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Very2ndPlace
< >

화이트데이 2020

DOZI 2020.03.16 12:06 read.319 /

성인 스자루루

현대물

 

 

 

 

 

 

 

0.JPG

 

(고뎅@freackin773h 님 그림입니당 ^-^) 

 

 

 

 

 

둘은 동거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고, 어른이 되어가면서부터 예전만큼 두근거리지는 않아도, 서로를 보며 여전히 설레고, 좋은 일은 함께 하며 슬픈 일은 같이 울어주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생각하던 때에 스자쿠가 내민 사탕은 청천벽력처럼 느껴졌다.

직접 만든 건 아니지만— 하고 말끝을 흐리면서,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하는 스자쿠는 를르슈가 사탕을 받는 것을 보고서, 마치 고등학생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의 동안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고등학생 때랑 겹쳐보아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를르슈는 고맙다고 말하면서 오늘의 날짜를 떠올렸다. 

 

3월 14일.

쿠루루기 스자쿠로부터 5년 만에 화이트데이에 사탕을 받다.

를르슈 람페르지에게는 갑작스러운 일이라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장장 사흘에 걸친 시간이 필요했다. 

스자쿠와 를르슈는 서로 태어나고 자란 나라가 다르기 때문에 발렌타인데이-화이트데이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조금은 있을 지는 몰라도, 두 날짜 모두 연인들의 이벤트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귀던 초반—그것도 고등학생 때 정도만 챙겼다. 대학생이 되면서 동거를 하고, 초콜릿이나 사탕 정도는 가볍게 서로 주고 받았기 때문에 굳이 2월 14일과 3월 14일을 챙기지 않아도 되었다. 서로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은 물질적으로,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도 충분히 잘 전해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들이밀어진 사탕은 달콤하긴 하지만 그 속내를 알 수 없으니 제대로 그 단맛을 즐길 수가 없었다. 

 

왜 이제 와서 사탕을?

아니면 내가 간과한 게 문제였나?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침대 위에서는 스자쿠의 여자 노릇을 하고 있는 를르슈는 발렌타인데이 때 스자쿠에게 초콜릿을 준 적도 있었지만, 스자쿠도 초콜릿을 준 적도 있고, 그 다음달 3월에 사탕을 준 적도 있고, 사탕을 주고 받은 적도 있었다. 결국 두 배로 드는 선물값에 서로 생일 말고는 챙기지 말자는 결론으로 다다랐고, 그렇게 10년 넘게 연애, 지금은 사실혼 관계에 필적한 사이에 다다른 두 사람에게 화이트데이 사탕은, 못해도 를르슈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걸 챙긴 이유는 뭘까. 스자쿠의 사고 회로는 단순하지만, 그 회로의 추진력이 들어가는 과정은 를르슈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계기가 된 경우가 많았다. 

가장 유력 후보는 ‘화이트데이니까 샀어.’ 정도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스자쿠의 마음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의외로 단순한 듯 해보여도 복잡한 것이 스자쿠니까. 

 

“응? 사탕 안 먹어?”

 

식탁에 앉아서 동그란 통 안에 들어있는 사탕 케이스를 굴리고 있는 를르슈에게, 샤워를 마친 스자쿠가 다가와서 물었다. 이거 맛있다던데. 그 말에 를르슈는 뚜껑을 열어 파스텔 핑크의 사탕을 입에 물었다. 볼 한쪽이 불룩해지도록 사탕을 물고 있으면 스자쿠가 그 뺨을 만지작거리며 귀여워했다.

 

“귀엽네, 를르슈.”

“그래? 사탕은 맛있어. 먹을래?”

“먹고는 싶은데, 양치 했으니까.”

“……흐음.”

 

를르슈는 스자쿠의 목에 두른 타올을 제 쪽으로 잡아 끌었다. 높은 시선에 있던 스자쿠와 눈을 맞추면서 입술을 갖다대면 스자쿠가 웃음을 흘리면서 입을 벌려주었다. 살짝 녹여물었던 사탕을 혀 위에 태워 스자쿠 쪽으로 흘려보내면 스자쿠가 사탕과 함께 를르슈의 혀를 건드렸다. 흰 목덜미를 덮는 손은 샤워가 이제 막 끝난 탓이 따끈하고 촉촉해서 더 만져줬으면 하는 기분에 를르슈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스자쿠와 키스를 하는 동안 사탕은 점점 작아졌고, 마지막에 스자쿠의 입에서 굴려졌다. 를르슈는 키스의 여운으로 잠깐 스자쿠에게 기대고 있었다. 

