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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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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ZI 2026.04.30 20:57 read.180 /

전편: http://very2ndplace.com/CG3/9117


 

 

아쉽게도 를르슈 람페르지를 반찬으로 자위 한 번 했다는 것만으로는, 쿠루루기 스자쿠가 를르슈를 반드시 다시 찾아야 한다는 이유가 되지 못했다. 스자쿠는 그 이후로 계속 바빴다. 유페미아 리 브리타니아의 일정은 총독 코넬리아 리 브리타니아에 비하면 있는 듯 없는 듯 했지만, 코넬리아의 부탁 때문에 스자쿠는 그녀가 쉬는 날에도 그녀의 옆에서 붙어있어야만 했다. 화사한 꽃처럼 웃는 그녀의 모습에 스자쿠는 이 평온하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날들이 계속 되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래도 순간 순간, 가시처럼 무언가가 스자쿠의 마음을 파고드는 게 있었다. 바로 를르슈 람페르지의 존재였다. 비가 오던 때의 드러났던 를르슈의 몸 같은 것을 생각하면 스자쿠는 또다시 자위에 빠지곤 했다. 섹스를 하면 좀 더 홀가분할 테지만, 를르슈가 아니라면 더욱 씁쓸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유페미아의 호위로 지내는 동안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도 모양이 좋을 것 같진 않아서 참아야만 했다.

다시 그 애쉬포드 학원을 찾아갈 날이 있을까? 스자쿠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고, 스자쿠는 를르슈를 곧 잊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신은 언제나 스자쿠가 바라는 것을 들어주지 않았다. 일본을 빼앗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모두 들어주지 않았다. 그럼 를르슈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는 소원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에리어11에 돌아온 스자쿠를 반겨주기라도 한 것처럼, 신은 딱 한 번의 변덕을 부려주었다.

 

“유페미아 리 브리타니아 전하께 인사 드립니다. 를르슈 람페르지라고 합니다.”

 

바로 를르슈 람페르지가 스자쿠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스자쿠는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난 기적에 대해서 잠시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그때와 같은 교복 차림으로, 무엇 하나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유페미아 리 브리타니아에게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오늘은 유페미아 리 브리타니아가 애쉬포드 학원에서 만났던 학생들과 티 타임을 가지는 시간이었다. 스자쿠가 유페미아의 명령으로 애쉬포드 학원을 홀로 돌아다니고 있었을 때, 유페미아는 애쉬포드 학원의 회장인 미레이 애쉬포드와 티 타임을 갖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보통의 황족이라면 인사치레로 넘어갔을 법한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은 유페미아 다운 다정함이었다.

미레이 애쉬포드와 그녀의 유쾌한 학생회 멤버들이 궁금하기 때문에 유페미아는 총독부 관저 안에 있는 살롱에서 티 타임을 갖기로 한 것이었다. 스자쿠는 오늘의 스케줄이 고작 티 타임 하나 뿐인 유페미아 부총독의 일과에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그녀의 지루함이 이것으로 조금이나마 달래지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였다.

그때 를르슈 람페르지가 나타난 것이었다. 미레이 애쉬포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학생 뒤로, 를르슈 람페르지는 우아한 매너를 선보이며 유페미아에게 인사를 올렸다.

 

“잘 부탁해요, 람페르지 군. 아, 괜찮다면 이름으로 불러도 될까요? 를르슈라고.”

“괜찮습니다.”

“그럼 나도 편하게 유피라고 불러줘요. 미레이도 부탁할게요. 아, 괜찮다면 편하게 친구처럼 말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유페미아의 부탁에 미레이와 를르슈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유페미아는 자신이 또 무리한 부탁을 한 것이냐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스자쿠는 이 모든 광경을 서너 걸음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를르슈 람페르지와 시선이 마주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를르슈는 스자쿠와 시선을 나누고선 싱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 이상의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비밀스럽게 웃어주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스자쿠는 둥둥 뜨는 기분이었다. 유페미아는 두 사람에게 스자쿠를 소개했다.

