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만나는 를르슈 람페르지는 어딘가 새침한 분위기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의 분위기는 멋있고 쿨한 느낌이겠지만, 스자쿠가 느끼기에는 새침함 말고는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를르슈 람페르지가 그렇게 멋지고 쿨한데 스자쿠의 페니스를 빨고 싶어서 바지를 벗기려고 했던 게 어제의 일이었다. 스자쿠에게 있어서 어제의 사건은 간과할 수 없는 큰일이었다. 이제까지 스자쿠에게 손 한번 댄 적 없는 를르슈 람페르지가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스자쿠의 발기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모든 수단을 다 쓸 것 같았다.
정말 서버리면 어떡하지? 스자쿠는 언젠가 발기할 상황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스자쿠의 공포와 관련없이 날씨가 무척 좋았다. 스자쿠의 심정도 몰라주고 쨍한 햇살을 바라보고 있으면 스자쿠는 어딘가 정화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계속 발기할까봐 두려운 자신의 음침함이 떠올라서 더 대비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학식을 먹을 생각으로 느긋하게 걷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인물 한 명이 저벅저벅 스자쿠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무엇을 숨기랴, 그는 를르슈 람페르지였다. 스자쿠는 뒤돌아서 도망가버릴까 했지만 그렇게 노골적으로 도망가버리면 그 아무리 를르슈 람페르지여도 열 받아서 쫓아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그냥 가던 길을 걸었다. 그리고 를르슈 람페르지는 말을 걸어왔다.
“스자쿠! 우연이네, 학생식당에 가는 거야?”
“아, 를르슈.”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
“좋아.”
어제까지 페니스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던 상대와 점심을 같이 먹는다니, 나는 간이 큰건지 아니면 무신경한건지. 스자쿠는 입맛이 썼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옆에서 별 말 없이 걸었다. 입을 다물고 가만히 걷기만 해도 그림이 되는 이 남자가… 어제… 그런 짓을 했다지. 스자쿠는 계속 떠오르려는 어제를 잊으려고 애를 썼다.
학생식당에 도착해서 오늘의 정식 세트를 시킨 스자쿠와 를르슈 람페르지는 천천히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밥을 먹는 동안에는 최근 듣고 있는 수업이라던가,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나 유행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어딘가 사귀기 직전의 여자애랑 나누는 이야기 같다고 생각하면서, 스자쿠는 를르슈 람페르지가 조용히 맞장구를 치면서 스자쿠와의 대화를 즐기는 걸 바라보았다.
이렇게 친구로 지내주면 좋을 텐데. 왜 나를 좋아해서.
“어, 스자쿠! 를르슈도 같이 있네! 다행이다.”
“리발, 무슨 일이야?”
리발 칼데몬드는 스자쿠와 를르슈 람페르지의 몇 안되는 공통지인이었다. 를르슈 람페르지의 고등학생 시절의 친구인 리발은 를르슈 람페르지가 드물게 스자쿠와 친하게 지내는게 신기하다면서 스자쿠에게 인사를 했고, 그렇게 스자쿠와 친구가 되었다.
스자쿠와 리발이 같이 어울려 다니는 것을 본 를르슈 람페르지는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늘상 뾰로퉁한 표정이었다. 지금도 또, 어딘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입술을 삐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리발이 가까이 오면 바로 미소를 지었다. 스자쿠는 그런 그의 변화가 웃기는 건 당연했다.
“둘 다 오늘 저녁에 한가해?”
“오늘 저녁에 별 일 없긴 한데….”
“참가비 안 받을 테니까 오늘 미팅에 와주면 안 될까? 진짜 진짜 좋은 라인업인데 오늘 오겠다는 놈들이 두 명이나 빠져서 말이야.”
“미팅?”
