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타니아에서 선물로 들어온 고양이를 떠맡게 된 건 스자쿠의 몫이었다. 아니, 대체 왜 내가? 스자쿠는 고양이를 떠넘기는 아버지를 보고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집에 아무도 없는데 혼자 두면 쓸쓸해 한다는데 내가 집에서 고양이 돌볼 시간이 있어보이냐는 아버지의 답변에 스자쿠는 할 말이 없었다. 개강 전의 놀고 먹는 대학생인 스자쿠는 변명할 거리를 찾다가 한 마디를 보탰다.
“고양이들은 나 안 좋아해! 그리고 이거 고양이 아니잖아!”
소파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이를 누가 고양이로 본단 말인가. 브리타니아의 유전 공학 기술이 발달하다 못해 사람과 동물의 유전자를 혼합하여 만든 수인이 발명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직 일본에서는 들일 수 없는 비합법적 존재이다. 아버지가 총리라는 것 외에는 크게 다를 바 없는 일개 일반인 스자쿠가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반은 사람이니까 반 정도는 좋아해주겠지. 주인 노릇 좀 해라. 거절할 여건이 안 되서 받은 거라 나중에 돌려 보낼거니까. 황실에서 받은거라 함부로 처리하기도 그래.”
심지어 브리타니아 황실의 선물을 데리고 사는 대학생이 어디 있어! 스자쿠는 어이 없는 처사에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안 데려가. 갑자기 불러 놓고 무슨 고양이를 길러. 나 사는 데는 애완동물 금지라고. 테이블 소리에 고양이가 눈을 떴다. 뾰족하게 선 귀와 꼬리, 그리고 고양이 다운 경계가 가득한 눈이 스자쿠를 향했다.
사람이랑 절반 섞이긴 했어도 진짜 귀엽긴 귀엽다. 고양이는 최고지…. 스자쿠는 멍하니 그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검은 머리카락과 같이 검은 귀는 쫑긋거리며 스자쿠를 향한 경계를 가득 세우고 있었다. 쟤도 날 싫어하는 거 같은데, 빨리 마음 털고 나가자. 그러나 고양이는 스자쿠의 예상과 다르게 소파에서 내려와 스자쿠의 옆에 조심스럽게 섰다. 코 끝을 찡긋거리는 걸 보면 냄새를 맡는 것 같았다. 스자쿠에게 다가오는 것에 스자쿠는 깨운 것에 대한 사과를 했다.
“큰 소리 내서 미안….”
브리타니아에서 왔으니까 브리타니아어를 써야하나? 일본어? 모르겠네. 스자쿠의 목소리에 고양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스자쿠를 빤히 쳐다보았다. 손톱으로 할퀴려나? 고양이들은 대부분 나한테 그러니까….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고양이는 스자쿠의 뺨에 입술을 갖다댔다. 쪽 소리도 안날 정도로 부드럽게 맞닿았다. 응? 스자쿠는 저도 모르게 고양이의 몸을 밀어냈다.
“네가 맘에 들었나보다. 몇 달 데리고 있어.”
“응?! 깨물려고 한 거잖아?!”
“아니면 이 집에서 외롭게 내버려 둘까?”
이 크고 넓은 집에서 홀로 큰 스자쿠는 아무리 가정부가 상냥하게 대해줘도 사람이 없을 때의 외로움을 알고 있다. 이렇게 예쁜 고양이한테 혼자 있게 하는 건 너무 외롭겠지…. 스자쿠는 제 두 손에 다 들어오는 작은 고양이 소년을 쳐다보았다.
방금 전의 뽀뽀는 뭐였지? 수인은 하나도 모르니까…. 우선 안아봐서 싫어하면 포기하고. 스자쿠는 고양이를 품 안에 끌어안았다. 바스락거리는 옷소리와 동시에 고양이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따끈한 체온이 스자쿠의 등을 감쌌다. 서로 끌어안고 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날 싫어하는 건 아니구나.
“알았어, 데리고 갈게. 이름은 뭐야?”
“모른다. 말하는 걸 못 봐서.”