 

“인사하세요, 이쪽은 제 호위를 맡고 있고, 나이트 오브 세븐인 쿠루루기 스자쿠. 스자쿠, 이쪽은 제가 그때 혼자 있었을 때 저를 심심하지 않게 달래준 미레이 애쉬포드, 그리고 미레이와 친한 를르슈 람페르지라고 해요.”

“아, 네. 소개 감사합니다, 유페미아 전하. 그리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나이트 오브 세븐! 활약은 자주 뉴스에서 듣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미레이 애쉬포드는 경쾌한 인사를 해주었다. 스자쿠가 내미는 손을 쥐고 흔들면서 악수를 했다. 스자쿠는 미레이의 인사를 받으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유페미아와 다른 느낌의 상냥함이 깃든 소녀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스자쿠에게는 그런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다음에 인사할 를르슈였다. 미레이와 손을 놓고 를르슈에게 손을 내밀 차례가 되자, 스자쿠는 묘하게 긴장하고 말아버렸다.

 

“를르슈 람페르지입니다. 쿠루루기 경.”

“……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를르슈는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인사를 나누었지만, 스자쿠와 눈을 맞추면 그때 만났던 일들은 두 사람의 비밀인 것마냥 눈빛으로 속삭이고 있었다. 그 눈빛은 꼭 언젠가 단 둘이 되면 그때의 이야기를 하자고 말하는 것 같아서, 스자쿠는 괜히 가슴이 떨렸다.

유페미아가 안내하는 자리로 미레이와 를르슈가 앉고, 스자쿠는 서너 걸음 뒤에서 세 사람의 티 파티를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역할 분배에 불만을 품은 것은 유페미아였다.

 

“스자쿠도 이 티 파티에 참여하세요!”

“그렇지만 저는 전하의 호위를 위해서 있는 것이라…….”

“애쉬포드 학원 축제에서 어떻게 즐겼는지 이야기도 해줘야죠. 전 아직 그때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구요?”

“그래요, 나이트 오브 세븐. 저희 학교의 축제를 즐기셨다면서요? 같이 이야기 해요.”

 

스자쿠는 자신의 망토를 잡아끌며 자신의 옆자리에 앉히려는 유페미아의 손길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미레이도 조르기 시작했다. 스자쿠는 이 총독부 관저가 얼마나 튼튼한 호위막을 두르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실력을 믿기에 유페미아의 손길에 이끌려 앉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궁금한 것은 를르슈의 반응이었다. 를르슈는 뭐라고 조를까.

 

“저도 쿠루루기 경의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그는 들뜨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정중한 표현을 썼다. 스자쿠는 어딘가 아쉬운 를르슈의 마지막 말까지 듣고 나서야 유페미아의 옆에 앉았다. 나이트 오브 세븐까지 껴서 둥근 테이블을 꽉 차게 앉은 네 사람은 유페미아가 내리는 홍차를 마시고, 메이드가 가져다주는 디저트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스자쿠는 유페미아와 미레이의 이야기에는 곧잘 맞장구를 쳤지만, 를르슈의 말에는 겨우 입을 열 뿐이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랬다. 를르슈의 이야기에 ‘저도 그래요’나 ‘그렇군요’ 같은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말이 많은 유페미아와 미레이 덕분에 그런 분위기는 알게 모르게 흘러갔고, 홍차를 다 마시고 디저트까지 비워내고 나면 유페미아는 총독부 관저의 정원을 소개해주겠다면서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메이드를 불러 뒷정리를 부탁하고, 네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여자들은 꽃을 보며 서로 꺄르르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자쿠와 를르슈만 꽃밭에서 조금 멀찍이 떨어져 그녀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를르슈와 이대로 단둘이 이야기할 수 있는 타이밍이 되는 건가, 싶어서 스자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할 말 없이 이대로 있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옆에 서 있는 를르슈를 힐끔 쳐다보던 스자쿠는 입을 열었다.

 

“저기, 를르슈…….”

“와아— 토끼풀! 토끼풀로 반지를 만들 수 있어요, 유페미아 전하도 알고 계신가요?”

