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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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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르슈 람페르지의 등판으로 미팅의 분위기는 빠르게 달아올랐다. 4 대 4 미팅은 리발의 말대로 스자쿠가 보기에도 수준이 높은 라인업이었다. 평소였다면 스자쿠도 적당히 여자들과 어울리고 한 명 정도 골라서 자리를 빠져나갈 타이밍을 쟀겠지만, 오늘은 를르슈 람페르지의 반응을 보느라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술을 잘 마셨다. 들어오는 잔을 피하지 않고 마실 줄 알았고, 잔이 비워지면 술을 채울 줄도 아는 센스도 있었다. 적당히 마셔주면서 분위기를 돋우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과하게 취하지 않아서 매너도 잘 지켰다. 미팅은 처음이라고 말했으면서도 여자를 대하는 것이 익숙해보였다. 화려한 연회장의 파티가 어울릴 것 같은 를르슈 람페르지는 대학생들끼리의 미팅에서도 빛이 났다.

그것이 별로였다. 스자쿠는 맥주를 들이키면서 를르슈 람페르지를 눈여겨 보는 자신이 웃기기도 했다. 분명 를르슈 람페르지가 스자쿠의 눈치를 보면서 그의 행동을 눈여겨 봐야지 맞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상황이 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미팅을 즐기고 있고, 스자쿠가 있는 것도 잊어버린 것처럼 여자와 시시덕거리면서 노는 데에 열중이었다. 스자쿠만 기분이 가라앉은 채였다.

스자쿠는 이 술자리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다.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더 있다가는 자리를 망치고 싶은 충동이 생길 것 같았다. 를르슈 람페르지가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서 웃고 있을 때에는 스자쿠는 그 남자가 어젯밤에 자기 앞에서 애널 자위를 하고 펠라치오를 하겠다고 달려들었다는 사실을 폭로할 뻔했다.

 

“쿠루루기 군은 여기 재미없어?”

“아, 재미없는 건 아닌데 그냥 좀… 피곤하다고 해야 하나.”

 

옆자리의 파트너 여자아이가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스자쿠의 옆에 붙어왔다. 스자쿠는 를르슈 람페르지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여기를 보고 있지 않았다. 스자쿠는 평소처럼 굴어서 여자랑 나가볼까, 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를르슈 람페르지가 진짜로 여기서 바지라도 벗기는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는 지금 여자랑 이야기를 하느라 스자쿠를 보고 있지도 않지만, 언제 스자쿠를 또 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꼬투리 잡힐 짓은 하고 싶지 않아. 스자쿠는 남은 맥주를 다 들이키고서 자신의 어깨에 기대는 여자아이에게 후후, 하고 웃어주었다.

 

“2차 갈 거야?”

“글쎄…….”

“같이 나가지 않을래? 나는 여기 이제 재미없거든.”

 

그냥 나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스자쿠는 다시 한 번 를르슈 람페르지 쪽을 쳐다보았다. 이번엔 술잔을 부딪치면서 옆자리의 여자와 속삭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정말 재미가 없다. 진짜 재미가 없다. 이렇게 즐기는 를르슈 람페르지를 볼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으니까.

 

“음, 아무래도 오늘은 힘들 거 같아. 너무 피곤하고, 오늘은 대타로 나온 거라서.”

“정말? 아쉽다.”

“그렇지. 나중에 연락할게.”

“기다리고 있을게.”

 

억지로 전화번호는 교환했지만 스자쿠는 연락할 생각 따윈 없었다. 스자쿠는 슬슬 술자리가 끝나가는 분위기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어떻게 할 셈인가 그의 쪽을 계속 쳐다보게 되었다. 이제 끝날 무렵이 되니 아예 대놓고 노골적으로 쳐다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를르슈 람페르지와 시선이 마주쳤다. 스자쿠는 흐린 미소를 지었지만, 를르슈 람페르지는 미소도 울상도 짓지 않은 무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스자쿠의 시선을 피했다.

나를 피했어? 왜? 날 좋아하면서 왜 피해? 스자쿠의 머릿속은 의문으로, 그리고 알 수 없는 분노로 가득찼다. 나를 피했어. 를르슈 람페르지가 나를 피했어. 스자쿠는 설마 이 짧은 시간 안에 를르슈 람페르지가 옆에 있는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스자쿠는 고작 그 정도의 사랑이었던건가? 애널 자위를 보여주고 펠라치오도 해주겠다고 했으면서! 고작 그 정도였어?