끌어 안은 채로 스자쿠는 코트를 받았다. 고양이를 끌어 안고서 번쩍 들자 고양이의 귀가 또 뾰족하게 섰다. 미안, 놀랐지. 우선 귀를 숨길까…. 코트를 입지 않고 고양이의 귀를 가리는 데에 썼다. 어차피 차를 타고 왔으니 추위 같은 건 걱정할 거 없었다.
집 밖을 나오면서 차에 바로 올라탔다. 베이비 시트 같은 걸 채울 만큼 작진 않지만 그래도 어린 아이의 몸을 하고 있는 고양이라 걱정이 됐다. 뒷자리에 안전벨트까지 채웠다. 조용하게 별 탈 없이 자취하는 맨션까지 오는 동안 고양이에게 코트를 씌우는 건 잊지 않았다. 집이 더러웠던가 깨끗했던가 기억이 안 나네. 엘리베이터를 지나 오토락의 현관까지 지나면서 고양이를 꼭 끌어안고 들어왔다.
아, 여자친구가 치워줬지. 그리고 남의 집에 마음대로 손대는 여자는 별로라고 말했다가 뺨을 맞고 전 여자친구가 되었다. 넌 섹스 말고 다 최악이야! 그런 말을 했었지. 스자쿠는 고양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 신발은 벗어야겠다.”
스자쿠가 신발을 벗기려고 하자 고양이가 손을 밀어냈다. 음, 역시 미움 받는건가. 뽀뽀도 해주고 얌전히 안겨주고 그런 거 보면 좋아하는 거 같았는데. 스자쿠는 괜히 한숨이 나왔다. 고양이는 혼자서 신발도 벗고 스자쿠의 신발 옆에 제 신발도 가지런히 놓았다.
“우선 외출 한거니까…손 씻을래? 아, 고양이라 물은 싫어하겠지.”
물티슈가 있던가. 스자쿠가 중얼거리는 말에 고양이는 고개를 저었다. 수인이라 좀 다른가? 스자쿠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먼저 손을 씻는 시범을 보였다. 고양이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스자쿠보다 더 꼼꼼하게 손을 씻고서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잘하네.”
“나나리가 가르쳐줬으니까.”
“응?! 말할 줄 알아?!”
“수인은 반은 사람이니까 말 정도는 할 수 있지? 가르치면 잘 배워. 나나리가 나보고 똑똑하다고 했어.”
“그, 그렇구나. 나는 수인은 잘 몰라서…!”
“알아. 일본은 아직 수인이 보편적이지 않으니까.”
화장실에서 계속 이야기하는 것도 그래서 거실로 데려갔다. 스자쿠는 세일러복 차림의 얌전한 고양이 소년을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쿠루루기 스자쿠야. 방금 전에 같이 있었던 아저씨 아들. 너는 이름이 뭐야?”
“…쿠루루기 씨가 내 새로운 주인인데 이름을 지어줘야지.”
“음…. 우선 비밀리에 기르는 거라서 진짜 주인은 힘들거야. 그리고 일본은 수인이 보편적인 게 아니라 불법이야.”
“뭐?”
“아마 원래 네 주인에게 돌아가게 될 거 같은데…. 아버지가 잘 말해주겠지만. 아마 나나리? 그 사람한테 불렸던 이름이 있겠지?”
“나나리는….”
“펫 시터 같은 사람이었어? 브리더라고 하나.”
“나나리는 브리타니아의 공주야.”
“아, 이런 말 했다는거 나나리 공주님한테 비밀이야.”
일국의 공주를 펫 시터로 취급하다니 스자쿠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고양이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나나리는 나를 를르슈라고 불렀어.”
“아, 를르슈구나.”
“응. 루루라고 부르기도 해. 아기 때는 루루라고 불렸어.”
“지금도 충분히 아기인걸.”
“아기가 아니야! 혼자서 손도 씻을 줄 알고 목욕도 하고…!”
“알았어, 알았어, 그럼 나도 를르슈라고 부를게. 괜찮아?”
“…응.”
를르슈는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스자쿠는 졸졸 따라다니며 를르슈에게 필요한 것을 물었다.
“캣 타워나 스크래처, 그리고 사료 같은 건?”