 

“양치 다시 해야하잖아.”

“뭐, 어때. 좋았으면서.”

 

사탕은 맛있네. 작게 바드득, 하고 사탕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스자쿠는 다시 화장실돌아갔다. 양치를 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면서, 를르슈는 식탁 위에 다시 올려두었던 사탕 케이스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무튼 받은 만큼은 돌려주어야한다. 4월에는 뭔가 주고 받는 행사는 없으니, 3월 안으로 뭔가 해결을 봐야겠다. 그런 결론을 내리며, 를르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답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3월 15일.

회사에 스자쿠가 준 사탕을 들고 출근한 를르슈는 예전에 스자쿠와 나나리와 같이 찍은 사진 옆에 사탕을 올려두었다. 를르슈를 가운데에 두고서 나나리와 스자쿠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은 를르슈의 활력소나 다름없었다. 그 옆에 있는 사탕 역시 영롱하게 빛이 나는 걸 보고 있으면 기운이 나야할 텐데, 오히려 그것에 대한 답례의 부담감으로 긴장하게 되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런 것을  챙긴다는 것은 설레기도 하지만, 자신이 설렌 만큼 돌려줄 수 있는지, 그 자신감을 갖는 것이 늘 어려웠다. 스자쿠와의 관계에서는 를르슈는 답지 않게 겁쟁이가 되었다. 

 

“화이트데이 답례…? 보통 발렌타인데이 답례가 화이트데이 답례 아닌가?”

 

‘그 사탕 뭐야?’ 하고 먼저 말을 건 카렌 덕분에, 그녀에게 상담을 부탁하기로 한 를르슈는 넌지시 운을 똈다. 카렌은 사탕 한 알을 얻어먹으며 으음, 하고 고민했다. 점심시간이라 사무실은 거의 비어있었지만 도시락을 자주 싸오는 를르슈와 카렌은 둘이서 빈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그나저나 사탕 맛있다. 적당히 달고 안에 잼 같은 것도 있네.”

“응, 스자쿠가 사준 건데.”

“웩.”

 

카렌은 사탕을 꿀꺽 삼키면서 진작에 말을 하라면서, 마시고 있던 차로 입가심을 했다. 

 

“를르슈도! 스자쿠가 준 화이트데이 사탕이었으면 진작에 말을 하라구!”

“줬으니까 내 거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되잖아.”

“내 기분이 나쁘니까 말해.”

“어느 부분에서?”

“…스자쿠가, 너만 생각해서 고른 사탕일 텐데, 굳이 내가 그걸 먹을 이유는 없잖아?”

“신경쓸 수록 새삼스러운 문제라 아예 덤덤하게 나가려고 했거든.”

“어디가 새삼스러운데?”

“이제 와서 화이트데이에 사탕을 주는 거 말이야.”

 

같이 산 것도 10년이 넘었는데 이런 이벤트 같은 걸 챙기는 건, 서로 싫다고 말해서 안 챙기기로 한 것도 스자쿠였는데. 

를르슈의 중얼거림에 카렌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도 갑자기 챙겨주고 싶을 때 있잖아? 뜬금없이 소소한 선물 해주고 싶을 때.”

“그런 때가 많으니까 화이트데이가 새삼스러운거야.”

“넌 정말…. 해줘도 뭐라고 하고, 안 해줘도 뭐라고 하는구나.”

“서로 타협한 지점이 있는데, 그걸 이제와서 어긴다는 게 이상해서 그런거야.”

“그냥 순수한 의도를 즐겨.”

“과연 순수할까?”

 

스자쿠가 불쌍하네. 카렌은 말꼬리를 늘리면서 대답했다.

를르슈도 사탕 하나를 입에 물고서 그것을 녹여먹으면서 점심의 한가로운 정적 중에 폭풍 같은 고민을 가라앉히는데 집중했다. 업무에 지장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러고 보면, 이런 점에서 를르슈도 스자쿠랑 닮아가는 거 같아.”

“뭐?”

“이벤트 안 챙기기 약속 정도는 사소한 규칙 같은 거잖아? 그냥 선물하고 싶을 때 하면 되는 일을 약속으로 지킨 이상 하지 않는다고 고민하다니. 스자쿠나 할 법한 고민이지, 보통 를르슈라면 고민 안 했을 거 아냐?”

“…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상대가 스자쿠니까 그런거겠지.”

“…….”