 

갑자기 미레이가 토끼풀이 가득한 스자쿠의 발치에 다가와서는 큰 소리를 내었다. 스자쿠는 를르슈와의 시간을 방해받는 것에 기분이 상했지만, 유페미아가 금방 다가와서 토끼풀을 보고서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보고 이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굴기로 했다.

 

“를르슈는 토끼풀로 꽃반지를 만들 줄 알아요. 를르슈, 한 번 솜씨를 보여줘!”

“여기서요? 남의 꽃밭이고 함부로 꽃을 꺾어도 되는지도…….”

“아, 괜찮아요! 저도 를르슈의 꽃반지 궁금하니까요.”

 

그러면 를르슈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자리에 쪼그려 앉아 꽃반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꽃대가 짓이겨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꽃반지를 만드는 를르슈의 손길은 섬세했다. 미레이와 유페미아, 스자쿠가 모두 모여서 를르슈의 손끝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바라보면 너무 긴장되는데요.”

“잘 하고 있으면서, 를르슈도 참!”

“회장님 때문에 더 긴장돼요.”

“와, 정말 반지 모양이 되네요!”

 

를르슈는 너스레를 떨면서 반지 하나를 완성했다. 그리고 유페미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갑자기 손을 내밀어달라는 그의 제스처에 유페미아는 웃으면서 자신의 왼손을 내밀었다. 유페미아의 왼손 약지에 를르슈는 자신이 꿰어만든 꽃반지를 끼워주었다. 그리고서는 사이즈가 딱 맞아서 다행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유페미아 전하께서 티 파티에 불러주셔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아하하, 나중에도 또 부르면 올 건가요, 를르슈?”

“회장님 몰래라면 몇번이고 오죠. 회장님은 너무 성가시거든요.”

“레이디에게 너무하네, 를르슈!”

 

세 사람이 시시덕거리면서 이야기하는 것에는 아무런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스자쿠는 유페미아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꽃반지를 바라보게 되었다.

왼손 약지. 하필이면 왜 왼손 약지였을까. 를르슈는 유페미아를 좋아하나? 그녀는 자애의 공주님이니까, 늘 다정하고 상냥하니까, 남자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여자니까. 를르슈가 유페미아에게 왼손 약지에 꽃반지를 끼워준 이유는 충분히 차고도 넘치는 것 같았지만 어떤 이유든 스자쿠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꽃반지를 낀 유페미아와 미레이가 다시 다른 꽃나무 근처로 구경을 가는 것에, 스자쿠는 를르슈와 드디어 단둘이 있을 수 있게 된 것을 깨닫고는 이번에는 과감하게 말을 걸었다.

 

“저기, 를르슈.”

“무슨 일이라도 있어? 꽤나 진지한 목소리군.”

“……방금 전에는 왜 바로 아는 척 안 해줬어?”

“나이트 오브 세븐과 축제에서 만났다고 하면 회장님이 시끄러울 게 분명하니까, 어쩔 수 없었어. 아, 그나저나 그때 대강당으로 무사히 간 것 같아서 다행이야. 많이 늦진 않았나?”

“아냐. 덕분에 늦진 않았어.”

“유페미아 전하의 연설이 조금 늦어졌다는 보고가 있긴 했는데 괜찮은 거야?”

 

그건 스자쿠가 를르슈를 반찬 삼아 자위를 해서 조금 늦었던 것이었다. 스자쿠는 그 사실을 떠올리며 겨우 쓴웃음을 지었다. 진짜 괜찮아, 라고 말해주면 를르슈는 안심한 듯이 마주보고 웃어주었다.

 

“스자쿠도 힘들겠어. 나이트 오브 라운즈인데 황녀전하의 호위까지 해야 한다니.”

“내가 할 일이니까 어려울 건 없어.”

“…흐음, 그래.”

“를르슈는…….”

“응?”

 

스자쿠는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질문을 억누르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유페미아 전하를 좋아해?”

