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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자쿠와 카렌 (feat. 스자루루)

DOZI 2022.02.01 01:22 read.132 /

스자쿠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무실에서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들어왔다. 이전에 스자쿠에게 반한 여자애가 그만두고 일주일 만에 뽑힌 사람이었다. 사장은 그 이전의 처절한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또 여자를 뽑았다. 새 아르바이트생의 이름은 코우즈키 카렌. 나이는 스자쿠와 동갑이라는 간단한 소개가 끝났다. 사장은 카렌의 소개를 끝내고 나서 스자쿠 쪽을 힐끔 쳐다보며 그에게 신신당부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입모양으로 속삭였다. ‘꼬시지 마라.’ 스자쿠는 그만 속으로 질려버렸다.

 

‘애초에 나는 꼬시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쪽에서 멋대로 반한 거였는데.’

 

그 전에 관뒀던 여자애는 스자쿠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스자쿠와 자신은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즉 썸을 타고 있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스자쿠는 그런 적이 없다며 극구 부인했다. 그 결과, 상처받은 여자애는 그만두고 스자쿠는 그녀 몫까지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울고 있는 여자애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스자쿠는 이런 경험이 많았다. 자신에게는 일편단심 사랑하는 애인이 있음에도 말이다.

하여간 스자쿠가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달려드는 여자들이 한 트럭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장은 또 여자 아르바이트생을 뽑았다. 게다가 스자쿠에게 ‘꼬시지 마라’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까지. 억울하지만, 사장은 문제의 원인인 스자쿠를 안 자르고 있는 것에 감사하라고 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곧 다가오는 연인과의 이벤트를 준비하기 위한 예산을 모으기 위해서, 스자쿠는 이 아르바이트를 어떻게든 이어나가야만 했다.

 

“코우즈키 카렌입니다! 카렌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앞에서 씩씩하게 말하는 카렌의 모습에, 스자쿠는 박수를 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덩달아 박수를 쳤다. 꼬시지 마라, 꼬시지 마라, 꼬시지 마라…. 사장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21년을 살면서, 스자쿠는 한 번도 여자를 꼬시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꼬시는 방법을 모른다. 하지만 아예 얽힐 일이 없다면? 그렇다면 꼬시고 나발이고 그런 사태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카렌은 아르바이트생끼리 앉는 책상—그러니까 스자쿠의 옆에 앉았다. 그녀는 스자쿠에게 손을 내밀면서 악수를 청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얽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스자쿠는 악수를 하면서 미묘하게 웃었다.

 

“쿠루루기 스자쿠입니다. 스자쿠라고 불러주세요, 카렌 씨.”

“스자쿠 씨!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분명 스자쿠랑 동갑이라고 말했음에도 스자쿠는 카렌에게 존댓말을 썼다. 그런 말투에도 카렌은 환하게 웃을 뿐이었다. 음, 이 정도면 거리 두기 합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스자쿠는 여전히 미묘한 표정이었다. 앞으로 더 거리를 두면 되지, 뭐. 스자쿠는 다시 업무로 돌아가는 사무실 사람들을 따라 자신의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힐끔, 카렌을 쳐다보았다. 열의가 넘치는 카렌은 책상 앞에서 바짝 긴장한 것 듯 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다고 말해주는 게… 아니, 거리를 두기로 했었지, 참. 스자쿠는 의미 없이 마우스를 달깍거렸다.

 

* * * 

 

스자쿠의 거리 두기는 어느 정도 선방한 거 같았다. 스자쿠는 카렌과 단 둘이 있는 상황을 어떻게든 만들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스자쿠 씨, 카렌 씨랑 같이 커피 심부름 좀 다녀올래요?

-앗, 그럼 저 혼자 다녀올게요. 카렌 씨는 추우니까 여기서 기다리세요.

그렇지만 혼자서는 너무 많을 텐데.

-괜찮아요! 

 

스자쿠는 사무실 밑에 있는 카페까지 두 번을 왕복하면서도 카렌의 손을 빌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카렌은 자기 몫의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면서도 스자쿠에게 이런 일은 자기한테 나눠줘도 괜찮다고 말했다. 카렌이 갑자기 말을 걸어서 당황한 스자쿠는 먹고 있던 레모네이드가 기도로 넘어가서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쿨럭대며 기침을 했다. 그런 것과 상관 없이 카렌을 멀리 하기 위해서 스자쿠는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카렌 씨, 복사지 좀 사다줄래요? 아, 어디 있는지 모르지 참…. 스자쿠 씨랑 같이 다녀와요.

아, 네! 스자쿠 씨, 저랑 같이… 

-아뇨, 저 혼자 다녀올게요. 카렌 씨는 다른 일 부탁해요.

 

스자쿠는 카렌이 뭐라고 더 말하기도 전에, 외투도 입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문구점까지 스자쿠는 쌩쌩 부는 찬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얼굴이 추위로 얼어붙어서 동상에 걸리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훈훈한 사무실로 들어오니 좀 나았다. 종이를 복사기에 채워넣는 카렌의 모습은 어딘가 시무룩해보였지만, 스자쿠는 끝끝내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 외 기타, 이것 저것으로 카렌과 스자쿠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흔히 맡겨질 법한 일들을 함께 할 기회가 많았지만 스자쿠는 모조리 다 피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카렌은 스자쿠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두 사람 사이는 서먹서먹한 채로 두 달이 지났다. 월급도 두 번이나 받고, 회식도 여러 번이나 했지만, 스자쿠와 카렌은 술 한 잔 나눠본 적이 없는 사이였다.

