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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 오전 7시 10분 上

DOZI 2024.07.10 07:10 read.97 /

7월 9일 오후 6시 30분.

평소보다 정무가 늦게 끝난 를르슈는 아리에스로 향하는 차를 타는 대신에, 나이트 오브 세븐의 저택으로 향하는 차에 올라탔다. 몇몇 낯익은 나이트 오브 세븐의 부하들이 를르슈에게 경례를 하는 것이 오늘따라 를르슈는 부끄럽게 느껴졌다. 자신과 나이트 오브 세븐의 관계는 공공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이렇게 나이트 오브 세븐의 저택으로 찾아갈 때면 자신들의 낯뜨거운 밤 사정을 알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사실이니까… 부끄러워한다고 해서 부정되는 사실도 아니고.’

 

를르슈는 오늘 아리에스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미리 언질을 해두었다.

어머니 마리안느는 를르슈의 달력을 힐끔 보고는 ‘그러렴’ 하고 산뜻한 허가를 내주었다. 어머니에게 대놓고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집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말하는 건 어딘가 기분이 찝찝했지만 아리에스 궁 주인의 허가가 떨어졌으니 를르슈는 걱정 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아무리 뻔뻔한 를르슈라고 하더라도 여동생 나나리에게 오늘 연인과의 밤을 위해 외박을 하겠노라고 말하는 건 무리였다. 나나리에게는 황궁 밖 시찰을 위해서 하룻밤 묵고 온다고 에둘러 말했다. 물론 오라버니의 연애 사정에 대해 알고 있는 나나리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지만… 착한 그 아이는 를르슈가 없는 하룻밤을 씩씩하게 보내겠다고 를르슈의 앞에서 약속해주었다.

이제 모든 조건은 클리어. 체크메이트까지는 한 걸음이었다.

 

7월 9일 오후 7시 10분. 

나이트 오브 세븐이자 를르슈의 연인인 스자쿠의 저택은 황궁 밖으로 나가서 한참을 달려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볼 때마다 스자쿠와 참 닮지 않은 건물이라고, 를르슈는 생각했다. 황제폐하께서 하사한 것이니 군말 않고 살고 있긴 하지만 스자쿠 또한 ‘꽤 화려하지’라고 말하며 애매한 표정으로 웃었다.

저택의 입구를 지나고 나면 를르슈를 마중 나온 저택의 하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집사장이 먼저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어서오십시오, 를르슈 전하.”

“아, 오랜만이야. 나이트 오브 세븐은?”

“쿠루루기 경은 오늘 조금 늦는다고 하셨습니다. 저녁 식사는 먼저 하셔도 좋다고.”

“늦어? 그런 이야긴 못 들었는데.”

 

바로 스자쿠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던 기대감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를르슈의 노골적으로 실망한 기색에 집사장은 자신도 급하게 연락을 받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스자쿠가 자신에게 직접 연락하는 것보다 저택으로 바로 연락을 넣었다는 게 어딘가 섭섭했다. 

 

‘저녁은 먼저 먹어도 좋다고? 오늘 여기까지 온 게 누구 때문인데.’

 

어두워지는 를르슈의 표정은 빠른 속도로 가라앉았지만, 그것에 대해 누구도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를르슈는 손에 들고 있던 케이크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스자쿠와의 저녁 식사에 곁들일 케이크를 직접 만들면서 오늘을 기다렸는데, 저녁은 혼자 먹어도 좋을 정도로 늦는다니. 를르슈가 오늘을 얼마나 기대한지 본인도 알고 있을 텐데. 

 

“얼마나 늦길래 저녁을 혼자 먹으라고 하는 거야?”

“나이트 오브 라운즈 긴급 소집 회의라고 들어서,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들을수록 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를르슈는 하필 오늘 같은 날에 긴급 소집 회의가 열린다는 게 영 꺼림칙했다. 물론 황제가 아닌 일개 황자일 뿐인 자신에게 나이트 오브 라운즈의 일이 다 보고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감정이 앞서고 있는 지금, 를르슈는 이성적인 사고가 꽤 힘겨웠다.

 

“알았다. 그래도 저녁은 나이트 오브 세븐이 돌아오면 먹도록 하지. 준비해뒀다면 미안하지만 좀 늦게 들어도 될까?”

“물론입니다, 전하.”

“이건 케이크인데 냉장실에 보관해줘.”

“예, 알겠습니다.”

“……모처럼이니 나이트 오브 세븐의 침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쪽으로 바로 오라고 해주겠어?”

 

마지막 말을 꺼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보통 황족이 나이트 오브 라운즈의 저택에 찾아오면 응접실에서 기다리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스자쿠와 를르슈의 사이다. 우리는 연인 사이이니 서로의 침실에서 기다리는 것 정도는 예삿일도 아니라고 구태여 말하는 것 같아서 약간의 수치심이 느껴졌다.

