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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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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2

Re:play / DOZI 2025.01.15 12:10 read.49 /

드디어 내일부터 방학이다. 그 말은 즉 내일부터 쿠루루기 스자쿠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를르슈는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오늘도 젖어있는 아랫도리에 혀를 깨물고 죽고 싶어졌다. 아직 사방이 어두운 새벽, 가족들은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때에 를르슈는 혼자서 화장실에서 속옷을 빨고 있었다. 세면대에서 몇 번 속옷을 문질러 빨고 있다가 거울을 문득 들여다보았다. 거울 속의 를르슈는 퀭한 두 눈을 하고 있었다.

며칠째 야한 꿈을, 그것도 같은 반의 전학생을 상대로 꾸고 있는 꿈에 를르슈는 속절없이 당하고만 있었다. 자위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 억지로 짜내듯이 자위를 하고 잔 날 밤에도 를르슈의 속옷은 젖어있었다. 꿈의 내용은 매번 변했다. 스자쿠가 해주는 펠라치오에 를르슈가 절정에 다다르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은 연인처럼 키스를 하거나 가슴을 애무당하거나 할 때면 를르슈는 더 보채면서 좀 더 해달라며 요구했다.

남자끼리 하는 영상이나 매체에 접해본 적이 없는데도 어째서 이런 꿈을 꾸는 것인지. 그리고 왜 하필 쿠루루기 스자쿠를 상대로 꾸고 있는 것인지. 를르슈는 꿈속의 자신이 부끄러움도 잊고 ‘좀 더 해줘’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수치스러워서 세면대에 담가놓은 속옷을 거칠게 주물렀다. 

속옷을 세탁기에 집어넣고 온 를르슈는 이르지만 교복으로 갈아입기로 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를르슈는 꿈의 내용을 떠올렸다. 자신의 하얀 가슴팍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젖꼭지 끝을 집요하게 문질렀던 스자쿠의 손길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를르슈는 스스로 그 가슴 끝을 조심스럽게 꾸욱 눌러보았다. 자신이 스스로 만져봤자 그저 만진다는 감각만 있을 뿐, 꿈속에서의 짜릿함이나 야릇한 쾌감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욕구불만일까? 아니면 사춘기 특유의 성적 충동이 이상한 곳에서 발현된다거나….’

 

스스로 가슴을 만지고 있는 것도 웃기는 것 같아서 를르슈는 빠르게 셔츠를 꿰어입었다. 아무래도 좋다. 이제 내일이면 방학이고, 스자쿠를 만나지 않으니 꿈도 꾸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예전처럼 계속 떨어지는 꿈이나 꾸면 좋겠군. 그 꿈도 그닥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 꾸는, 이렇게 맥락없이 야한 꿈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리워졌다. 

학교에 가면 먼저 온 스자쿠가 를르슈를 반겨주었다. 람페르지, 하고 부르는 목소리는 마치 를르슈를 기다린 것 같았다. 이렇게 좋은 녀석을 상대로 자신은 왜 그런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를르슈는 괜한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 를르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밝게 웃어주며 말을 걸었다.

 

“내일부터 방학이네. 람페르지는 방학에 어디 놀러가?”

“딱히 놀러 갈 예정은 아직 없는데. 그래도 바다는 가지 않을까?”

 

여름방학마다 바다에 가고 싶다고 조르는 나나리를 위해서 바다 한 번 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를르슈의 대답에 스자쿠는 부럽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바다 좋아해?”

“별로 좋아하진 않아.”

“왜?”

“덥고, 습하고, 비리고, 냄새 나고, 시끄러우니까.”

“…그럼 왜 가는 거야?”

 

를르슈와 스자쿠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근처에 있던 리발이 ‘바다’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우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를르슈, 올해도 바다에 가는 거야? 나나리를 위한 사랑은 정말 알아줘야 한다니까. 우리가 같이 가자고 하면 그렇게 귀찮아하면서.”

“시끄러움이 두 배가 되는데 누가 좋아해?”

“떠들썩한 분위기를 즐기는 거지! 그렇지, 스자쿠?”

 

리발은 어느새 스자쿠를 이름으로 부르는 사이가 되었을까? 를르슈는 그런 것을 신경쓰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남이 이름으로 불리든, 성으로 불리든, 그건 를르슈가 알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스자쿠와 관련되면 괜히 신경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아마 꿈 때문이겠지. 를르슈는 애써 모르는척 하면서 스자쿠의 반응을 살폈다.

