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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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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 2

DOZI 2026.03.30 19:55 read.29 /

를르슈 람페르지의 고백은 4월 중순의 어느날이었다.

그때 스자쿠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게, 를르슈 람페르지와 같은 교양 수업을 듣고 있었고 또 우연의 일치로 같은 2인1조의 팀이 되었다. 소문 속의 그 를르슈 람페르지와 몇 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긴 것이 신기했다.

를르슈 람페르지를 마주하는 것은 연예인을 만나는 것과 비슷했다. 소위 말하는 셀럽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스자쿠도 잘생긴 편에 속하는 남자이긴 했으나, 를르슈 람페르지는 어나더 레벨의 미남이었다. 미인이라는 말이 더 가까울 정도에 속하는 외형, 태어난 집안도 부와 명예가 따라주는 브리타니아 재벌, 그리고 명석한 두뇌까지 받쳐주는 를르슈 람페르지는 캠퍼스 안에서도 계속 이슈가 되는 인물이었다.

그런 를르슈 람페르지와 함께 과제 발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개인 연락처를 받고, 가볍게 점심 식사를 한두 번 했다. 모두 우연히 일어난 일들이었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스자쿠를 어려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스자쿠에게 호감을 느끼는 듯 했다. 아마 그의 입장에서는 어울리기엔 썩 나쁘지 않은 상대였을 것이다. 나쁘지 않은 호감형 미남인 스자쿠와 어울리는 것은 어쩌면 미인 를르슈 람페르지에게는 득이 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스자쿠에게도 를르슈 람페르지와의 친밀한 관계는 어떻게 보면 장기적으로 큰 이득이었다. 그래서 스자쿠는 를르슈 람페르지가 자신에게 식사를 권한다거나, 혹은 쇼핑에 함께 해주길 바란다는 약속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스자쿠의 계산적인 다정함이 를르슈 람페르지를 혼란스럽게 한 것이 틀림없었다. 를르슈 람페르지의 인간관계는 예상 외로 삭막했고, 그런 관계 속에서 쿠루루기 스자쿠라는 인물은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그에게 다정했다는 이유로 호감으로 남아, 더 나아가서 애정으로 발전하고 만 것이었다. 스자쿠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타고난 미모와 집안 때문에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었으므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스자쿠가 평범하게 대해줬다는 것에 멋대로 감동 받아 그것을 애정으로 발현한 것이다.

그렇게, 벚꽃이 거진 다 져버리고, 연녹색 잎사귀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던 캠퍼스의 한 구석에서 를르슈 람페르지는 스자쿠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널 좋아한다, 스자쿠.”

 

를르슈 람페르지의 얼굴은 흩날리는 벚꽃의 분홍색이 옮아버린 듯 살짝 붉었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은 그의 기대로 일렁이는 눈빛이 더욱 반짝일 수 있게 부드럽게 불고 있었다. 모든 자연의 섭리가 를르슈 람페르지의 고백을 돕는 것 같았다. 정작 쿠루루기 스자쿠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점만 빼면, 그의 고백은 누구에게나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난 남자한테 관심은 없어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응. 힘들 거 같아. 그래도 고백해줘서 고마워.”

 

스자쿠는 조금 차갑게 대답하려고 했지만, 마지막 말에 습관처럼 웃고 말아버렸다. 스자쿠에게도 숱하게 고백을 받아온 미남의 역사가 있다. 이런 고백을 거절할 때에는 어색하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웃어주면, 상대는 조금 수치스럽고 부끄러울 순 있어도 진심이 닿았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듯 했으니까. 스자쿠가 그런 의미로 웃어주자, 를르슈 람페르지는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미간이 찡그려지고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는 표정은 보통 우스울 텐데도, 를르슈 람페르지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극적으로 보였다.

 

“앞으로… 친구로 지내기는 힘들겠지?”

 

보통 친구로 지낼 수 있는 시간을 포기할 각오로 고백을 하니까, 아마 힘들겠지. 를르슈의 질문에 스자쿠는 정말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아마 어렵지 않을까, 라고 흘리듯 대답해주었다. 그래도 팀 과제는 성실하게 참여할게, 라고 대꾸해주면 를르슈 람페르지는 진짜 울기 시작했다. 소리 내어 엉엉 우는 것이 아니라, 눈물 한 방울을 뺨 위로 또르르 굴리면서 소리 없이 울었다. 아랫입술을 깨물어 숨을 한 번 참아내고, 그는 겨우 입을 열었다.

 

“고백하지 말 걸 그랬어. 친구로 지내는 거에 만족할 걸…….”

 

그건 좀 징그러울 지도. 스자쿠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옆에 있는 남자가 아무리 를르슈 람페르지라고 하더라도 남자는 남자다. 그런 남자가 자신에게 박히거나, 혹은 박고 싶거나, 아무튼 성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평범한 미남 스자쿠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그런 속내를 감추고서 친구로 지내는 건 징그럽잖아.