 

뭔가 추태를 보인 것 같아서 부끄러워진 를르슈는 얼굴을 살짝 숙이며 표정을 감추었다. 카렌은 기지개를 쭉 켰다. 예나 지금이나 한창이구만. 카렌의 놀리는 말투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타이밍 좋게 사람들이 돌아오면서 를르슈는 다시 포커페이스를 되찾았다. 

 

3월 16일. 

를르슈의 속옷은 기본적으로 검은색 비키니로, 꽤나 오래 전에 정착한 브랜드의 것을 꾸준하게 쓰고 있다. 다른 색의 속옷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스자쿠가 를르슈에게 ‘검은색 비키니가 아닌 를르슈의 속옷은 상상할 수록 야하다’라는 말을 한 이후로,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검은색 비키니를 고수하고 있었다. 

검은색이 아닌 다른 속옷을 입으면 평소보다 귀엽거나 평소보다 야하거나 평소보다 배덕감이 두 배다, 같은 이론을 펼치는 스자쿠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말을 하는 것을 듣고서 를르슈는 그것이 때로는 서비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만큼 돈을 벌고 있고, 가지고 싶은 것은 스스로의 돈으로 살 수 있는 나이인 만큼, 서로에게 서로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하면 를르슈에게 있어서 애정표현이 전부였다. 애정표현 하면 키스나 포옹, 그런 것이 있겠지만 이젠 그런 어리광을 서비스로 하기에는 둘은 지나치게 어른이었다. 

를르슈는 빨간색과 검은색 사이에서 잠시 고민을 했다. 검은색은 시각적으로 익숙하지만, 디자인이 다르다는 걸 아는 순간, 그것이 반전이 되어 두 배로 시각적으로 파괴력을 가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빨간색은 애초부터 평소와 다른 느낌을 주면서, 더 파급력이 클 수도 있다. 

 

를르슈가 두 장의 티 팬티를 사들고 돌아온 날 저녁, 3월 16일의 밤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수건 사이에는 빨간색 티 팬티가 숨겨져 있었다. 어차피 이런 팬티를 입고 성 생활은 가능해도 일상 생활은 무리이기 때문에, 일회용으로 쓰게 될 게 뻔하고, 그러한 점에서 낭비라면 낭비겠지만…. 

스자쿠에게 서비스, 답례, 사탕에 대한 애정 표현 정도라면 충분하다!

를르슈는 샤워를 끝마치고 빨간색 티 팬티와 그 위에 하얀 가운을 걸치고서 욕실 문을 나섰다. 헐렁한 티셔츠와 트레이닝복 바지만 입고서 침대에 걸터 앉아 휴대폰을 하고 있는 스자쿠를 보며 다시 의지를 다졌다.

사랑하는 스자쿠에게 이 정도 쯤이야 몇번이고 서비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를르슈는 스자쿠의 옆자리에 앉으면서 허리에 느슨하게 묶은 띠의 리본을 풀면서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혀가 귀엽게 기웃거리며 제 입술을 훑고 가는 감각에 스자쿠는 웃으면서 를르슈를 제 허벅지 위에 올렸다. 

 

“를르슈, 왜 갑자기 서비스야?”

“화이트데이 답례다.”

“답례?’

“네가 갑자기 사탕을 줬으니까…. 나도 갑자기 서비스 해줘야지.”

 

나름 고민했으니까. 

를르슈는 가운을 벗으면서 스자쿠에게 입을 맞추었다. 스자쿠의 손이 허리와 옆구리를 쓸어내려가며, 가려져있던 가운 자락 사이까지 닿는 것에 허리가 떨렸다. 를르슈의 붉은 속옷과 그 디자인에 스자쿠가 숨을 들이켰다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당황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스자쿠의 눈망울이 너무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아버렸다. 

 

“서, 서비스가 너무 과한데?”

“검은색도 있어.”

“그건 나중에 또 보여줘.”

“흐음, 오늘 하는 거 봐서?”

“그 말도 오늘의 서비스야?”

 

를르슈의 서비스에 고맙다며 스자쿠는 그를 침대에 눕혔다. 엉덩이 사이만 겨우 가리는 그 천조각의 낯선 감각이 스자쿠 뿐만이 아니라 를르슈도 설레게 만들었다. 스자쿠가 준 사탕 만큼의 귀여움은 없겠지만, 갑자기 받은 만큼의 놀라움과 사랑스러움을 돌려줄 수만 있다면, 이 또한 나쁘지 않은 전개라고 생각하면서 를르슈는 기꺼이 다리를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