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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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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1

Re:play / DOZI 2025.01.15 12:07 read.28 /

“루루, 그거 키 크는 꿈 아니야?”

 

셜리의 말에 를르슈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꿈이 아니라니까. 를르슈의 딱 잘라 하는 말에 셜리는 입술을 삐죽였다. 모처럼 사람이 좋은 꿈으로 해석해주는데! 그것에 를르슈는 왕자님 스마일을 지으면서 대꾸할 뿐이었다. 그래, 좋은 해몽 고마워. 를르슈의 가증스러운 반응에 셜리와 친구들은 어이가 없어서 제대로 웃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를르슈 람페르지, 15세. 애쉬포드학원 중등부에 재학 중인 그는 며칠째 똑같은 꿈에 시달리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있어, 라고 그는 그 꿈을 한 문장으로 일축하고 있었다. 를르슈의 꿈에 대해서 다들 셜리처럼 ‘키 크는 꿈’으로 해석하려고 했다.

 

“애당초 를르슈가 꿈 이야기를 하는건 드물잖아?”

 

리발이 를르슈의 옆에 바싹 다가오더니 그의 편을 들어주듯이 말했다. 거리를 좁혀오는 리발은 예의 그 나쁜 장난을 치러 갈 때의 눈을 하고 있었다. 평소의 를르슈라면 그 나쁜 장난에 어울려주겠지만, 오늘은 뒤숭숭한 꿈 때문에 제대로 자지 못한 수면 부족 때문에 그럴 여유를 보일 수가 없었다. 를르슈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리발도 별반 재미가 없을 걸 알았는지 이내 두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 

 

“드물다 보니까 오늘은 꽤 졸리군.”

“‘오늘은 꽤’가 아니라 늘 졸고 있잖아, 루루!”

“선생님께 대답은 잘하잖아.”

“그런 태도가 나쁜 거야!”

 

발끈하는 셜리의 모습에 를르슈는 웃기만 할 뿐이었다.

오늘도 그런 꿈을 꾸었다. 밑도 끝도 없이 아래로만 한없이 떨어지고 떨어지는 꿈. 그러나 를르슈가 누군가에게 그 꿈을 상담할 때에 한 가지 말하지 않는 점이 있다면, 아마도 떨어질 때 누군가를 꼭 붙잡고 있었다는 감각에 대한 것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고 있는 손이 허탈할 정도로, 거칠게 붙잡고 있었던 상대가 있었다.

를르슈는 애초부터 이 꿈 이야기를 할 때, 누구에게도 이 부분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꿈 따위에 연연하고 있다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고, 또 그럴만한 상대가 없는 데에도 그런 꿈을 꾼다는 것이 뭔가 자신의 무의식 표출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나도 사춘기인가?’

 

를르슈는 남의 일을 떠올리듯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결론을 내렸다. 아무래도 사춘기. 다정다감할 시기에 그런 꿈을 꾸는 것도 어쩌면 사춘기의 한 방황 중에 하나일 것이다. 를르슈처럼 (수업시간에 졸거나 혹은 무단조퇴를 일삼는 일탈을 하더라도) 어디 하나 비뚤어지지 않은 남자 중학생에게 꿈은 이상한 방향으로 무의식이 드러나고는 할 테니까.

사춘기가 지나고, 어른이 되면 그런 꿈은 꾸지 않게 되겠지. 

를르슈는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 하루가 저물기를 기다렸다. 오늘밤은 그 꿈을 꾸고 싶은 건지, 아니면 꾸고 싶지 않은 건지 모를 마음으로.

다음날이 되면 를르슈는 또 그 꿈에서 깨어났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그 감각 속에서 헐떡거리면서 숨을 고르는 채로 일어났다. 무릎이 지끈거리면서 아팠고, ‘정말 키가 크려는 건가?’라고 생각하며 를르슈는 자신의 성장통을 저주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땀으로 흠뻑 젖은 잠옷이 기분이 나빴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재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나서 를르슈는 이른 아침을 시작했다. 시계를 보면 새벽 5시, 학교를 가기에는 한참이나 이른 시간이었다.

