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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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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만에 2편 쓰네요. 

1편: http://very2ndplace.com/CG3/4509

 


 

 

스자쿠는 자신의 품에서 한참을 흐느껴 울던 를르슈를 끌어안아주면서, 자신이 그때 유독 신경쓰였던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때—장례식장에서의 를르슈와 지금의 를르슈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때보다 좀 더 살이 빠지고 말랐으며, 여전히 반지를 끼고 있다. 아마 죽은 상관에 대한 마음도 여전할 것이다. 반 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스스로를 죄인처럼 여기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미안해요, 너무 울었죠.”

“괜찮아요, 제가 그래도 된다고 말한 거고요.”

“……상냥하네요, 스자쿠 씨는.”

 

나는 상냥한 걸까? 스자쿠는 스스로에게 떨어지는 그 물음에 쓰게 웃을 뿐이었다. 눈이 퉁퉁 부어올라도 를르슈의 미모는 여전했다. 아내가 미인이라 늘 걱정이야, 라고 말했던 상관이 떠올랐다.

죽은 상관을 스자쿠는 잘 따랐고, 그러니까 그의 남은 아내도 신경쓰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스자쿠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를르슈에게 붙잡혀 있던 손을 빼내었다. 를르슈는 어색하게 비어버린 자신의 손을 깍지를 껴 감추었다. 그렇게 보이는 왼손의 반짝이는 반지가 스자쿠에게는 매섭게 느껴졌다.

이래서는 안 되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가보겠습니다.”

“아아, 네.”

“그… 다들 많이 걱정하고 계세요. 를르슈 씨를.”

 

스자쿠는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보았다. 혀끝에서 발음되는 부드러운 울림은 어딘가 이질적이었다. 이제까지 스자쿠는 그를 한 번도 이름으로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저 눈짓으로, 지나가는 듯한 호칭으로 몇 번 불러본 것이 다였다. 그렇지만 그렇게 이름을 불러버리고 나니 스자쿠는 어딘가 나쁜 짓을 저지른 기분이었다. 

 

“이제 그 사람도 없는데 염치 없이 군부에 갈 수는 없죠. 전 외부인이니까요.”

 

자신을 걱정하는 말에도 냉정하게 현실을 내미는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는 어딘가 머리 한 구석이 얼어붙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를르슈에게 짐을 전해주었으니까, 스자쿠는 를르슈를 볼 일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앞으로 볼 일이 없는 게 당연했다. 아무리 잘 따르던 상관의 아내라고 할 지라도, 그 연결고리가 된 상관이 죽었으면 끝이었다. 그것이 이성적인 사고 판단이었다.

 

“그래도 얼굴 한 번 비추러 와주세요. 제가 기다릴게요.”

 

그러나 입 밖으로 나가는 말에는 그런 이성의 조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를르슈는 자신을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스자쿠의 말에 잠시 굳어있다가, 희미하게 웃었다. 눈물로 퉁퉁 부어오른 눈이 희미한 곡선을 그리며 웃는 것에 스자쿠는 더 알 수 없는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는 상관의 아내로, 사이가 좋았던 부부였으며,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이 컸던 탓에 각인조차 미루고 있었던… 사람인데.

 

“기다려준다고 하면, 갈 수 밖에 없네요.”

“…다들 좋아할 겁니다.”

 

스자쿠는 뒤늦게 다른 사람의 핑계를 댔다. 를르슈는 그런 스자쿠의 핑계를 아는지 모르는지, 뒤늦게 피어오른 웃음을 감추지 않고서 왼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때 비치는 반지의 반짝거림에, 스자쿠는 어디론가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 

 

이래서야 스토커나 다름 없다고 생각하며, 스자쿠는 차에서 뛰쳐나왔다. 

스자쿠를 앞서가는 를르슈는 손끝이 빨개질 정도로 무거운 짐을 들고 있었다. 장을 보고 온 듯 했다. 다급하게 걷는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는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를르슈 씨.”

“…어, 스자쿠 씨? 여기에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이냐면, 딱히 일도 없었다. 스자쿠는 를르슈와의 만남이 있었던 것이 보름 전이었으며, 그 이후로 를르슈에게 오는 면회 신청도 없었다는 것에 낙담하며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쉬게 되는 날에, 를르슈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가 사는 동네로 차를 끌고 왔다가…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 것을 다 전하기에는 어색한 사이였다. 스자쿠가 말없이 를르슈의 짐을 들어주려고 하자, 를르슈는 괜찮다고 하면서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이 근처에서 근무했어요?”

“아아, 뭐 비슷합니다.”

 

근무라고 하기보다는, 를르슈와 만날 수 있는 때를 손꼽아 기다렸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손에 들린 짐을 빼앗아 들었다. 이번에는 를르슈가 사양할 수 없게 단단히 고쳐쥐었다.

 

“제가 들 수 있는데.”

“무거워 보여요. 어차피 남는 게 체력인데요.”

“그래도 몸이 재산인데 이런 걸로 체력 쓰면 아깝잖아요.”

 

를르슈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스자쿠는 그와 보폭을 맞추어 걸었다. 두 사람은 말 없이 걷고 있다가, 스자쿠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장 보고 오신 건가요?”

“맞아요. 이번주에는 감자가 싸다고 해서 잔뜩 사버렸지 뭐예요.”

“감자…. 이거 다 감자인가요?”

“네. 상태도 좋아서 여동생이랑 나눠먹으려고요.”

“감자 좋아하세요?”

“좋아하죠. 맛있잖아요. 스자쿠 씨는 감자 싫어하세요?”

“아뇨, 좋아합니다.”

 

남편을 잃어 시무룩하게 있었던 를르슈는 자신의 앞에서만 보이는 그런 모습인 것 같았다. 밖에서 보는 를르슈는 감자로 한 가득 장을 볼 정도였고, 또 여동생과 교류하는 것도 잊지 않는 걸 봐서 그럭저럭 잘 살아가는 듯 했다.

 

“급하게 어디 가시는 것 같았는데.”

“아, 곧 있으면 비가 온다고 들어서요. 비 맞기 싫어서 빨리 가려고 했죠.”

“비가… 오는 군요.”

“요즘 스콜처럼 쏟아져서 곤란해요.”

 

스자쿠와 를르슈의 대화는 평이했다. 대화 내용만 들으면 그가 일 년 안에 남편을 잃은 과부라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할 것 같았다. 밖에서 보는 를르슈는 어딘가 밝아보이고, 미소 짓는 얼굴도 환해 보였다.

원래부터 이렇게 웃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집앞까지 감자를 들어주었다.

 

“스자쿠 씨,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실래요?”

“아뇨, 괜찮습니다. 곧 비도 온다니까 저도 들어가야죠.”

“아쉽네요.”

“그럼 다음에 또.”

 

다음에 또, 라는 말에 를르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표정도 짓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커다래진 눈동자는 요즘 봐왔던 음울한 보랏빛과는 다르게 빛이 났다. 스자쿠가 목례를 하자, 를르슈도 뒤따라 고개를 숙였다.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초커가 보였다. 그리고 그의 왼손에 있는 반지도 여전히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