를르슈 람페르지의 미소가 보일 듯 안 보일듯 굳어가는 것이 보였다. 스자쿠는 점점 더 재미있어졌다. 를르슈 람페르지가 스자쿠의 표정을 살피는 게 느껴졌다. 스자쿠는 평정을 가장하고 리발의 말에 고민하고 있는척을 했다. 그것이 별로인지 를르슈 람페르지가 입술만 달싹이는 걸 보고서 스자쿠는 괜히 그에게 말을 걸었다.
“를르슈는 어때?”
“뭐?”
“미팅. 난 를르슈가 같이 가면 가고 싶은데.”
“와, 진짜?! 를르슈, 제발 와주라-!!”
“왜 내가…….”
“모처럼 공짜 술을 마실 수 있는 기회잖아?”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 람페르지는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스자쿠가 미팅에 나가서 섹스하고 와서 키스로 달래준 것이 고작 얼마 되지도 않은 과거였다. 그런 와중에 미팅에 또 나가겠다고? 를르슈 람페르지는 황당함을 참을 수 없는지 스자쿠를 노려보았다. 그런 그의 속을 모르는 리발이 를르슈 람페르지의 앞에서 애원을 했다.
그렇지만 를르슈 람페르지에게는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갑자기 리발에게 갑자기 커밍아웃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일 테고, 스자쿠는 를르슈 람페르지의 그런 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미팅에 를르슈 람페르지를 데리고 가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미팅에서 여자와 어울리는 스자쿠를 보면 를르슈 람페르지는 포기해주지 않으려나, 하는 못된 마음이 들었다.
“좋아. 나도 스자쿠가 가면 갈래.”
그리고 를르슈 람페르지는 스자쿠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었다. 흠, 이렇게 쉽게만 움직여주면 좋을 텐데. 스자쿠는 책사처럼 작전을 세우고 머리를 쓰며 연애를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를르슈 람페르지와 함께 하고 있으면 계속해서 일어나는 변수들을 예방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피곤했다. 이제 그 피곤함과 어쩌면 이별할 순간이 다가오는 게 아닐까, 기대하게 되었다.
저녁에 만날 술집의 주소를 메시지로 전해주고 나서 리발은 다음 수업을 위해서 가버렸다. 스자쿠와 를르슈 람페르지는 단둘이 남아 교정을 걷게 되었다. 다음 수업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불편한 산책이 이어질 것 같았다.
“왜 미팅에 나간다고 했어? 공짜 술이 좋으면 내가 사줄 텐데.”
아니나 다를까 를르슈 람페르지는 그 사이를 못참고 투정을 부렸다. 스자쿠는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리발이 불쌍하잖아. 열심히 준비했을 텐데.”
“……리발이랑 그렇게 친했어?”
“열심히 하는 사람한테는 거절을 잘 못하겠더라고, 난.”
그래서 스자쿠가 를르슈 람페르지를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돌려말한 것이었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그 뜻을 이해했는지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조금 거친 발걸음으로 스자쿠를 앞서 나가는 를르슈 람페르지를 붙잡았다.
“괜찮아, 나 를르슈한테 노력한다고 했잖아. 를르슈도 내가 그 노력을 하고 있는지 오늘 미팅에서 확인하면 돼. 그리고 나 혼자 가면 를르슈 또 걱정하면서 엄청 울 거잖아.”
“엄청까지는 아니야…!”
“아무튼 나를 감시할 겸 가는 건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 람페르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그럼 저녁에 봐. 를르슈 람페르지의 결연한 목소리에 스자쿠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서로 듣는 수업에 따라 건물이 다르기 때문에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이제 이런 시간도 끝날 지도 모른다. 스자쿠는 어딘가 후련하면서도 아쉬운 기분이었다. 벌써부터 를르슈 람페르지와 이별을 준비하는 기분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저녁이 되어 스자쿠와 를르슈 람페르지는 리발과 함께 만나기로 했던 술집 앞에서 마주했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평소처럼 새침한 분위기였다. 스자쿠는 그의 평정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도 궁금했고, 한편으로는 오늘 이 술자리가 어떻게 흘러갈지도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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