 

를르슈는 스자쿠의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무슨 의미야, 라고 순진하게 물어보는 듯한 그 둥글어진 눈동자에 스자쿠는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방금 전에 반지도 유페미아 전하께 먼저 드리고, 그것도 왼손 약지에 끼워줬으니까…… 유페미아 전하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

“뭐…?!”

 

스자쿠는 그렇게 가정하는 와중에도 무엇인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를르슈는 자신의 밑에서 울고 있는게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유페미아에게 토끼풀로 만들어진 반지를 끼워주는 것은 고작 토끼풀 반지였음에도 별로였으니까.

그런 스자쿠의 말을 듣던 를르슈는 스자쿠와 시선을 마주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를르슈는 입을 열었다.

 

“유페미아 전하와 친해지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유페미아 전하를 이성적으로 좋아하거나 그런 건 아니야.”

“친해지고 싶어? 왜?”

“그 이상은 비밀이야. 나에게도 지키고 싶은 비밀이 있어.”

“…….”

 

스자쿠는 를르슈의 비밀을 파고들고 싶었다. 하지만 를르슈가 한 번 비밀이라고 정해놓은 것을 파헤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것을 깨닫고 나면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괜한 초조함을 느끼게 되었다. 유치한 감정이 계속해서 치솟아서 를르슈를 괴롭히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좀 떨어진 곳에서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청량하고 부드럽게 울려퍼지고 있는데, 그런 분위기와 다르게 스자쿠는 를르슈를 몰아세우고 싶어졌다.

 

“첫눈에 반하기라도 했어? 유페미아 전하의 남편이라도 되고 싶은 거야?”

“말했잖아, 이성적으로 좋아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고.”

“를르슈는 원래 그렇게 친절해?”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서 여자한테, 그것도 황족한테 스스럼 없이 구는구나.”

“그게 룰에서 벗어났다면 미안해. 일반인이 황족을 만날 일이 얼마나 있겠어? 그리고 역으로 묻겠는데, 너야말로 유페미아 전하를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질투라도 하는 거야?”

“유페미아 전하를 좋아한다고? 내가?”

“그래.”

 

를르슈와 주고받는 대화는 거의 싸움 같았다. 스자쿠는 마지막 질문에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내쉬었다. 유페미아가 좋은 여자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녀를 이성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스자쿠도 마찬가지였다. 스자쿠의 한숨에 를르슈도 따라서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그렇게 안 보잖아. 나도 그런 거야.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해.”

“그럼 황족에 대한 동경이라도 하고 있었어?”

“대체 또 무슨 소리를…….”

“아니면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거나, 아무 여자한테나 상냥하게 구는 걸 좋아해?”

“……나한테 이루고 싶은 목적이 있어.”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황족에게 빌붙는 것 정도는 기꺼이 할 수 있어.

를르슈는 선언하듯이 말했다. 스자쿠는 그의 결연한 의지가 드러나는 그 말 한 마디에 잠시 시선을 빼앗기고 그를 쳐다보았다. 황족에게 빌붙는다, 라는 표현은 스자쿠에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유페미아 리 브리타니아에 대해서 다소 경솔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스자쿠도 그녀를 그런 식으로 대하곤 했으니까. 에리어11을 바꾸기 위해서 유페미아에게 빌붙는 행위 정도는 스자쿠도 기꺼이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황족—유페미아에게 국한되는 것이라면 스자쿠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은 스자쿠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를르슈가 어떠한 목적을 위해 집착하게 되는 대상은 유페미아가 아닌 스자쿠가 되었으면 한다는, 억지를 부리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그럼 나이트 오브 라운즈한테도 빌 수도 있어?”

“…….”

“네가 원하는 걸 내가 이루어준다고 하면, 나한테 빌붙는 것도 할 수 있겠네?”

“……그래, 상황에 따라서 너라도 난 상관없어.”

 

드디어 를르슈는 스자쿠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스자쿠는 처음으로 자신이 짠 장기판에 작전대로 말이 들어오는 것 같은 짜릿함을 느꼈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물고 늘어지는 질문공세에 지친 듯 했지만, 스자쿠는 그런 허점을 이용해서 를르슈를 부추길 생각이었다.