수면 부족이 점점 가중되다 보니 책 읽기는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를르슈는 멍한 머리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지만, 꿈 때문에 무엇도 할 수 없는 몸 상태인지라 를르슈는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우선 몸을 움직여서 잠이라도 달아내볼까 싶어서 를르슈는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책상 앞에 앉은 를르슈는 하릴없이 SNS 창을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를르슈의 몇 없는 친구 창에는 모두들 오프라인 상태였다. 그들이 꽤 예전에 올려둔 사진과 글을 읽으면서 를르슈는 소리 없이 스크롤을 내려갔다. 를르슈가 주로 공감하는 버튼을 누르는 글은 하나 뿐인 여동생 나나리가 올린 사진과 글이 대부분이었다. 나나리의 이야기에는 대부분 를르슈가 빠지지 않았다. 오라버니가 해주신 음식이에요, 오라버니와 함께, 오라버니와 즐거운 시간… 이런 식으로 가끔씩 나나리의 친구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마저도 ‘여기에도 오라버니와 함께 오고 싶다’ 라는 말로 끝나는 것이 귀여운 여동생이라고 생각하면서, 를르슈는 SNS 창을 닫았다.

를르슈의 일상은 대체로 여동생, 그리고 학교, 가끔씩은 나쁜 장난을 칠 때, 이렇게 짜여진 듯 맞춰져 있었다. 그런 생활이 싫다거나 지겹다고 느끼진 않았다. 아니, 때때로 밀려드는 답답한 느낌은 있었지만 그것은 아마 사춘기 소년이 겪는 비일상에 대한 무자각 동경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를르슈 자신은 이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바라는 것은 죄악일 것이고, 분수에 넘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너무 억누르고 있어서 그런 꿈을 꾸는 걸까…? 를르슈는 새삼 자신의 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꽉 끌어안은 채로 끊임없이 추락하는 꿈. 그리고 그 끝에서 자신이 깨어나는 결말은 매번 같은 느낌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억제하려는 성격 탓에 꿈에서는 그것이 표출되는 것일 수도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를르슈는 밀려들어오는 수마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지금 자면 또 그 꿈을 꾸게 되려나? 어차피 꿈인데, 뭐. 

그렇게 생각하며, 를르슈는 정확히 4시간 30분 후에 일어났다. 를르슈 람페르지 인생에서 다시 없을 대지각이었다. 누구도 를르슈가 일어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모양인지, 집안은 고요했고, 를르슈는 반짝이는 햇살 속에서 눈을 떴을 때의 9시 30분이라는 늦은 시각에 개운한 기상을 마쳤다.

어차피 늦은 거, 빨리 뛰어간다고 달라지는 거도 없으니까.

어딘가 비뚤어진 구석이 있는 를르슈는 그 뒤틀린 사고로 천천히 아침식사를 마치고서 느릿하게 현관을 나섰다. 햇살이 쨍쨍하게 내리쬐는 여름날, 방학까지 얼마 남지 않아 나태해져도 무죄라고 생각할 만큼의 초여름이었다. 

학교에 도착하면 셜리가 호들갑을 떨면서 ‘루루는 불량해!’라고 외쳤다. 평소보다 잠을 더 잘 잤기 때문일까, 를르슈는 또 예의 그 상큼한 왕자님 스마일을 지으면서 ‘그럴지도’라는 말로 잘라냈다. 셜리는 그의 웃는 모습에 이를 부득 갈면서 ‘루루!’라고 일갈했다.

그리고 불량학생이 된 를르슈는 교무실에 불려갔다.

 

“람페르지, 방학 얼마 안 남았다고 이렇게 방탕해지면 되겠냐, 안 되겠냐?”

“안 되겠죠.”

“성적이 잘 나오면 뭐하겠어, 성실함이 중요한 거야, 결국엔!”

“고쳐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말은 잘하지.”

 

를르슈의 빙긋 웃는 모습에 담임은 그의 등을 툭툭 두들기며 교무실 밖으로 내보냈다. 교무실 밖으로 나가면 어른 남자 한 명과 를르슈 또래로 보이는 소년 하나가 서있었다. 그 소년은 빳빳한 새 교복을 입은 티가 났다.

전학생? 학기도 다 끝나가고 방학식만 기다리는 이 시기에 전학생? 

를르슈가 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는지, 소년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를르슈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는 것은 잠깐이었다. 를르슈는 교실로 돌아가는 길로 향했고, 소년은 교무실 안쪽으로 들어가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도련님, 들어가시죠.”

