

스자쿠는 보이는 쓰레기통에 비어버린 캔을 버렸다.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 도서관을 벗어나면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교정이 펼쳐졌다. 그늘이 드문드문 있는 것에 스자쿠는 를르슈를 그늘 쪽으로 걷게 했다. 그 와중에도 저를 신경 써주는 것이 웃기고 또 그다워서 를르슈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를르슈의 웃는 얼굴에 스자쿠는 솔직하게 말했다.

 

“를르슈가 다른 사람한테 신경 쓰는 거 싫어.”

“내가 언제 신경 썼어?”

“누구한테 뭐 받는 거도 안 했으면 좋겠어.”

“아니, 기본적으로 받지도 않아. 커피도 그냥 버리려고 했어. 너야말로 거기에 뭐가 들어갔을 줄 알고 그냥 먹었어?”

“…그러게. 왜 그랬지.”

 

스자쿠의 표정은 그제서야 풀렸다. 헤헤, 하고 웃는 얼굴에 를르슈는 단순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점심 메뉴는 뭘까? 기대에 가득찬 스자쿠의 목소리에 를르슈는 글쎄, 라고 대답했다. 햄버그 스테이크? 학식에 그런 게 나올 리가 없잖아. 실없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금방 식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점심시간의 직전이기에 아직까지는 한산한 안쪽에 자리를 잡고서 식권을 끊으러 갔다. <오늘의 메뉴>라고 단정하게 쓰인 글자 아래 적힌 음식들 이름을 본 스자쿠는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햄버그다!”

“정말?”

“응.”

 

그러고 보면 정식A는 정말로 햄버그 스테이크가 메뉴로써 자리잡고 있었다. 스자쿠는 바로 정식A를 주문하러 갔고, 를르슈는 한참을 고르다가 그냥 샐러드를 먹기로 했다. 곧 수업시간인데 배부르게 먹었다가는 졸기 일쑤니까.

음식을 받고 나서 자리에 앉으면 식당의 현관 쪽에서 익숙한 얼굴이 지나갔다. 를르슈 쪽을 알아보면서 손을 붕붕 흔드는 사람은 카렌이었다. 그녀는 곧 잽싸게 음식을 받아오더니 스자쿠와 를르슈가 앉아있는 자리로 다가왔다. 안녕! 카렌의 쾌활한 인사에 스자쿠와 를르슈도 웃으면서 그녀를 반겨주었다.

 

“를르슈는 왜 또 풀만 먹어? 든든하게 먹어야지!”

“나름 밸런스를 맞추고 있으니까 괜찮아.”

 

카렌은 스자쿠가 골랐던 정식A였다. 잘 먹는 사람 둘이 앞에서 맛있게 우물거리며 먹고 있는 걸 보자니 제 배가 부르는 기분이었다. 를르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샐러드를 말끔하게 비워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곧 있으면 방학이네. 둘 다 계절학기는 안 듣지?”

“응. 카렌은 들어?”

“아무래도 학점이 좀 위기니까, 아니면 다음 학기 때 분발해볼까… 생각도 들고.”

“다음 학기로 미루는 것보다 계절학기 듣는 게 더 나을 걸, 카렌한테는.”

“너도 우리 오빠 같은 소리를 하네….”

 

그치만 계절학기를 들으면 남들 놀 때 나는 공부를 해야한다구! 마지막 남은 햄버그 스테이크를 쿡 찍어 입에 넣으면서 카렌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너네 둘은 방학 때 뭐해?”

“스자쿠랑 여행 가기로 했어.”

“우와, 둘이서? 어디로?”

“둘이서는 아니고, 를르슈네 동생들이랑 같이 가기로 했는데… 된대?”

“응.”

“응, 그럼 넷이서 가는 거네!”

 

의외로 계획이 다 짜여져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방학까지는 얼추 시간이 많이 남아있긴 했으니 계획을 짤 여유야 있겠지만. 카렌은 곁들이로 나온 콘 샐러드를 퍼먹으며 여행 이야기로 들뜨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산이랑 바다 중에 어느 한쪽만 고를 수가 없어서 그냥 둘 다 골랐어. 스자쿠의 맹랑한 이야기에 를르슈가 허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우리 어디로 가는데? 카렌도 귀를 기울였다.

 

“우리집 별장 어때? 나 옛날에 잠깐이지만 거기서도 살아서 나쁘지 않았어.”

 

별장? 보통의 서민이 별장 같은 걸 가지고 있나… 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니 스자쿠는 보통 서민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총리이고, 대대로 정치인을 하는 집안이었다. 잊을만 하면 저 스자쿠가 잘 사는 집 도련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를르슈도 카렌처럼 그것을 느끼는지 어딘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 걸 마음대로 써도 되는 거야?”

“응. 대신 여기서 좀 먼데…. 비행기 타고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조금 있다가 같이 예약하자.”

“헤에, 아예 너네집 전용기를 띄우지 그래?”

 

어딘가 비꼬는 듯한 카렌의 말에 스자쿠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까? 사실 다른 사람이랑 비행기 타는 거 불편하거든.”

 

철부지 도련님 같은 투정에 를르슈는 뭐라 대꾸할 말도 생각 나지 않을 만큼 어이가 없었다. 가끔씩 남자친구의 상식을 뛰어넘는 금전 감각 같은 것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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