 

“정말 생각이 있다면 오늘 밤 여기 호텔로 와줘. 네가 원하는 게 있다면 말이야.”

 

그리고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카드 키 하나를 내밀었다. 스자쿠가 내미는 카드키를 얼떨결에 받은 를르슈는 이게 무엇이냐는 듯이 스자쿠를 쳐다보았다. 스자쿠는 뻔뻔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를 대강당까지 데려다 준 답례를 해볼까 하려고.”

 

를르슈를 향해 친절하게 웃었지만, 스자쿠는 그를 친절하게 대해 줄 생각은 없었다.

곧 유페미아의 티 타임이 끝났다. 미레이와 를르슈는 인사를 한 번 올리고 왔단 길로 돌아갔고, 스자쿠는 유페미아를 호위하기 위해서 또 다시 그녀의 옆에 붙어다녀야만 했다. 매일 같이 이런 날들이 반복되는 것이 지루하다면 지루했지만, 오늘 밤은 달랐다. 그동안 스자쿠를 괴롭혀왔던 가시 같은 존재, 를르슈 람페르지를 오늘 밤 만나볼 수 있을지도 모를 테니까. 스자쿠는 카드 키가 사라진 주머니 안이 텅 비어있는 것이 어딘가 자신을 들뜨게 만드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날 밤, 를르슈 람페르지는 스자쿠가 잡아 둔 에리어11에서 제일 비싼 도쿄 조계의 한 호텔로 찾아왔다. 낮의 교복 차림이 아닌 사복 차림으로 갈아입은 채였다. 검은색 바지에 하얀 셔츠, 갈색의 자켓을 걸친 를르슈는 겉으로 보기에는 어른스러운 분위기였으나,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묵는 호텔까지 온 것에 대한 경계심으로 약간 긴장한 듯 했다. 살짝 주눅 든 모습이 그를 어리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진짜로 왔네.”

 

스자쿠는 를르슈의 앞에서 망토를 풀고 장갑을 벗기 시작했다. 하얀 자켓을 벗기 시작하고 이너 차림으로 느슨하게 소파에 앉으면, 를르슈는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를르슈는 나한테 뭘 바라고 왔어?”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은 브리타니아 황실과 나이트 오브 라운즈나 겨우 만날 수 있는 상대다.”

“아하, 사람 찾기구나. 누군데?”

“…….”

“여기까지 왔으면서 이제 와서 내빼는 거야?”

 

스자쿠의 부추기는 말에 를르슈 람페르지는 겨우 입을 열었다. 그는 말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스자쿠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계속 서있던 를르슈를 자신이 앉아있는 소파 옆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를르슈는 분위기에 휩쓸리듯이 스자쿠의 옆에 앉았다. 작게 떨리고 있는 를르슈의 손이 보였다. 스자쿠는 그것을 눈여겨 보면서 를르슈의 손끝에 제 손을 더했다. 부드럽게 감싸주면 를르슈는 조금 놀란 눈으로 스자쿠를 바라보았다.

 

“를르슈는 여기까지 오면서 무슨 생각으로 왔어?”

“…….”

“솔직하게 말해. 안 그러면 곤란해지는 건 너니까.”

 

스자쿠의 몰아세우는 분위기에 를르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냐, 됐어. 를르슈는 빠르게 말을 내뱉으면서 스자쿠가 좁혀오는 거리를 밀어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상대는 군인, 그것도 나이트 오브 라운즈,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나이트 오브 세븐이었다. 스자쿠가 쉽게 밀리지 않고 오히려 더 자신을 덮쳐올 것처럼 다가오는 것에 를르슈는 히익, 하고 날이 선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너라고 해도… 아니, 를르슈니까 더 잘 알겠지? 이런 밤에 남자가 부르는 호텔에 온다는 뜻을 말이야.”

“…나이트 오브 세븐이 남색에 취미가 있을 줄은 몰랐어.”

“나도 몰랐어. 덕분에 알게 됐네. 이것도 답례해줘?”

“필요없으니까 이제 비켜…!”