 

옆에 있던 남자가 소년에게 그렇게 말하자, 소년은 바로 짜증을 내듯 말했다.

 

“그러니까 학교에서는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아, 네, 스자쿠 님.”

“그거도 싫어.”

“…….”

 

등 뒤에서 들리는 실랑이에 를르슈는 소리 없이 웃었다. 뭐야, 어정쩡한 시기에 오는 전학생이 무려 호칭이 도련님이라니. 게다가 그걸 불만스러워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애였다. 를르슈는 웃기는 녀석이이라고 생각하면서 교실로 돌아갔다.

중학생들이 다 그러하듯, 를르슈의 일상은 크게 변하는 것이 없었다. 오늘의 를르슈는 늦잠을 잤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긴 했지만 아이들은 금방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하루를 보냈다. 하루의 수업이 다 끝나갈 무렵, 종레시간에 들어오는 전학생을 보고서 를르슈는 전학생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아, 맞아,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녀석이 전학을 왔지.

칠판에 또박또박 쓰여지는 이름을 보고서 를르슈는 눈을 가늘게 떴다. 쿠루루기 스자쿠. 과연 도련님이라고 불릴만한 집안에서 온 전학생이었다. 그 이름을 가진 소년은 자신의 이름이 주는 무게감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없는지, 밝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쿠루루기 스자쿠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쿠루루기 스자쿠의 뒤로 담임이 말을 덧붙였다. 

 

“으음, 그러니까 쿠루루기는 집안 사정 때문에 이런 시기에 전학을 왔는데, 곧 방학이지만 그래도 친하게 지내도록 해라.”

 

반 아이들은 쿠루루기 스자쿠를 쳐다보면서 담임의 말에 네에, 하고 대답했다.

쿠루루기 스자쿠의 자리는 공교롭게도 를르슈의 옆자리였다. 람페르지 옆자리에 앉도록 해라. 담임의 말에 스자쿠는 이 교실에서 유일하게 비어있던 를르슈의 옆자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는 허리를 반듯하게 세운 자세로 담임의 지루한 종례를 성실하게 들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를르슈는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라고 말했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서 괜히 우스웠다.

도련님은 타의 모범이 되는 모양이군. 를르슈가 그를 속으로 가볍게 조롱하고 있을 무렵에는 종례가 끝이 났고, 스자쿠의 주변에는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모두가 모여들었다. 셜리와 리발도 그 틈바구니에 끼어서 스자쿠에게 질문공세를 더하고 있었다. 

어디서 전학왔어? 기숙사에서 사는 거야? 아니면 통학해?

스자쿠는 몰아치는 질문들에 성실하게 대답해주었다. 

말해도 잘 모를 거야. 기숙사에서 살기로 했어. 하루 종일 짐 정리하느라….

를르슈는 그런 그의 이야기를 흘려들으며 가방을 정리했다. 스자쿠는 타고난 아우라라고 해야 할까, 귀엽고 앳된 첫인상과 다르게 쉬워보이지 않았다. 성실하게 대답하고 있지만 어리숙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분위기에서 느껴졌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그런 것에 매료되는 것 같았다. 를르슈는 쿠루루기 스자쿠에게 관심을 갖는 아이들의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볼 뿐이었다.

여름방학이 일주일 남은 미묘한 시기에, 스자쿠의 상대는 매일 매일 바뀌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는 시시때때로 바뀌었으며, 점심을 먹는 상대도 매번 달랐다. 다들 경쟁하듯이 스자쿠와 친목을 쌓고 싶어 했다. 를르슈는 옆자리에서 그걸 지켜보고만 있었다. 쿠루루기 스자쿠는 아이들끼리의 은근한 동경의 대상이었고, 친해지고 싶은 부류 중에 한 명이었으며, 자신의 집단으로 끌어들였을 때의 메리트가 큰 인물이었다. 그리고 본인도 그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두고서 은근한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이 학급의 분위기를.

쿠루루기 스자쿠는 운동을 잘하는 듯 했고, 그렇기 때문에 부 활동을 같이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수차례 자신의 운동부에 들어오기를 권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스자쿠는 어느 곳에도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집안이 되고, 운동도 잘하고, 성격도 나쁘지 않은 그는 방학이 시작되고 나서도 지금처럼 친해지고자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를르슈는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쿠루루기 스자쿠와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언젠가 인기인이 될 사람과 친해져서 거기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주워먹는 취미는 를르슈에게는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스자쿠와 친해지는 것도 썩 달갑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하디 흔한 방식으로 친해지고 싶진 않은 자신의 마음에 를르슈는 의문을 품었지만, 그 의문을 해결하기도 전에 다른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크게 신경쓸 수가 없었다.