를르슈는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이미 몇 번 와본 저택의 구조를 외워서 침실로 향했다. 안내해주지 않아도 침실로 알아서 걷는 를르슈의 모습에, 눈치가 빠른 하인들은 그를 따라오지 않았다. 다만 연인에게 바람맞은 거나 다름없는 불쌍한 황자전하를 안타까워 할 뿐이었다.

 

7월 9일 오후 7시 40분.

30분을 기다린 를르슈는 주인 없는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스자쿠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한 저택에서는 집 주인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를르슈는 스자쿠에게 메시지를 여러 번 보내기도 했다.

 

[회의는 잘 끝났어? 언제쯤 올 예정이야?]

[연락할 시간도 없이 바빠?]

[무슨 일 있어?]

[끝나면 바로 연락 줘.]

 

계속해서 물음표로 끝나는 문장에 겨우 마침표를 찍고 나서, 를르슈는 휴대폰을 아예 협탁 위로 치워버렸다. 잘 정돈된 침대 위로 올라간 를르슈는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나이트 오브 세븐으로서 일이 있는 스자쿠의 상황을 배려해야만 한다. 스자쿠가 일을 우선시한다고 해서 를르슈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까 믿고서 기다려줘야 하는 것이 를르슈가 할 일이었다. 

하지만 가슴은 쉽게 머리처럼 납득하지 못했다. 오늘은 모처럼 스자쿠의 생일을 맞이하기 위해서, 스자쿠에게 제일 먼저 생일 축하를 전달하기 위해서, 외박 허락까지 맡고서 찾아온 날이었다. 잔뜩 오늘밤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올랐던 가슴은 쉬이 진정되질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아직까지도 연락 한 통 없는 스자쿠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7월 9일 오후 8시.

배가 고픈 를르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스자쿠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입에 댈 생각이 없었지만, 한참 열이 받아 에너지를 다 써서 그런 것인지 를르슈로서는 드물게 식욕을 느끼고 있었다. 를르슈가 식당으로 내려온 것에 하인들이 저녁을 준비하겠다고 분주하게 움직이려고 하자, 를르슈는 그들을 멈춰 세우며 말했다.

 

“아냐, 그렇게 거창하게 먹고 싶은 게 아니라….”

“그럼 어떤 음식을 준비해드릴까요?”

“…내가 가지고 온 케이크를 갖다주겠어?”

 

를르슈는 스스로의 부탁에 자신이 꽤 비참하게 느껴졌다. 연인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만든 케이크를 연인 없이 혼자 먹게 되었다는 것은 적어도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접시랑 포크, 나이프는… 하나씩만 준비해주겠어?”

“아, 네. 알겠습니다. 바로 침실로 갖다드릴게요.”

“아니, 내가 들고 올라갈게.”

 

침실에서 기다릴 때 제일 먼저 문을 열어줬으면 하는 건 스자쿠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를르슈는 거절했다. 하녀장이 바로 맡겨두었던 케이크 상자와 접시와 포크를 가져다주었다. 를르슈는 그것들을 받아들고서 스자쿠의 침실로 돌아갔다.

혼자서 케이크의 포장을 풀고, 늘어놓은 접시와 포크, 나이프 앞에 케이크를 꺼내두면 를르슈는 더 없이 가라앉았다. 그 사이에 휴대폰으로 메시지라도 왔을까 싶어서 확인해보아도 스자쿠는 묵묵부답이었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이름이 적혀있는 케이크의 초콜릿 부분을 우적우적 씹어먹을까 하다가, 그냥 나이프를 들고서 조금 거친 모양새로 케이크를 한 조각 썰었다.

기다림을 못참고 먼저 케이크를 먹어버리면 스자쿠가 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를르슈가 케이크 한 조각을 다 먹을 때까지 스자쿠는 나타나지 않았다. 연락도, 여전히 없었다. 

 

7월 9일 오후 10시.

기다림은 를르슈를 지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깔끔하게 자른 케이크도 나중에는 괜히 포크로 쿡쿡 찔러대서 모양이 엉망이 되었다. 스자쿠의 이름이 적힌 초콜릿 부분만은 차마 부술 수 없었다. 를르슈는 거의 다 녹아버린 생크림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연락이 한 통도 없는 스자쿠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받지 않았다. 를르슈는 자신만 이렇게 기다리는 게 속상해서 스자쿠의 침대 기둥을 걷어찼다. 쾅 소리조차 나지 않은 둔탁한 소리만 울려퍼지는 것에 를르슈는 욱씬거리는 발등을 감싸쥐면서 찔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7월 9일 오후 11시 59분.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는 기다림 끝에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7월 10일 하루 만을 위해서 준비하고 기대한 것이 크다보니 실망도 컸으며, 실망한 만큼의 감정 소모로 지쳐있었다. 를르슈는 이불 조차 덮지 않고 침대에 드러누운 채로 잠에 빠지고 말았다. 손에는 언제 올지 모르는 스자쿠의 연락을 바로 받을 수 있도록 휴대폰을 꼭 쥐고 있었다.

 

7월 10일 오전 12시.

스자쿠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으며, 를르슈는 혼자서 꿈 속에서도 외로운 자정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