“그건 매너 위반이지. 를르슈, 여기까지 와놓고 사람을 기대시켜 놓았으면 책임을 져야하는 법이거든.”

 

그 이후로 스자쿠는 를르슈를 강간했다.

그의 자켓과 셔츠를 벗기고, 바지와 속옷을 단숨에 내렸다. 순식간에 알몸이 된 를르슈는 스자쿠의 아래에서, 소파에서 억지로 키스를 당하고 그의 혀를 깨물었다. 피의 맛이 비릿하게 퍼져나가며 얼얼한 혀 끝의 통증에도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손 한 번 올리지 않았다. 이러한 반항 정도는 있어야지 를르슈를 품을 맛이 날 것 같았다.

스자쿠는 를르슈가 처음이라는 것을 그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키스 한 번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신음하는 소리 같은 것이 귀엽게 느껴졌다. 꽤 넓은 소파에 그를 드러눕히고서 를르슈의 페니스를 쥐고서 흔들기 시작했다. 같은 남자의 페니스를 움켜쥐는 것은 불쾌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옅은 음모를 손끝으로 헤집으면서 발기하기 시작하는 말캉한 페니스의 감촉을 느끼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다.

이런 일들은 스자쿠의 취향이 아니었다. 스자쿠의 섹스는 언제까지나 도구이자 수단에 불과했다. 스자쿠의 쌓인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스자쿠의 출세를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했음에도, 를르슈와의 섹스는 그러지 않았다. 이것은 본능에 가까웠다. 생명을 만들거나 유전자를 보존하는 등의 본능적 목적과 어긋났음에도 스자쿠는 이것이 본능이라고 느껴졌다.

를르슈는 쌓이고 있었는지 금방 사정했다. 남의 손길로 사정하는 것에 대해서 엄청난 수치심을 느끼는 듯 했다. 그런 반응도 신선하니 좋았다. 스자쿠는 끅끅거리면서 신음을 억누르려는 를르슈의 모습에 다시 한 번 입을 맞추었다. 페니스를 움켜쥔 채로 키스를 퍼부으면, 연약한 급소를 만져진 채라는 걸 알고 있는지 를르슈는 순순히 입을 열어주었다. 스자쿠는 좀 세게 쥐었던 페니스를 살살 풀어주면서 그가 사정한 정액을 펴바르며 그의 엉덩이골 사이로 손을 움직였다.

젖지 않는 곳에 침을 뱉고 정액을 문지르면서 를르슈의 구멍을 풀어가기 시작했다. 피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관계를 생각하면 를르슈를 너무 아프게만 몰아붙이는 것도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도 바싹 마른 구멍을 풀어주는 것은 무리였다. 어쩔 수 없지. 스자쿠는 콘돔을 끼우면서 살짝 묻어나는 윤활제를 그의 애널에 펴발랐다. 두 개의 손가락을 겨우 삼키는 를르슈의 애널은 갈 길이 한참 멀어보였다. 하지만 더 참을 수는 없었다. 스자쿠는 페니스를 다 풀리지 않은 를르슈의 안에 밀어넣기 시작했다.

끄윽, 윽, 흐윽, 으으아앙…! 를르슈가 높은 목소리로 울었다. 마른 장벽을 파고드는 고통 속에서 스자쿠도 풀리지 않는 구멍의 압박감에 힘겨워했다. 꽉 쥐여오는 듯한 그 느낌에 스자쿠는 더 안쪽으로 파고들면서 를르슈의 애널에서 흐르는 피를 바라보았다. 를르슈가 벗어놓은 옷자락에 스며드는 핏방울 같은 것을 보고 있으면 스자쿠는 등골을 훑고 가는 짜릿함 같은 것을 느꼈다. 를르슈는 눈을 부릅 뜨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소리를 내다가도 이내 못내고 삼키기도 하고, 를르슈는 헉헉거리면서 스자쿠의 움직임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파, 아프다고, 아파…. 를르슈가 울음소리 사이사이로 아프다고 신음하는 것에 스자쿠는 대꾸 한 번 해주지 않고서 묵묵히 허리를 흔들었다.