 

* * * 

 

사춘기 중학생이라면 다들 한 번 쯤은 발칙한 상상을 하기 마련이다. 다들 연애에 대해서 꿈을 꾸거나, 혹은 더 나아가면 섹스에 대한 판타지 한두 개는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모여서 떠들거나 하는 것은 를르슈의 취향에 맞지 않았지만, 를르슈 또한 그런 연애에 대한 동경이나 섹스에 대한 호기심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통의 범주로써, 이제까지는 무척이나 평범한 중학생 수준이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를르슈의 성적인 상상은 빈약했다. 연애를 한다면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와 함께 하는 데이트 같은 것을 생각했으며, 섹스에 대한 상상을 할 때에는 를르슈는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알몸을 떠올리는 것 대신에 자신의 페니스를 쥐고 흔들면서 성적 욕망에 솔직하게 흔들리며, 자위하는 시간은 무언가 죄책감이 들게 만들기도 하고, 자신이라는 인간 또한 동물적인 면모가 남아있다는 점에서 유감스럽기도 한, 그런 복잡한 감정으로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의 몸을 파고들고 그 안에서 사정한다는 감각은 를르슈에게는 어렵게 느껴졌다.

어쩌면 남자 중학생 치고는 자신은 보통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를르슈는 이내 자신이 혹독한 사춘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말하자면, ‘특별한 자신’에 도취되어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어른이 되면 좀 더 보편적인 반찬거리에 손을 대면서 성적 쾌락을 좇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변화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고! 를르슈는 젖은 속옷을 세면대에서 빨면서 이를 악물었다. 최근에 자위를 하지 않은 탓에 이상한 쪽으로 무의식이 흘러간 것이라고, 를르슈는 그렇게 위안을 삼으면서 척척하게 젖은 속옷을 박박 문질렀다.

꿈에서는 쿠루루기 스자쿠가 나왔다. 를르슈의 다리를 벌리고서, 그는 정성스럽게 를르슈의 페니스를 빨아들이고 애무했다. 꿈속의 를르슈는 그것이 익숙한 것처럼 다리를 더 벌리고 허리를 튕겨가면서 스자쿠에게 더 강한 자극을 달라고 조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꿈은 너무 생생해서 를르슈는 진짜로 사정해버리고 만 것이다.

새벽 내내, 속옷이 너덜너덜해지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몇 번이고 속옷을 빨았던 를르슈는 최악의 상태로 등교했다. 여름방학까지 사흘 남은 시점에서, 오늘도 옆자리에 앉은 스자쿠는 부활동 권유에 시달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것을 신경쓰지도 않았을 를르슈는 오늘 꿈의 여파 때문인지 스자쿠의 모습을 눈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왜 하필 저 녀석이었을까? 를르슈는 하고 많은 사람들, 그 중에서도 남자, 그것도 자신과 엮일 일이 없는 쿠루루기 스자쿠에 대해서 그런 꿈을 꾼 것이 황당하다 못해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여름방학 합숙을 앞두고서 스자쿠를 어떻게든 설득시키겠다는 다짐으로 온 검도부 부장이 돌아서는 것을 보고서, 를르슈도 스자쿠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더 보고 있으면 더 이상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꿈을 꾸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같은 반 남자애를 대상으로 몽정까지 하다니. 를르슈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우울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뒤숭숭한 꿈자리는 성장기의 한 부분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를 쓰면서, 를르슈는 또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람페르지, 무슨 일 있어?”

 

그러자 옆자리에서 를르슈에게 말을 걸어왔다. 스자쿠였다. 를르슈는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했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시선에 해맑은 눈빛으로 응답했다. 도와줄까, 라는 것이 내재되어 있는 그 눈빛에 를르슈는 고개를 다시 돌리며 말했다.

 

“아무 일도 없어.”

“근데 왜 그렇게 한숨을 쉬어?”

“내가 그랬어?”

“응.”

“아마 기분 탓일 거다.”