 

“이제 2차 가볼까 하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해?”

 

리발이 정리하는 분위기에서 말했다. 리발의 제일 가까이에 있던 스자쿠에게 먼저 시선이 꽂혔다. 스자쿠는 그 시선들에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서 말했다.

 

“나는 피곤해서 이만 들어가볼게. 나중에 또 놀자.”

 

일부러 를르슈 람페르지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았다. 스자쿠가 돌아간다는 이야기에 몇몇 여자아이들이 아쉬운 소리를 냈지만 스자쿠는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자쿠, 진짜 가는 거야? 응. 너무 피곤해. 술도 많이 마셨고. 리발의 만류에 가볍게 거절하고서 스자쿠는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뭘하고 있을까. 따라 나올까, 아니면 2차를 가거나, 혹은 옆자리의 여자와 함께 따로 나갈 생각이 있을까. 나를 좋아한다고 한 주제에. 스자쿠는 초조해지는 마음을 감추고서 밖으로 나왔다. 괜히 가게 밖을 나오면서 안쪽을 살펴보았다. 누군가가 따라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그러나 를르슈 람페르지는 스자쿠를 쫓아나오지 않았다.

 

그날 스자쿠는 때아닌 감기에 걸렸다. 열이 펄펄 끓어서 머릿속이 멍할 정도였다. 겨우 해열제를 먹고서 약기운이 돌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날도 따뜻했고, 일교차도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 왜 감기에 걸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잔기침이 귀찮게 나왔고, 스자쿠는 따뜻한 물을 마시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늘은 를르슈와 같이 듣는 교양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를르슈와 만나게 된 그 교양 수업은 2인 1조로 진행되기 때문에 를르슈에게 사정을 알려야 할 것 같았다. 평소라면 미안한 마음으로 컨디션 불량이라고 말해줬을 테지만, 스자쿠는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어제 를르슈는 어떻게 됐을까. 여자를 데리고 돌아갔을까. 아니면 스자쿠처럼 금방 나왔을까.

나를 좋아한다고 했으면서. 그러면서 자기 멋대로 나를 피한 게 괘씸해.

그러면서도 스자쿠는 휴대폰의 화면을 몇 번씩 두드리면서 연락을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교양 수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스자쿠가 연락을 고민하고 있을 때,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은 를르슈 람페르지였다.

 

[스자쿠, 어디야? 곧 수업 시작해.]

 

고민 과다로 열이 더 오르는 기분이었다. 너 때문에 감기에 걸린 거야. 너 때문에 아픈 거라고. 스자쿠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을 억눌렀다. 열이 올라서 멍청해진 머리지만 그런 말은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괜한 화풀이에 불과하다. 스자쿠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답장했다.

 

[집. 오늘 아파서 쉬어야 할 거 같아.]

[아파? 어디가?]

[감기에 걸렸어.]

[괜찮아?]

[그럭저럭. 근데 좀 쉬어야겠어.]

[내가 갈까?]

[아냐, 수업 잘 들어, 를르슈. 나중에 전달사항 있으면 알려주면 고맙겠어.]

 

메시지는 별 거 아니었다. 고민한 것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스자쿠는 침대 위로 몸을 내던지면서 더운 숨을 내쉬었다. 죽겠다. 진짜 죽겠다. 열이 이렇게 오를 일인가. 해열제를 한 번 더 먹어야겠어. 아니, 그 전에 빈속을 어떻게든 달래서 뭔가를 먹고 약을 먹자. 기운을 차리고 약을 먹는 거야. 좋아, 이제부터 침대에서 일어나서 부엌으로 가자… 부엌으로…….

그렇게 스자쿠의 의식은 흐려졌다. 어지간한 체력이 아닌 스자쿠가 감기로 쓰러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도, 를르슈 람페르지가 자신을 뒤따라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자쿠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열이 펄펄 끓어올랐다.

를르슈 람페르지 때문에 아픈 게 틀림없다. 스자쿠는 자신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오직 를르슈 람페르지가 자신의 시선을 피했던 그때의 장면 뿐이었다. 따라오지 않았던 텅 비어있던 가게의 복도 같은 것이 눈을 감으면 계속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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