마른 장벽의 압박감은 쉬이 풀어지지 않았지만, 스자쿠의 막무가내 강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를르슈는 스자쿠가 한 번 사정할 때까지의 그 긴 시간을 기절하지 않고 버텨냈다. 스자쿠가 애널에서 페니스를 빼내고서 콘돔을 묶어서 버리고 있을 때였다. 를르슈는 소파에서 몸을 늘어뜨린 채로 울음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거야….”

“고작 섹스 한 번으로 내가 답례를 해줄 줄 알았어? 아직 갈 길이 멀었어, 를르슈. 아니면 이제 누구를 찾고 있는지 말해줄 생각이야?”

“……말하는 건, 일도 아니야. 근데, 너는 나를.”

“안았을 뿐이야. 다음 번에는 를르슈도 느낄 수 있게 해줄게.”

 

스자쿠는 고통으로 발기하지 않고 물렁해진 를르슈의 페니스를 손끝으로 동그랗게 고리를 말아 흔들어 쥐었다. 탁탁 소리를 내며 흔들어주면 를르슈가 고개를 저었다. 히익, 이잇, 으응…! 또 신음하면서 갈 것 같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를르슈가 ‘말할게, 말할 테니까.’라면서 스자쿠의 손을 멈추려고 했다. 스자쿠는 예의상 그의 페니스를 괴롭히던 손을 멈추었다. 를르슈는 그제서야 스자쿠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입을 열었다.

 

“라, 락샤타 챠울라. 인도인 의사를 찾고 있어.”

“…아, 브리타니아 황실 전속 주치의로 일하고 있는.”

“마, 맞아.”

“그 정보는 어디서 들었어? 꽤나 기밀 정보인데.”

“……해킹해서.”

“브리타니아 황실 기밀정보를? 어째서?”

 

를르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겨우 말했다. 

여동생의, 나나리의 다리를 낫게 해줄 의사를 찾다가, 락샤타의 의학 논문을 읽다가, 그녀가 현재 브리타니아 황실의 주치의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그러니까, 유페미아나 스자쿠와 친해져서 그 락샤타에게 진료를 한 번이라도 받게 했으면 좋겠다고.

스자쿠는 자신의 아래에서 여동생을 위해서 몸을 팔 각오를 하고 온 저와 동갑내기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울음과 패닉으로 뒤섞인 숨을 거칠게 토해내는 를르슈는 이내 얼굴을 팔로 가리고서 후욱거리며 심호흡을 했다.

 

“이, 이제 됐지?”

 

스자쿠는 이제 됐냐고 물어보는 를르슈에게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평소의 스자쿠였다면 그런 사정을 듣고서 그를 기특하게 여겨서 섹스를 멈추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스자쿠에게는 그런 인정을베풀어 줄 여유가 있지 않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오로지 를르슈를 지금 이 상태로 몰아세울 수 있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영향력에 대한 쾌감 뿐이었다. 다시 한 번 발기하는 페니스를 이번에는 콘돔 없이 밀어 넣으면서 스자쿠는 그렇구나아, 하고 말끝을 늘이면서 를르슈를 안기 시작했다. 를르슈는 어딘가 어린 말투로 말하는 스자쿠의 말과 다르게 흉흉하게 발기한 페니스가 자기 안을 한 번 더 뜨겁게 찔러오는 것에 고개를 저으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발작하듯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를르슈를 가볍게 제압한 스자쿠는 그에게 키스를 했다. 를르슈는 이제 반항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스자쿠의 타액을 받아먹었다.

그가 무너지는 모습을 봐도 즐겁겠다. 스자쿠는 그때 를르슈를 반찬 삼아서 자위를 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자신이 했던 상상 이상보다 를르슈는 더 즐거운 몸이다. 그때 했던 상상대로 자신의 페니스를 한 번 빨게 해보고 싶기도 하고, 섹스에 길들여서 더 야한 말을 내뱉게 만들고 싶기도 했다.

울리는 건 이제 해봤으니, 더 다양한 를르슈를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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