스자쿠는 어째서인지 기분이 가라앉은 듯 했다. 를르슈를 볼 때면 반짝거리며 빛나던 눈동자가, 지금은 쾌활함보다는 차분함에 가까운 정도였다. 리발이 이름을 불러서 기분이 나빴나, 하고 를르슈가 추측하고 있을 때였다.

 

“‘나나리’는… 람페르지의 여자친구야?”

“뭐?”

 

를르슈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가는 목소리는 꽤 날카로웠다. 그러자 스자쿠는 시선을 피하면서 ‘람페르지, 여자친구 있었구나’ 같은 소리를 했다. 웃고 있는 것은 배를 붙잡으며 웃겨서 죽겠다는 리발 뿐이었다.

 

“아하하, 죽겠다. 진짜 배 아파. 스자쿠,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를르슈가 나나리를 지극정성으로 좋아하기는 해도 여자친구로는 못 삼지.”

“응?”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스자쿠가 를르슈를 바라보았다. 를르슈는 자신이 시스터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스자쿠에게 그 면모를 드러내는 것은 어딘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나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나나리는 내 여동생이야.”

“여동생?”

“를르슈는 시스터 콤플렉스가 있어서, 나나리가 하자고 하는 거면 거의 다 들어준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가기 싫어하는 여름바다를 매년 나나리 때문에….”

“시끄러워.”

 

리발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것을 겨우 억누르면서, 를르슈는 스자쿠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 차분하게 가라앉았던 눈은 어느새 다시 반짝이고 있었고, 를르슈를 보면서 그는 환하게 웃기까지 했다.

 

“람페르지는 여동생이랑 같이 바다에 가는구나!”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돼!”

 

를르슈의 결정은 대부분 나나리를 위한 것이긴 했지만, 그런 것을 스자쿠에게 드러내는 것은 어딘가 부끄러웠다. 스자쿠는 어딘가 안심한 모양으로 를르슈에게 자신의 일정에 대해서 말했다.

 

“나는 방학 동안에도 기숙사에 있을 예정이라서. 어디 가는 건 좀 부럽네.”

“왜 집으로 안 돌아가고?”

“아직 짐 푼 지도 얼마 안 됐고, 이쪽 생활에 익숙해지고 싶기도 하고…. 뭐, 그런 느낌으로 학교에서 방학을 보내려고.”

 

를르슈는 스자쿠가 괜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스자쿠가 굳이 거짓말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더 이상 묻지 않고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무려 스자쿠는 ‘도련님’이라고 불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집안에서 자랐으니까, 를르슈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정이 있을 것이다. 곧 이어 담임이 들어왔고, 방학식이 시작되었다.

한동안 스자쿠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를르슈에게 다행으로 느껴져야만 했지만, 꽤 아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스자쿠는 방학 내내 학교에 있을 거라고 말했으니까 언제든 만날 수 있겠지. 그러면 방학 중에 한 번 정도는 만나도 되지 않을까, 하고 고민하던 를르슈는 속으로 자신의 모순을 깨닫고 있었다.

이상하게 꾸는 꿈 때문에 그를 멀리해야만 하는 게 맞겠지만,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만나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를르슈는 속으로 혀를 찼다.

 

‘너라면 자기를 상대로 몽정하는 녀석과 친구를 하고 싶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 것마냥 차분해졌다. 를르슈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스자쿠에게 인사를 하고, 방학동안 텅 비어있을 교실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 * * 

 

를르슈가 세운 가설: 쿠루루기 스자쿠를 만나지 않으면 몽정도 멈출 것이다.

이 가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쿠루루기 스자쿠를 만나지 않으니 몽정은 멈추었다. 대신 다른 결과로 튀어버렸다.

 

“하, 하아… 아, 스, 스자쿠….”

 

를르슈는 자신의 유륜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더운 숨을 몰아쉬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발기한 페니스를 위 아래로 부지런히 문질렀다. 질척이는 쿠퍼액이 흐르면서 손을 적시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라면 쌓여있지 않도록 사정을 위해서 기계적으로 움직였을 텐데, 방학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하는 자위는 달라졌다.

 

“아, 으응, 읏, 으… 스자쿠, 아, 좀, 더… 더…!”

 

를르슈는 페니스 기둥을 손바닥으로 꽉 조이면서 짜릿하게 느껴지는 그 쾌감에 훌쩍거리면서 사정했다. 손바닥과 배를 적시는 정액은 양이 많지는 않았다. 당연하다. 어제도 자위하고, 엊그제도 했으니까.