 

를르슈는 스자쿠에게 그렇게 둘러대면서 대화를 끝맺으려고 했다. 그러나 스자쿠는 그러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를르슈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옆자리인데 제대로 말해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네.”

“그런가? 뭐, 너는 매일 바빴으니까. 인기 많잖아, 쿠루루기.”

“다들 내가 전학생이라 관심이 많은 거 같아.”

 

스자쿠의 인기는 전학생에 대한 관심을 넘어선지 오래였다. 지금도 스자쿠에게 말을 걸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시선이 를르슈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이 녀석도 참 괴롭겠어. 스자쿠가 전학오기 전까지는 매일 같이 그런 시선의 대상이 되어왔던 를르슈는 또래 사이에서 인기인이 된다는 것의 피곤함을 알고 있었다. 를르슈는 쓴웃음을 지었다.

 

“부 활동은 어디로 할지 정했어? 다들 쿠루루기를 데려가려고 열성이던데.”

“알고 있었어?”

“옆자리잖아. 매일 보는 걸.”

“아, 혹시 거슬렸어? 미안,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야.”

 

쉬는 시간은 아직 5분이나 남았고, 이야기는 계속 이어질 모양인 듯 싶었다. 를르슈로서는 이 대화를 빨리 마치고 싶었다. 더 이야기를 했다가는 앞으로의 꿈자리가 더 사나워질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아서는 안 돼, 라고 생각하며 를르슈는 꺼내둔 교과서를 펼쳤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예습할 것이 없음에도, 스자쿠에게는 이제 대화를 그만하고 싶다는 뉘앙스로 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스자쿠는 제법 끈질긴 편이었다. 대화를 그만 둘 타이밍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것도 어쩌면 기술일지도 모른다고, 를르슈는 생각했다.

 

“예습하는 거야?”

“아아, 응.”

“성실하네.”

“너만 할까?”

“나?”

 

스자쿠도 교과서를 넘기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를르슈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성실해? 어디가?”

“부 활동 권유를 거절 할 때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점에서?”

 

를르슈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자신이 스자쿠에게 꽤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성실한 지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제법 공을 들여 그를 관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의식이 그런 꿈을 꾸는 것일지도 모르겠고. 를르슈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스자쿠는 고개를 또 다시 갸웃거렸다.

 

“그렇지만 다들 진심으로 권유해주는 거니까. 진지하게 대답해주지 않으면 안 되지 않아?”

“그런 점이 성실하다는 거야.”

 

를르슈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교과서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말했다. 를르슈는 최대한 건성으로 대답해주고 있었으나, 스자쿠는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그럼에도 를르슈에게 말을 걸고 싶은 모양인지, 대화는 끊어지지 않았다.

 

“람페르지는 무슨 부 활동 하고 있어?”

“부 활동 대신에 학생회를 하고 있어.”

“학생회는 어때?”

“뭐, 바쁠 때는 바쁘고, 널널할 땐 널널하고. 할만 해.”

“그렇구나.”

“어차피 곧 방학이라서 급하게 정하지 않아도 돼. 천천히 생각해 보고….”

“생각해 보고?”

 

를르슈의 말을 따라하는 스자쿠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를르슈와의 대화에 그는 성심성의껏 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왜 이렇게까지 어울려주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고, 를르슈는 그의 페이스에 휩쓸리는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고, 하고 싶은 걸 정해도 늦지 않아.”

“우와, 되게 어른 같이 말하네. 람페르지.”

“평범하게 말하는데.”

“그런가? 뭔가 느낌적인 느낌으로는 어른스러웠는데.”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작게 실소를 터뜨렸다. 느낌적인 느낌이라는 게 뭔데? 를르슈가 소리내며 웃자, 스자쿠는 당황한 나머지 귀까지 빨개졌다.

 

“아무튼, 아무튼 그랬다고.”

“뭐가 그래?”

“그, 그러게. 음, 나도 모르겠어.”

 

스자쿠와의 대화는 실없으면서도 유쾌했다. 때마침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를르슈는 웃음을 거두면서도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좋은 녀석을 상대로 몽정을 하다니. 가볍게 혀를 깨물고 싶어지는 것을 겨우 억누르며, 를르슈는 교과서를 보는척 하면서 옆자리의 스자쿠를 살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선생님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얼굴을 보고 있자니, 를르슈는 새벽 내 빨았던 속옷 때문에 손목이 시큰거려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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