스자쿠는 그런 말을 할까 하다가, 를르슈 람페르지가 스스로 눈물을 닦아내고 겨우 자신을 다독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그는 를르슈 람페르지였다. 장차 세계적인 대기업의 후계자가 될 지도 모르는 남자. 그런 남자의 약점 한두 개는 잡아두는 게 좋지 않을까. 스자쿠의 머리는 불성실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적당히 연애를 하면서, 적당한 조건의 여자를 만나고, 적당히 취업을 하고, 적당히 결혼하고… 적당한 인생을 사는 것보다, 를르슈 람페르지라는 카드 한 패를 쥐고 있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게 오히려 더 재미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스자쿠는 자신의 기분 나쁜 성격에 속으로 혀를 찼다. 이런 계산을 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서 돌아서려는 를르슈 람페르지를 붙잡았다.

 

“나도 를르슈가 친구인 게 좋아.”

 

그럼 를르슈 람페르지의 보랏빛 눈동자가 커졌다. 그러면서 를르슈 람페르지는 아주 냉정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안된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는 것처럼 시선을 던지면, 를르슈 람페르지는 중얼거리며 대답했다.

 

“나는 널 좋아하니까. 친구로 지내도, 언젠가가 되면 또 고백해버리고 말 거야. 그러면 스자쿠, 너는 곤란할 게 분명하잖아.”

“나를 걱정하는 거야?”

“……좋아하는 사람을 걱정하는 건 당연하잖아.”

“그럼… 내가 를르슈를 좋아하게 되면 괜찮지 않아?”

 

스자쿠는 절대 일어날 리가 없는 일을 가정하고 꺼내들었다. 쿠루루기 스자쿠가 남자를 좋아하다니, 그럴 일은 천지가 뒤바뀌어도 일어날 리가 없는 일이다. 그게 아무리 아름다운 를르슈 람페르지를 상대로 한 가정이라고 해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사실을 감추고서, 를르슈 람페르지를 떠보듯 말해보면 그는 구원이라도 받은 것마냥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좋아해줄 거야?”

“음. 그러네. 그건 생각해보지 못했어.”

“…….”

“그래, 이건 어때?”

 

—내가 를르슈랑 섹스할 마음이 들면, 그건 널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

 

스자쿠는 아무도 없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섹스라는 말을 거리낌없이 꺼냈지만, 그래도 주위에 누군가가 있다면 조금 곤란했으니까. 무려 를르슈 람페르지와 남자끼리 하는 섹스에 대한 이야기 중이라는 걸 들키면 골치가 아팠다. 스자쿠는 여자가 좋았고, 여자랑 하는 섹스가 좋은 남자였기에, 만에 하나 를르슈 람페르지랑 섹스 이야기 좀 했다고 그와 섹스하는 사이가 된 것마냥 소문이 돌면 피곤해질 게 분명했다.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 람페르지는 고민하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겨우 하는 소리가 이것이었다.

 

“……섹스랑 사랑을 한 세트로 묶는 건 너무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아, 를르슈는 사랑하지 않아도 섹스할 수 있다고 생각해?”

“사상적으로 불건전하지만 사랑하지 않아도 섹스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입증된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런 욕구가 들어야 가능한 거 아니야?”

“나와 그럴 마음이 안 드는 건 네가 남자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했으니까, 아마도 그런 이유일 거다.”

“그럼 그런 관심을 가지면 되잖아. 나도 노력할게.”

 

스자쿠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누가 그딴 노력을 하겠어? 하지만 입술은 를르슈에게 다정한 말을 속삭이고 있었다.

 

“애초부터 남자가 관심 없는 사람한테, 남자인 너랑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면 그건 어떻게 보면 사랑이 아닐까? 섹스랑 사랑을 한 세트로 묶는 건 네 말대로 구시대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회통념상 아직까지는 섹스랑 사랑은 한 세트잖아?”

“…….”

“를르슈가 싫으면 나도 이제 더 이상 말 안 할게. 대신 친구로 지내는 건 없던 일이 되는 거야.”

 

부잣집 남자랑 조금 재미 보겠다고 이런 소리를 길게 하고 있는 자신이 신기하긴 했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어느새 눈물이 말라버렸고, 스자쿠의 제안에 진심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는 듯 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건 썩 나쁘지 않을 제안일 것이다. 못해도 친구, 잘하면 연인이 되는 선택지니까. 를르슈 람페르지의 결핍된 인간관계 속에서 스자쿠는 매력적이니, 그걸 포기할 수는 없을 게 분명했다.

 

“좋아. 네가 날 좋아할 수 있도록 해볼게.”

 

그리고 를르슈 람페르지는 기세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자쿠는 입맛이 써졌다. 진짜로 받아들이다니,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 건지. 속으로 그런 소리를 삼키면서,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의 의미였다. 또한 를르슈 람페르지에게 이런 악수 말고는 더 이상 내어줄 것이 없다는 선전포고이기도 했다.

 

“잘 부탁해, 를르슈.”

“나야말로 잘 부탁해, 스자쿠.”

 

하지만 그 뜻을 알 수 없을 를르슈 람페르지는 순진하게 스자쿠의 손을 잡고 어렴풋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이런 악수 한 번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는 쉬운 남자인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