이건 그 빌어먹을 마지막 꿈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를르슈는 눈을 질끈 감고서 페니스를 훑던 손을 더 아래로 내렸다. 다리 사이를 더 깊게 벌리고서 꽉 다물린 구멍 아래로 정액으로 젖은 손가락을 조금씩 밀어넣었다. 한 마디만 밀어넣어도 빡빡하게 느껴지는 것에 를르슈는 미간을 찡그렸다.

다른쪽 손가락을 타액으로 적셔서, 다시 아래로 손을 뻗어서 구멍을 천천히 헤집기 시작했다. 조금 더 부드러워진 손놀림으로, 를르슈는 꿈속에서 느꼈던 쾌락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방학이 시작되고 첫날, 를르슈는 쿠루루기 스자쿠와 끝까지 가는 꿈을 꾸었다. 끝까지 갔다는 표현을 남자 사이에서도 쓸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를르슈는 스자쿠와 끝까지 가는 꿈을 꾸었다.

꿈의 초반에는 눈도 못 뜨는 채로 정신 없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뱃속 가득 무언가가 휘젓고 있는 듯한 느낌에 를르슈는 앓는 소리를 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휘젓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를르슈는 그 낯선 느낌에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를르슈를 옭아맨 것은 다른 것도 아닌 스자쿠의 목소리였다.

 

‘를르슈, 기분 좋아?’

 

기분 좋냐고? 이런 게 기분 좋은 건가? 머릿속이 엉망진창이고 뱃속은 뜨겁게 달아오르기만 하는데, 이런 게 기분 좋은 걸까? 를르슈는 고개를 젓지도 못하고 끄덕이지도 못한 채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난 기분 좋은데… 를르슈도 기분 좋아지면 좋겠어.’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는 쿠루루기 스자쿠의 말은 마법 같은 효과가 있었다. 알 수 없는 느낌에 휩쓸리는 것은 싫었는데, 스자쿠가 그렇게 말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를르슈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제 몸이 뜨거운 것으로 감싸지는 느낌에 정액을 왈칵 쏟아냈다. 사정하는 를르슈의 페니스를 스자쿠가 붙잡았다. 점액질로 질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를르슈, 나를 봐.’

 

를르슈는 뱃속에서 딱딱하고 뜨거운 것이 부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기분 좋은 것’이니까,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를르슈는 숨을 고르면서 천천히 스자쿠를 바라보기 위해서 눈을 떴다.

눈을 떴을 때는 새벽녘의 어스름한 빛이 남아있는 자신의 방 천장이었고, 를르슈는 자신이 꿈에서 끝까지 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사의 생생한 느낌이 남아있는 것 같아서 를르슈는 자신의 배를 문질러보았다. 여기에, 스자쿠의 것이 들어갔던… 꿈이었다. 를르슈는 남자에게 구멍은 하나 뿐이며, 그 구멍에 넣어져서 기분이 좋았던 꿈속의 자신에 대해서 생각했다.

를르슈는 보통의 남자 중학생으로써 느낀 자괴감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 내내 야한 꿈에 시달렸기 때문이었을까, 를르슈는 온몸을 뜨겁게 달구던 애널섹스라는 경험, 그 꿈을 통해서 했던 것이 재현 가능한 감각인지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자마자 를르슈의 음몽(淫夢)은 끝이 났다. 그때는 공교롭게도 스자쿠를 보지 않기 시작한 여름방학의 첫 주였다.

그렇게 를르슈는 스자쿠에 대한 꿈을 꾸지 않게 되었지만, 자신의 자위 반찬으로 스자쿠와 꿈속에서 했던 섹스를 써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동안, 를르슈는 밤이 되고 어두워지면 스자쿠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위를 하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잘 알지도 못하는 스자쿠에 대해서 그런 꿈을 꾸는 것이 죄스러웠지만, 쾌락을 한 번 따라가기 시작하면 를르슈는 스자쿠와의 섹스를 꿈꾸게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 애널을 풀면서 손가락을 집어넣을 정도로 를르슈의 자위는 대담해져갔다.