 

* * *

 

그날은 월말 마감 때문에 아르바이트생인 스자쿠와 카렌까지 남을 수밖에 없었다. 스자쿠는 이번에도 카렌을 따돌리고 서류 심부름을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스자쿠가 돌아왔을 때 사무실에는 카렌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다른 누구도 없이, 오직 카렌 뿐이었다. 스자쿠는 카렌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사무실 밖으로 발걸음을 돌리려고 했다. 그때였다.

 

“적당히 하라고, 쿠루루기 스자쿠!!”

 

카렌은 스자쿠에게 일갈했다. 쿵쿵 발소리를 내면서 스자쿠의 앞까지 다가오더니, 그녀는 스자쿠보다 작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스자쿠의 멱살을 기세 좋게 잡으면서 스자쿠를 탈탈 털어댔다. 카렌의 박력에 스자쿠는 덜렁덜렁 흔들렸다.

 

“네가 여기서 얼마나 일한지는 모르겠는데, 이렇게 대놓고 사람 따돌리면 기분 좋아? 아르바이트 고작 몇달 더 한 거 가지고 그렇게 텃세부리는 이유가 뭐야? 내가 너한테 뭐 잘못했어?”

“아니, 그, 그런 건, 아니지만.”

“아닌데 왜 자꾸 나한테 그러는데! 나한테만 그러잖아, 너!”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니면, 너 나 좋아하냐?!”

 

카렌의 말은 기관총마냥 쏘아대고 있었지만 스자쿠는 마지막 말 만큼은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거리 두기는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관심을 안 주고, 엮이는 일도 없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너 나 좋아하냐?!’ 같은 꼬심 당한 여자의 말을 들어야한다니…. 스자쿠는 노력이 자신을 배신했음에 분노했다.

스자쿠는 자신의 멱살을 쥐고 있는 카렌의 손을 떼어내며 덩달아 소리쳤다. 이제껏 참아온 억울함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너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 나 사귀는 사람 있어! 걔랑 결혼할 거야!”

“어쩌라고! 그럼 나랑 상관 없는데 왜 나한테 개수작이야!”

“그런 거 한 적 없어!”

“웃기지 마, 그럼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네가 날 좋아할까봐 그랬어!”

 

이번엔 카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불같이 화를 내며 스자쿠의 명치를 향해 주먹을 꽂으려고 했다. 명치를 향해, 주먹을 꽂으려고 했다. 스자쿠는 겨우 그 손을 막았지만 정확하게 자신의 명치를 찌르려고 한 카렌의 주먹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그나저나 왜 이렇게 폭력적이야! 

 

“나도 취향이라는 게 있어, 누가 너 같은 남자를 좋아한다고…!”

“그러면서 다들 나를 좋아하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집어치워!”

 

‘너 같은 남자’라는 표현에 상처를 좀 받았지만, 확실한 것은 카렌은 자신을 좋아할 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스자쿠는 그 사실에 안심했지만, 카렌은 자신이 그런 상대로 보였다는 것에 대해 열이 받았는지 스자쿠를 향해 이를 부득부득 갈아대고 있었다. 스자쿠는 그녀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카렌이 오기 전에… 나랑 같이 일했던 여자애가 있었는데, 걔가 나한테… 음, 멋대로 반해서. 나랑 자기랑 사귀기 직전이라고 생각했나봐. 그래서 내가 애인이 있는 걸 알고서, 나한테… 아무튼 사무실에서 안 좋은 모습을 보였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 여자애 이전에도 이런 일들이 너무 많았고….”

“하, 그래서 나한테 그랬다고?”

“진짜야!”

 

카렌은 스자쿠의 변명에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면서 스자쿠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흐음, 하며 감평하듯 그를 쳐다보았다.

 

“네가 그 정도의 수준이라고? 그렇게 잘생긴 건 모르겠는데.”

“내가 어떻게 생겼든 네가 날 싫어하는 건 알겠어.”

“너도 날 싫어하잖아.”

“뭐? 싫어하진 않아. 그냥,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그랬을 뿐이야.”

 

스자쿠의 말에 카렌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다시 한 번 묻는 말에 스자쿠는 또박또박 대답했다.

 

“나, 카렌을 싫어하는 게 아니야.”

“그럼 좋아질 여지가 있다는 말은…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네가 왜 그런 사고를 치고 다니는지 알 거 같다.”

 

카렌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스자쿠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스자쿠는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카렌이 이내 내미는 악수에 얼떨결에 그 손을 붙잡았다. 뭐야? 스자쿠의 눈이 그렇게 말하는 것에 카렌은 말했다.

 

“너에게 그런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네. 아무튼, 나는 그럴 생각이 없으니까 스자쿠도 일부러 그러지 않아도 돼.”

“카렌이 이해해줬다면 다행이야!”

 

스자쿠와 카렌은 그렇게 극적으로 화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