“반은 사람이라서 캣 타워도 사료도 필요 없어. 사람이랑 똑같은 걸 먹어.”
“그렇구나…. 기르기 편하네. 말도 통하고. 할퀴지도 않고.”
“그래도 외로우면 싫어.”
“그건 사람도 그래. 외로운 건 싫지.”
“…나나리도 외로울까?”
“글쎄, 를르슈는 어쩌다가 일본에 온 거야?”
“모르겠어. 자고 일어나니까 일본에 있었어. 울고 있는 나나리랑 같이 자고 있었는데….”
나나리, 아직도 울고 있을까. 를르슈는 시무룩한 얼굴로 스자쿠에게 기댔다. 스자쿠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예상도 안 되지만 시무룩한 애완동물과 놀아주는 것도 임시 보호의 몫이겠지.
“다시 나나리 공주님한테 돌아갈 수 있을거야. 너무 슬퍼하지 마.”
“…쿠루루기 씨네 큰 집은 무서웠어.”
“아, 아버지네 집 말이지. 나도 어렸을 땐 무서웠어. 당분간은 여기서 지낼거니까 걱정하지 마.”
“아무도 안 쓰다듬어 주고…. 말을 걸어도 무섭고.”
“그랬어? 나는 쓰다듬어도 돼?”
“응. 쿠루루기 씨 손은 따뜻하니까.”
를르슈의 머리 위로 솟은 귀가 접히지 않게 살살, 요령껏 쓰다듬으면 를르슈는 웃는 얼굴로 마주보았다. 품도 따뜻했어. 뜨거울 정도로. 동영상 속의 고양이들은 쓰다듬으면 고롱고롱 소리를 내던데. 를르슈는 수인이니까 그런 소리 대신에 말로 전하는 것 같았다.
“신기하네. 고양이들은 나 싫어하거든.”
“왜?”
“모르겠어. 맨날 물리거나 할퀴거나…. 눈만 마주쳐도 도망가고?”
“쿠루루기 씨는 나나리처럼 상냥한 느낌인데.”
꼬리까지 흔드는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는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나리 공주님, 얼굴은 본 적은 없지만 정말 황송합니다. 공주님 덕에 제가 상냥하다는 소리도 듣고. 를르슈는 스자쿠의 손에 제 뺨을 부비며 졸리다고 했다.
“브리타니아랑 시차가 제법 되지…. 내 침대에서 괜찮겠어?”
“응, 나 계속 나나리랑 같이 잤어. 쿠루루기 씨랑도 같이 잘거야.”
우선 고양이라고 해도 반은 사람이니까 여자랑 같이 한 침대를 쓰는 건 좀 그렇지. 어린 고양이 수인이라도 여자랑 한 침대…. 여자도 아니고. 스자쿠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그래도 를르슈는 남자랑 같은 침대 쓰는 거 불편하지 않아?”
“…괜찮은데?”
“음, 나는 우선 공주님처럼 여자가 아닌데? 같은 여자끼리 자는 거랑 느낌이 다를 걸?”
“발정기 전이라서 계속 나나리랑 같이 잘 수 있었던거야. 나는 수컷이야, 쿠루루기 씨.”
수컷?
스자쿠는 를르슈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다시 한 번 그 뜻을 되뇌였다. 아, 수컷이구나. 그래, 를르슈는 수컷….
“수컷?!”
“…갑자기 크게 소리 지르지 마.”
“를르슈, 으, 어, 으?!”
고양이는 원래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고양이일 때. 그리고 반은 인간인 수인이 되면 남녀 구별이 확실해지니까 암수 구별 정도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를르슈는 스자쿠의 품에 기대면서 흔들던 꼬리도 가만히 내버려두고 있었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속으로 무언가의 진리를 깨닫고 있었다. 귀여운 것에는 성별이 없구나. 문득 손이 멈추면 를르슈가 다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고양이들 특유의 그 빤한 시선에 스자쿠는 다시 손을 움직여 그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쿠루루기 씨 손 기분 좋아. 나나리 같아. 허리 근처에 오는 고양이 소년의 기분 좋다는 말에 스자쿠는 미묘한 세계의 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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