여름이 무르익어 가고, 를르슈의 애널이 손가락 세 개를 삼키고, 또 를르슈가 스스로 전립선을 찾아내 애널 자위로 사정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 * * 

 

자위를 애널로 한다는 것만 빼고는 를르슈의 일상은 평온했다. 나나리의 방학숙제를 돕는다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쇼핑을 나간다거나, 오늘처럼 학생회 멤버들을 만난다거나, 보통의 중학생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면서 를르슈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광장에서 모이기로 한 학생회 멤버들을 찾았다. 그러나 더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

쿠루루기 스자쿠, 그가 여기에 있었다. 청바지에 흰 티셔츠 차림의 그는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더 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변화도 나쁘지 않아서, 를르슈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스자쿠 역시 를르슈를 발견한 모양인지 손을 흔들었다. 그제서야 그의 옆에 리발과 미레이, 셜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루루 오랜만이네! 방학 동안 연락도 잘 안 하고 뭐 했어?”

“집에 있었지. 그나저나, 쿠루루기는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스자쿠 군도 딱히 할 일이 없다고 그래서. 모처럼 같은 반이니까 같이 노는 거도 나쁘지 않잖아?”

“람페르지는 내가 와서 싫었어?”

 

를르슈는 마지막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스자쿠의 모습에 아니라고 바로 대답했다. 를르슈의 반응에 스자쿠는 안심한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의 다정하게 웃는 모습에 를르슈는 매일밤마다 그를 반찬으로 빼고 있다는 것이 오랜만에 양심에 찔렸다.

그러나 그것을 어디까지나 태연자약하게 숨기면서, 를르슈는 스자쿠의 옆에 섰다. 괜히 심장이 두근거리며 날뛰는 기분이었지만, 그것은 아마 스자쿠를 상대로 음흉한 생각을 하면서 매일밤 힘쓰고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한 죄책감과 초조함이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자쿠는 다행히도 를르슈의 변화에 대해서 모르는 거 같았다. 를르슈는 땀으로 축축히 젖은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자꾸만 긴장하게 되었다.

오늘 모임은 다음주에 떠나는 바다 당일치기 여행에 입고 갈 옷을 쇼핑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여자들끼리도 충분하지만, 아마 무지막지하게 사대는 미레이의 짐꾼이 되기 위해서 남자들을 불러모았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미레이는 앞장서서 걷다가 셜리를 데리고 어느 옷가게에 쏙하니 들어갔다. 남자들은 밖에서 다 같이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스자쿠도 같이 바다에 가자! 여기까지 따라온 거 보면 분명 마음이 있는 거야, 그치?”

“나도 가도 돼? 난 학생회도 아닌데.”

“뭐 어때! 괜찮지, 를르슈?”

“난 상관 없어.”

“좋아, 스자쿠도 오는 걸로 결정!”

 

그럼 미레이에게 말하고 오겠다면서, 리발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단둘이 된 스자쿠와 를르슈는 조금 누그러진 햇볕 아래에서, 남겨진 서로를 보고서 피식 웃었다.

 

“바다에 갈 때에는 람페르지네 여동생도 오는 거야?”

“나나리라고 불러. 물론, 나나리도 데리고 가야지.”

“기대된다.”

“바다에 가는 게? 아니면 나나리가? 참고로 말하지만 나나리는 초등학생이야.”

“그,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바다에 가는 것도, 나나리를 만나는 것도… 기대가 된다고 할까?”

 

당황하며 말을 더듬는 스자쿠의 모습에 를르슈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게 아닌 거 알아. 그냥 놀려봤어.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너무해’ 라고 말하면서도 덩달아 같이 웃었다.

그 웃는 얼굴에 를르슈는 웃고 있어도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남의 여동생을 귀찮아하지 않고서 만나보고 싶다고 말하는 좋은 녀석을 상대로 밤마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긴장한 손끝이 차게 식어갔다. 때마침 미레이와 셜리, 리발이 가게에서 나와서 다시 쇼핑을 이어갔다. 를르슈는 티가 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필사적으로 스자쿠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피했다. 학생회 멤버들은 평소보다 적극적으로 쇼핑에 임하는 를르슈가 마음에 들었는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수영복 가게를 다녀오고 나서야 쇼핑은 끝이 났다. 를르슈는 별탈없이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것에 안도하며 자신과 반대방향으로 가는 스자쿠에게 손을 흔들고 돌아섰다.

등을 돌렸는데도 스자쿠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아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자신을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아마 평소보다 더 긴장한 채로 피곤한 쇼핑을 해서 그런 거겠거니, 하며 를르슈도 집으로 돌아갔다.

피곤해서 자위할 생각도 들지 않는 밤이었다.

 
공지 <부활의 를르슈> 스포일러 있는 글은 * 2019.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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